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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Feb 03. 2022

며느리인데 명절이 편안해졌다

작년 제사 때의 일이다.


왜 여자들이 제사 음식 준비해야 해요?


어머님께 물었다.


내 앞에서 어머님은 이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시는 듯했으나.. 아버님께는  "우리는 얘네한테는 제사상도 못 받겠어요."라고 하셨다고 했다.


나도 '왜?'라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 끝까지 납득되는 답을 찾아내고야 마평소의 나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이전 직장을 그만둘 때 나에게 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심리학 관련 서적만 60권을 넘게 읽었더랬다..) 


여자만 일한다는 생각에?

사실 우리 집 남자들은 일을 열심히 한다.
그건 아닌 듯하다.

나의 의문은 여자들이 일을 더 하고 말고 하는 문제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계속 뭔가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씨'인데 엄밀히 말하면 제사는 남편 조상님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닌가?


어렴풋이 짚이는 게 있었다.


'일부러' 내가 항상 달력에 표시하는 어머님의 어머니 제삿날.


저번 제사 다음날

저녁시간에 아이들에게  TV를 틀어주고

남편 나 어머님 아버님이 한자리에 앉았다.

술이 오갔고

나는 이야기했다.


"어머님, 어머님의 어머니 제사(남편의 외할머니) 우리가 지낼까요?"


사실 남편의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제사는 이틀 차이로 걸쳐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 제사만 지낸다.

딸 넷의 맏딸인 어머님은 부모님의 제사를 절에 모셨다. 그리고 시댁 제사를 위해 음식 준비를 수십 년 해오셨다.


'딸 둘 있는 집의 맏딸'이고

우리 부모님, 내 조상님을 내가 못 모시면서

남편 조상님을 모시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같다. 여자라서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솔직하게

내 마음을 (감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두 분은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셨다.


"제상아,

다음에 (아주 먼 훗날에) 너희 부모님 제사 네가 모시렴.

그리고 나는 마음으로 매일 어머니, 아버지 생각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 그리고 그런 제사들을 다 지내려고 해 봐라, 얼마나 힘들겠니^^"


술 들어간 김에 또 하나 말씀드렸다.

"아버님, 그리고 저는 여자들이 절 안 하는 것도 싫어요. 소속감이 들지 않아요."


허허허


결혼한 지 8년 만에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였다.


작년 설에

내가 당직서는 동안 어머님께서 음식을 거의 다 장만해 주셨다.

난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나물 만들고

아버님은 바닥닦으시

남편은 "설거지 내가 할까?" 한다.

그리고 아버님 남편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와 어머님도 함께 차례상에 절을 했다.


이번 2022년도 설에는

확실히 마음 편하고 즐겁게 차례 음식 준비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들, 어머님, 나, 남편과 아버님 나란히 서서 절하고 우리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이 글을 작가의 서랍에 묵혀 두었다가 꺼내 1년 만에  발행할 용기가 나는 것 보니.. 그 사이 내 나름의 답을 찾고 마음 정리가 된 듯하다. 어쩌면 답을 찾았다기보다 무려 9년 만에 우리나라의 전통을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편해진 설을 맞으면서

내가 제사 모시는 분들이

우리 아이들과 남편만의 조상님이 아닌 나의 조상님도 되셨다는 각이 들어 좋았다. (결혼했다고 땡~ 갑자기 저 집 사람이 된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속으로 절하면서 생각했더랬다.


조상님~

이번에 고사리가 좀 많이, 푹 삶겼어요

그래도 비벼 드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우리 가족 앞으로도 잘 지켜 주세요!!!

아, 그리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만나시면 안부도 전해주세요!!!


나라는 한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시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질문하고 고민하고 또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도움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됐다!


내것이 아니었던 일이 이젠 내것인게 되었다.

나의 것!


내 마음이 편해지니 그동안 이유 없이 나를 민감하게 만들었던 명절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손 씨 집안 자랑스러운 며느리,

이 씨 집안의 장한 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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