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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Feb 02. 2022

웃음병 좀 고쳐 주세요

“과장님,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고쳐 주세요.”

갑자기 회진 때 이런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정말 깜짝 놀라서 여쭤 보았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니.. 그게 요즘 서는 연습을 하는데 서는 연습만 하면 웃음이 터져서 계속 서있을 수가 없어요. 이것 좀 고쳐 줘요.”

“아.. 그런 거라면.. 설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그러신 게 아닐까요? 이런 증상 호소하시는 분은 처음이라서 일단 제가 뭘 더 해드릴 수 있을지 고민 좀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사실, 처음 뵀을 때 사지마비에 온몸이 풍선처럼 퉁퉁 부어 곧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던 분이었다. 교뇌 출혈에 신부전, 거기에다 원인미상의 말초신경병증까지 겹쳐 어쩌면 평생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실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던 이 분. 아니, 살아만 계실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환자분이다.

설상가상으로 보호자조차도 수시로 나를 붙들고 “점을 봤는데 이번은 어렵대요..”를 남발하시는 바람에 더더욱 불안했던 이 분. 하지만 굳은 의지로 드디어, 드디어 서는 연습을 하고 계신다. 숟가락 처음 들고 식사하시던 순간도, 서는 연습을 처음 시작했다고 기뻐하시던 모습도 잊히지가 않는다. 여태까지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쓰~윽 훑고 지나간다.


한때는 아주 많이 우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전에 수육을 삶는 직업을 가지셨다면서 수육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막 풀어놓으신다.

“수육 삶을 때, 고기랑 같이 양파, 감초, 소주를 넣어요~”

 “진짜 이렇게 하면 사 먹는 것 같은 맛이 되는 거예요?”

 “나를 믿고 한번 해봐요~”

그렇게 슬픔을 이겨 내시는 듯 보여 마음이 좀 놓였었다.


그런데 이번에 웃음이 너무 나서 병에 걸린 것 같다고 하신다!!!


간혹 상황과 맞지 않는 부적절한 웃음을 웃게 되는 질환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분의 경우 전혀 그 병의 증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 걷지는 못하여도 설 수 있다는 그 즐거움을 만끽하시는 것 같아 보여 좀 지켜봐 드리기로 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긴 하다. 아직 오래 서 계실 수 있는 근력이 없으신 이분이 자신이 오래 서있지 못하기에 웃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웃으면 힘이 빠지니, 오래 서 있지 못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좀 덜 무안하시고, 좀 덜 속상하실 것 같다. 웃어버리면.


그 무엇이 되었건 웃으시면서 약 달라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을 보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


고놈의 웃음병 기왕이면 코로나처럼 전염력이 좀 강하면 좋겠다. 다 퍼져라. 온 병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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