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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Mar 16. 2022

언니 반성문

아침밥을 먹다 말고 울음이 한바탕 터진다.

발단은 둘째가 어제 유치원 점심시간에 ‘짜요짜요’를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첫째가 “나도 좋아하고 먹고 싶은데..”라고 하길래

“주말에 사줄게”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럼 둘째는 나보다 한 개 더 먹는 거잖아~~” 하면서 첫째가 엉엉 운다.    

 

너도 학교에서 둘째보다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있지 않았냐고

개수가 똑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몸에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는 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는다.   

  

결국 ‘짜요짜요’ 사면 첫째는 2개, 둘째는 1개 먹기로 했다.

그것도 둘째가 자기가 한 개 먹겠다고 먼저 이야기해서 이루어진 합의다.  

   

이 무슨.. ‘어이없는 공평함’이란 말인가?     


괜스레 둘째가 짠하다.     


코로나로 쉬는 시간에 친구랑 놀지 못하고 책만 읽어야 하는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그래서 까칠함이 조금 이해는 간다) 이른 아침부터 툭 불거져 나온 첫째의 예민함과

무엇이든 동생을 이겨야 첫째의 권위의식에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했고, 해 보아도 소용없었고, 그래도 소중한 형이기에 양보를 해버리고 마는 둘째이다.     


물론 첫째도 지금처럼 뒤틀리지 않은 날에는 둘째에게 양보를 꽤나 잘한다.

하지만 아주 예견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오늘 아침처럼 둘째를 무조건 이기려고 들 때는 정말 답이 없다.     


엄마로서는 참 답답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첫째의 마음도 이해 간다.

이거.. 나를 닮았다.     


나도 여동생에게 첫째처럼 똑같이 대한 언니였기에..    

 

친구에게는 양보도 잘했다.

그런데 유독 동생에게는 양보란 절대 없이 무조건 이기려 들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잘되었으면 하는 동생이지만

아주 사소한 것에서 (먹는 것, 입는 것) 꼭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체 무엇 때문에 꼭 이겨야 했는지는..     


학창 시절 내내 엄마는 항상 “너만 잘되면 소용없어, 동생이 같이 잘되어야 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와닿기 까지 무려 40년이 걸렸다.. 40대가 되어서야 진심으로 동생을 이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잘되었으면 좋겠고

필요하다면 내 것을 다 꺼내서 도와주고 싶은 존재이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너무나도 잘 살고 있고 어쩌면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살고 있는 동생이다.      


내가 양보할 일은,

내가 배려해야 할 일은

어쩌면 앞으로 평생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뒤늦게 반성하면서 뉘우친다. 그리고 이제는 그거!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와 둘째를 보면

이 둘은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면서 살아갈 아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둘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잘 살아가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먼 훗날

우리 부부가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없는 시간이 와도

이 둘은 서로가 있어 괜찮을 것이다...     


그렇기에 첫째야.. 네 마음은 알지만

주말에 짜요짜요는 동생과 너 두 개씩 먹는 것이 어떻겠니..?

지금부터 잘해야 해~!! 아님 엄마처럼 후회한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미안했어. 앞으로는 더 잘할게. 사랑한다 ♥


#나보쓰 #라이팅미 프로젝트 #작가 빛나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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