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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Apr 21. 2020

운수 좋은 날

청와대 홈페이지를 찾아 글을 쓰게 된 이유

부산에서 자란 나에게 가장 추억이 깃든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두 군데 ㅡ 1. 용두산공원과 2. 어린이대공원이다. 어린 시절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원이기도 했고, 동물원과 놀이기구 타는 것을 유독 좋아했던 나이기에 아주 어릴 때는 용두산공원, 좀 더 크고 난 뒤에는 매주마다 부모님을 졸라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공원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면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지금도 그때의 쿵쾅거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세월이 흘러 공원 앞에 회전 도로가 생기고, 주차장에 커다란 피노키오가 붙은 뒤에는 두 아이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어린 시절 나를 들뜨게 했던 알라딘(마법 양탄자), 청룡열차, 다람쥐통, 바이킹 모두가 없어진 이곳이지만 6년 전부터 어린이대공원 안에 동물원이 다시 개장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제대로 된 외출 한 번이 어려워 아쉬웠던 그때, 순전히 내 코에 바람 넣고 싶어 첫째는 유모차에, 둘째는 힙시트에 안고 동물원에 갔다.  제법 추웠던 탓에 다음날 두 아이 모두 고열에 시달렸고 그날은 생애 최고로 힘들고 후회되는 날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나의 망각이 작동해주어 쓱쓱~ 힘들었던 기억을 옅게 해 준 덕에 1년 뒤 다시 동물원에 갔을 때는 둘째가 아장아장 걸을 때였다. 하지만 비탈길에 행여나 다칠까 봐 하루 종일 안고 다녀야 했고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실감해야 했다. 그렇지만 첫째가 제법 좋아하는 곳에 함께 갔다는 뿌듯함은 오래 가슴에 남았다.


1년 뒤에 "거기 가 본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푸르렀던 늦여름에 방문했다. 두 아이 모두 행복해하면서 뛰어다니다시피 했고, '아~우리 아이들 정말로 많이 컸구나.'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인생 샷도 건져 반년 동안 그때 찍은 가족사진이 핸드폰 화면에 깔려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아이들이 커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 그곳을..

지난 주말, 4번째로 재방문했다.


그날은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미 아이들과 동물원에 가보자고 약속했던 터라 약속을 어기면 난감해질게 뻔한 상황이었다. 핑크 색깔 옷을 입은 어린이는  반값 할인해준다는 정보 듣고 두 아이의 내복 위에 샛 분홍색 반팔티셔츠를 입힌 뒤 겉옷을 입혀 채비를 마쳤다. 동물원에 간다 하니 아이들도 신이 나서 서로 먼저 옷을 입겠다고 했다. "외출 준비야 매번 오늘만 같아라~~" 나도 예쁘게 분홍색 겉옷과 분홍색 가방을 둘러메고 나서니 진정한 봄나들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껏 들뜬 기분에

동물원의 한산함도 좋게 해석했다. 

사람들 없으니까 정말 좋았다!!


온다던 비도 안 왔다.


도착하니 딱 12시.

어라? 아기 동물들 퍼레이드 하는 시간에 딱 맞춰 왔네?

퍼레이드 중간에 먹이 먹는 아기동물들^^
이렇게 운 좋을 수가!!


유리창에 딱 붙어서 서성거리던 동물들

게다가 점심시간인지

거의 모든 동물들이 밖으로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제대로 본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이 났다.

오늘은 동물원이 우리 가족을 반겨주는 날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신이 난 나와는 달리 수의사인 남편은

"좀 이상한데.. 점심 먹을 시간이라서 이렇게 다 나와있는 건가?"

연신 "이상하다 이상하다"를 반복했다.


사진 속 호랑이 옆에 앉아 있던 삐~쩍 마른 호랑이를 보고는 남편이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안 와서 먹을 게 없나?"라고 하길래

"그럴 리가, 저 호랑이는 어디가 좀 아픈가 봐.. 얼른 나아라!"

이런 대화를 하면서

'생각 좀 긍정적으로 하지?' 속으로 핀잔 아닌 핀잔을 줬었다.


이 행복한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이 말이 된단 말인가!!!


한 바퀴 다~ 돌고

식당으로 갔다. 직원이 딱 한 사람 있었고

메뉴는 볶음밥 종류와 떡만둣국이 가능하다고 했다. 배가 고팠던지 아이들이 밥을 정말 잘 먹어 주었다. 옷 입기도 척척하더니 밥도 척척 먹어주니 이건 진이 빠지는 육아가 아니라 힘이 팍팍 나는 육아였다.


펭귄을 한번 더 보고 가려고 했는데 2시경, 비가 쏟아지고 있어 서둘러 길을 나섰다. 때마침 3식당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가니 기념품샵에서 우비를 팔아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비 맞지 않고, 노란색 우비 입고 사진 찍는 추억을 만들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노란 오리가족♡

"우리 오늘 진~짜 운 좋은 것 같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리고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핑크 옷 반값 할인 정보'도 알릴 겸 '재밌게 놀다 온 자랑'도 할 겸 카톡을 했다.


그날 저녁

카톡이 왔다.

"너 이거 알고 간 거야? 삼정 더 파크(동물원) 폐업한대~"


피곤해서 아이들과 잠들어 버렸던 나는

그다음 날 아침 그 문자와 인터넷에 실린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한없이 묵직해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독일의  한 동물원 동물들을 안락사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던 것인지, 동물원 폐업 뒤에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왔던 동물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들을 몇 번 접한 경험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전날 가까이서 보았던, 배고파 보이는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우리 가족 배만 가득 채운 뒤 비를 피해 서둘러 내려온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번 주까지는 폐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부산이라는 대도시에

동물원 하나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현실도 안타까웠고

가까이 볼 수 있어 더 마음이 갔던 동물들을 이제 못 보게 된다는 것도 슬펐다.


설마 독일처럼 되겠냐만은..

그 뒤 동물들의 안위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낀 그때, "글" 이 생각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용기 내어 썼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YJJMFn

나를 드러내는 용기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용기

세상이 따뜻하다고 믿을 용기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일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과 용기로

나는 오늘 처음으로 글의 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첫 시작'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학생 때, 재수할 때, 삼수할 때 '설렁탕'에 동그라미 쳐가며 읽었던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되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



날 스쳐간 많은 운수 좋은 날 중에

지난주 일요일은 '제대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구기지 않았을텐데..다시 펴서 사진으로 남겨본다. 마지막 입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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