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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Apr 11. 2020

글을 입으로 쓰는 신세계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며칠 전부터 욱씬거렸다.


아픈곳, 여기는 MCP joint (중수지관절)이다.

Step 내과학 8.결합조직질환


혼자 이전에 류마티스내과 시간에 배웠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떠올려보았다. 무슨 병이 온 걸까..? 류마티스관절염인가..?내 나이가 이제 이런 거 와도 이상하지 않지.. 그래도 책 내용처럼 열감이나 부종은 없는데?


계속 고민하다가 내가  '엄지 족'이라는 게 떠올랐다. 브런치 글을 쓰기 위에서 핸드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웬만한 일은 컴퓨터 켜지 않고 핸드폰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지손가락을 무리했던 모양이다.


안 믿기겠지만 작년 학위를 받은 내 박사논문도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썼다. 어차피 영어는 외주 맡겨야 되니 한글로 떠오른 대로 쓰면서 초안을 다 써냈던 기억이 난다.  


멍석을 깔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 그것을 피하기 위에서 핸드폰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습관이 되어 지금은 핸드폰 글쓰기가 훨씬 익숙하다.


엄지손가락이 아파서 두 번째 손가락과 중간 손가락을 번갈아 이용하면서 열심히 뭔가를 써보았지만 알 수 없는 불편감 때문에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익숙한 것이 그립던 그 순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맵다쓰다 작가님이 브런치 글도 음성으로 입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셨다.


솔깃


이 기능을 이용하면 관절염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실천해 보았다. 좋았다.


그런데 말로 글을 쓰다 보니 한 번씩 말이 빨라서 머릿속의 생각을 앞지를 때가 생겼다. 갑자기 멍해지면서 무슨 말을 뱉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어색한 공백의 시간.


생각을 펜으로 쓰던, 학생 때의 나는 제법 느긋한 성격이었다. 그러다 엄마가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 바쁘고 빨라진 생각만큼 빠른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좋아하게 되었다. 


말로 글을 쓰게 되면 내 생각과 성격도 그에 맞춰서 엄청 빨라지는 날이 올까?

어쩌면 우리 아이들 세대 앞에는 '말과 글과 생각이 똑같은 속도로 흐르는 세계'가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퇴근길에 속청 독서를 하는 편인데 처음 정상 속도로 시작했지만 점점 빠르게, 현재는 2.4배속까지 올려서 듣고 있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냥 그렇게..

말로 쓰는 글에 맞춰 생각도 '적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말로 적힌 글을 다듬어 보려니 아무래도 편집에는 엄지손가락의 도움이 필요하여 열심히(모든 열심히가 '열씨미'라고 적혀 있다^^) 사용 중이다.


 이 글을 입으로 쓰고 있었던 어제는, 신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이 아파도 글 쓸 수 있는 세계. 내 말을 음성 자판이 제법 잘 알아 들어서 그것도 신기했.  

손가락을 쉬어야 하는 동안, 당분간은 이 기능을 최대한 이용해 예정이다.


음..

그러다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이 아프면 어떻게 쉬어야 할까?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힘 다빼고 '아'모양?

한숨 쉬듯 '후'모양?

그러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잘해주는 입김 가득한 '호~호~'

오케이!!!!!


입으로 몇 번 글 써보고 입 아프면 '호~'모양으로 쉬면서 그때까지 잘 쉰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다시 불러야겠다.

호~~~

연습삼아, 고생한 나의 온몸 구석구석에 입김을 보내본다.


어찌되었건,

입으로 글쓰기

이건 내가 만난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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