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다 말고 울음이 한바탕 터진다.
발단은 둘째가 어제 유치원 점심시간에 ‘짜요짜요’를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첫째가 “나도 좋아하고 먹고 싶은데..”라고 하길래
“주말에 사줄게”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럼 둘째는 나보다 한 개 더 먹는 거잖아~~” 하면서 첫째가 엉엉 운다.
너도 학교에서 둘째보다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있지 않았냐고
개수가 똑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몸에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는 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는다.
결국 ‘짜요짜요’ 사면 첫째는 2개, 둘째는 1개 먹기로 했다.
그것도 둘째가 자기가 한 개 먹겠다고 먼저 이야기해서 이루어진 합의다.
이 무슨.. ‘어이없는 공평함’이란 말인가?
괜스레 둘째가 짠하다.
코로나로 쉬는 시간에 친구랑 놀지 못하고 책만 읽어야 하는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그래서 까칠함이 조금 이해는 간다) 이른 아침부터 툭 불거져 나온 첫째의 예민함과
무엇이든 동생을 이겨야 첫째의 권위의식에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했고, 해 보아도 소용없었고, 그래도 소중한 형이기에 양보를 해버리고 마는 둘째이다.
물론 첫째도 지금처럼 뒤틀리지 않은 날에는 둘째에게 양보를 꽤나 잘한다.
하지만 아주 예견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오늘 아침처럼 둘째를 무조건 이기려고 들 때는 정말 답이 없다.
엄마로서는 참 답답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첫째의 마음도 이해 간다.
이거.. 나를 닮았다.
나도 여동생에게 첫째처럼 똑같이 대한 언니였기에..
친구에게는 양보도 잘했다.
그런데 유독 동생에게는 양보란 절대 없이 무조건 이기려 들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잘되었으면 하는 동생이지만
아주 사소한 것에서 (먹는 것, 입는 것) 꼭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체 무엇 때문에 꼭 이겨야 했는지는..
학창 시절 내내 엄마는 항상 “너만 잘되면 소용없어, 동생이 같이 잘되어야 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와닿기 까지 무려 40년이 걸렸다.. 40대가 되어서야 진심으로 동생을 이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잘되었으면 좋겠고
필요하다면 내 것을 다 꺼내서 도와주고 싶은 존재이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너무나도 잘 살고 있고 어쩌면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살고 있는 동생이다.
내가 양보할 일은,
내가 배려해야 할 일은
어쩌면 앞으로 평생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뒤늦게 반성하면서 뉘우친다. 그리고 이제는 그거!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와 둘째를 보면
이 둘은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면서 살아갈 아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둘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잘 살아가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먼 훗날
우리 부부가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없는 시간이 와도
이 둘은 서로가 있어 괜찮을 것이다...
그렇기에 첫째야.. 네 마음은 알지만
주말에 짜요짜요는 동생과 너 두 개씩 먹는 것이 어떻겠니..?
지금부터 잘해야 해~!! 아님 엄마처럼 후회한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미안했어. 앞으로는 더 잘할게. 사랑한다 ♥
#나보쓰 #라이팅미 프로젝트 #작가 빛나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