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콕

너와 나의 거리, 2 metre.

난세에서 살아남기 prologue

by 외노자 정리

너와 나의 거리, 2 metre [1], 시작합니다.



짧고 강렬한 글을 쓰기 원했기 때문에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첫 번째, 일상 routine;

두 번째, 사회적 거리 두기 social distancing [2];

세 번째,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상 routines of social distancing.




첫 번째, 일상 routine.



매년 이맘때가 되면 영국의 일상은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1년 휴가를 최소 1년 전에 계획하는 '영국인'들은 준비해 두었던 스케줄에 따라서 산으로 들로, 따뜻한 나라로 떠납니다. 왜냐고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영국이라는 나라의 '날씨 weather'를 꼭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들의 인사말에서도 보통 영어 교과서나 생활 회화에서 배울 수 없었던 고질적인 논의가 꼭 이루어집니다. 바로 그것이 날씨이지요. 하기 예문으로 이어집니다.


Hey mate! Are you okay?

Today's weather is horrible/freezing/chilly/etc [3]


이처럼, 미국식 안부 인사인 how are you가 Are you Okay로 대체되고, I'm fine and you라는 교과서적인 답변 대신에 오늘의 날씨 Today's weather에 대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조만간 아주 화창한 날씨가 있을 거야' There will be a lovely weather sooner로 마무리되지요. 이처럼, 영국 사람들은 날씨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화창한 날씨에 대한 애착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부활절 휴가를 맞이하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즐겁게 가든파티를 하거나, 계획된 여행지 (주로 영국보다 '배'로 따뜻한 곳)등으로 떠나게 되는 것이죠.


우리 가족이 맞는 영국에서의 첫 번째 부활절의 일상은 제목의 커버 사진에서 보듯이 (오히려 무더울 정도로) 화창한 날씨 속에서 가까운 바다로 떠나 그 일상이 주는 안식을 맞이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더웠기 때문에 그늘을 찾아 헤매었었고 작은 그늘 속에 자리 잡은 우리 가족 곁에 영국인 노부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거리는 불과 50 centimetre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돗자리 왼쪽에 놓인 제 샌들과 그들 돗자리 오른쪽의 노신사의 신발이 닿을락 말락 했으니까요.


그러나, 잔잔한 일상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재미있게 노는 우리 아이 둘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밑의 조그마한 바닷물이 웅덩이처럼 모여 있는 곳에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가더군요. 아장아장 걷는 그 어린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우리 아이들은 아장아장 걷기보다는 첨벙첨벙, 텀벙 텀벙 파도를 일으키기에)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에 혹시, 아주 혹시나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옛말'이 불현듯 떠올라 그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가 물에 손을 넣었는데 그 아이의 생각보다 바닥이 깊었나 봅니다. 그 아이는 중심을 잃고 그 웅덩이에 머리를 박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 아이에게 달려가서 건져냈습니다.

멀리서 그 아이의 엄마가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아이를 안아서 진정시킵니다. 그리고 이 잔잔한 일상 속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주시합니다. 아이의 엄마가 저에게 스무 번은 넘게 고맙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떠납니다.


저는 주목받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이 엄마는 아이의 아빠를 저에게 데려왔습니다. 체구가 건장하고 울퉁불퉁 근육이 우락부락합니다. 저보다 2배는 큰 그 손으로 머리를 살짝 숙이며 고맙다고 말하며 악수를 청합니다. 제 옆자리의 노부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제게 잘했다 잘했어를 연발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사회적 거리는 닿을락 말락 하는 신발과 신발 사이,

혹은 악수 shaking hands 하는 두 손의 온기와 같이 그 거리를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



그러한 일상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습니다. 2 미터 metre라는 정확한 수치와 함께 신발과 신발 사이의 거리는 몇 곱절이 넘어버렸고, 악수와 포옹은 당연하게 사라졌습니다.


학교가 잠정적으로 문을 닫기로 한 3월 20일의 금요일,

가까이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즐겁게 재잘대던 학부모들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그 재잘거림의 템포가 반박자는 느려진 것 같고 왠지 다국적 부모들 사이에서 영국인은 영국인들끼리 (혹은 백인들은 백인들끼리), 동양인은 동양인들끼리 모여 서로 간에 '거리'를 두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시작한 이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가 중국과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죄인 된 마음'이 제게도 있었을까요? [4] 평소처럼 그들과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코로나 방학'이라고 떠들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재미나게 축구를 하고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이 상황을 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Year 4 저의 큰 아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평소와 같이, 3시 50분이 넘어가자 (3시 30분, 하교) 학교 관리인이 호루라기를 불며 'Go Home Guys!'라고 소리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웃으며 장난치며 조금이라도 더 놀려고 관리인 뒤로 숨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려고 노력했던 아이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관리인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축구 시합에서 시합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호루라기 소리인 것 마냥, 그들은 힘없게 bye mate, see you later,라고 인사를 하며 각자 부모님께로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작과 함께 잠정적 방학을 맞이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 사태 속에서 '영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




영국이 학교를 닫기로 결정하는 그 시점이, 진정한 확산 국면을 막기 위한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영국의 맞벌이 현황은 생각 이상입니다. 즉, 학교를 닫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학부모들'이 돌봐야 한다는 것이고, 학부모들이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회사들 또한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사회적 거리두기와 동시에 실질적 lockdown이 시작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회적 거리두기 속의 일상



잔잔했던 일상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파문이 일어납니다. 잔잔했던 오전 9시 반에서 오후 3시 반 사이의 '학부모들'의 자유시간들이 빼앗겼습니다. 자유시간을 빼앗긴 학부모들은 여전히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또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가정이 일터가 되고,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부부는 결심했습니다. 오전/오후로 나누어, 학교와 동일한 환경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기로 했지요. 오전에 아내가 교사를 맡게 되면, 오후에는 제가, 오전에 제가 맡으면 오후에는 아내가, '점심'준비는 오전 강사가, 저녁 준비는 (보통은) 아내가 합니다만 생닭을 손질한다던지, 고기를 썰거나 밥을 안치는 것은 제가 담당합니다.


1주.

2주..

그리고 3주...


파문을 잠재우기 위한 잔잔한 일상이 시작된 지 오늘로 만 3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주'부터는 school term으로 따지면 Easter break 봄방학에 해당합니다만, 우리 부부의 멘털 보존과 아이들이 한 번에 긴장을 놓지 않기 위해 단축수업을 이번 주에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 여유롭게 수업은 하되, 여전히 그들의 일상은 우리 부부와 함께 바삐 돌아갑니다.


그런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두 번째 부활절'이 찾아오려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4월 10일, 고난주간 마지막 성삼일 중 두 번째인 금요일에 도달했습니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고, 토요일만 버티면, 바로 '부활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과 같이 따뜻한 날을 맞이하여 산으로, 들로 떠날 수 없습니다. 아직도 lockdown은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력한 지난 3주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속의 일상은 부활절이라는 잠정적 '종결 시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3주만 버티자' 21일이 지나면 어떻게든 회복이 될 거야.


왠 걸요?

Source: worlodometers.com


그 추세가 조금 잠잠해진 것 같습니다만, 아직 최소 2-3주는 더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속히 그 힘을 잃을 수 있도록 소망하고 또 소망하며, 오늘도 두 손을 모읍니다.


고통 속에 있는 많은 분들의 삶에 다시 '일상'이 돌아오기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원칙이 다시 수면 속으로 가라앉고, 우리의 일상적 거리가 회복되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 뒷마당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야.



감사합니다.






[1]

굳이 영국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metre나 meter나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음을 굳이 또 알려드립니다. 현재 영국에 적을 두고 있으므로, 영국식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은연중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식 표현에서는 'meter'로 쓰게 되면 한국식 영어인 '미터기 (계량기)'를 의미하게 됩니다.



[2]

사회적 거리두기는 더 이상 캠페인 campaign 이라든지, 운동 movement 가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원칙 principal이 되었습니다. LINK (NHS-The UK)



[3]

음습하다는 모든 표현을 이 곳에서 다 들어보았습니다. 한국말인 '음습하다'의 뜻의 두 번째, (날씨나 분위기가) 흐리고 으스스하며 눅눅하다가 바로 '영국 날씨 - 10월에서 3월'에 해당합니다.


다음 국어사전에서 인용


[4]

2020년 3월 20일 기준, 영국의 확진자 수는 3983명, 중국의 확진자 수는 81008명, 한국의 수는 8652명으로, 다분히 '영국'입장에서는 중국과 한국이 '걱정'되지, 영국이 이 정도까지 확산 방지에 실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만 빼고요.)

Source: worldometers.com
Source: worldome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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