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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May 03. 2022

그날 이후

재활의사의 업무 중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장애진단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오늘은 보호자 두 분이 장애진단서 작성을 요청해 오셨다.


평소처럼

필요한 검사를 하고

진단서를 작성하기 위해 그동안의 경과 기록지를 한번 훑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머릿속에 쓸 말이 정리되고 나서는

장애진단서 서식지를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여태껏 무심코

그냥 써오던 곳에서 내 눈이 멈췄다.

자판기를 열심히 두드리던 내 손도 같이 멈췄다.


장애 발생 시기.

발병 년 월 일을 쓰는 칸을 채우려고 달력을 뒤적뒤적거리는데 환자분 얼굴이 딱! 떠올랐다.


희망을 품고 있지만

희망이 나날이 희미해져 가기에 두려움이 많은 그분.

혼자 할 수 있는 뭔가를, 남의 도움받지 않고 하나라도 더해보려 노력하시는 그분.

집에 너무 돌아가고 싶지만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그 이야기를 마음에만 품고 사시는 그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마비로 인해 일상생활이 너무나도 힘든 그분이

아.. 바로 이날 이전에는 아주 아주 정상적인 삶을 살고 계셨겠구나..

아.. 그날이 토요일이었네.. 얼마나 놀래셨을까..


지울 수 없는 저 날은 대체 왜 왔을까.


문득 진단서 쓸 때만큼은

그날을 애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환자분들은
대부분 특별히 기억장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날에 관해 여쭤보았을 때 대체로 또렷이 기억하신다.

가슴에, 머리에 아로새겨진 날을 자신의 달력 속에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부디 잘 극복하시면 좋겠다.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나면

여느 때처럼 기념하는 날, 기억하고 싶은 날이  이 분의 달력에 더 많이 표시되기를.. 바라 본다.


저는 한순간 만이라도 마음을 보탭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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