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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Nov 02. 2020

선생님 목 졸려요

할로윈데이

할로윈데이를 하루 앞두고 큰아이 유치원에서 파티를 했다.

이전까지는 나에게 할로윈 파티는 그냥 외국의 문화였다. 오래전 10월의 어느 날을 이태원에서 보낸 날에도, 몇 년 전 호박과 코스튬이 전시된 미국의 거리를 거닐던 날에도 그것 때문에 즐겁다거나 기대된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마음이 바빴다. 아이 코스튬을 준비해야 했다.

공룡도 No

스파이더맨도 No

멋진 왕자님도 No

뱀파이어를 해야겠다는 아이의 요청에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가격 적당하고 내 눈에 적당히 예쁜 코스튬을 무려 한 달 전에 구입했다. 끝인 줄 알았는데 사탕도 필요하다고 해서 요것도 준비했다. 간접 체험인데 슬슬 재밌어지고 우리 아이가 얼마나 이쁠까 기대도 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그날이 왔다.

난 출근을 했고

아이 옷을 입혀주신 어머님께  사진과 함께 문자가 왔다.

"애 목이 좀 졸리는 것 같아서 좀 느슨하게 풀어 줬어."


음.. 핏이 좀.. 안 산다. 휴..


등원차량을 태워 보낸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차량 안에 아이들 모두 이쁘고 귀엽게 차려입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웃겼다고..ㅋ


"선생님~ 목 졸려요!!!!!"


그날 저녁 유치원에서 온 사진을 보니 머리와 얼굴 전체에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덮어쓴 아이도 있었다.

첫째한테 물어봤다.

"얘는 이렇게 하루 종일 쓰고 있었어?"

"아니요~~ 두세 번 벗었어요."

"정말? 좀 더웠겠다.."


"오늘 재밌었어?"

"엄청 재밌었어요. 선물도 많이 받았어요."


다른 건 이것저것 다 물어보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질문 한 개가 있었다.


"옷은 편했어?"


나름 '편안함'도 잣대에 넣어 코스튬 쇼핑을 했지만

하루 정도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편한테 들었던 "목 졸려요!"라는 외침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엄마의 대리만족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재밌었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내년엔 꼭 목 안졸리는 옷을 준비해 보아야겠다.

하루 종~일 아이가 편안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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