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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노자 정리 May 31. 2020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나의 삶.

목적이 이끄는 삶 (8): my case

이 이야기는 인터뷰의 형식을 따서 본인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던 2014년 말의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고찰하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총 10편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고, 오늘 그 여덟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8.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나의 삶.



성경, 그리고 단군신화

성경 속에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작은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단군신화의 시작은 환인의 서자인 환웅에서 시작하지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데라의 아들 아브람 (이후 아브라함)에서 시작합니다.

이 사람은 아주 오래전, 4대 문명이 시작된 물줄기 중 하나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강 아래쪽에 있는 지역인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에서 살았는데, 매우 비옥한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가 강의 상류 쪽인 하란이라는 지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하란이라는 지역은 이슬람교, 유대교 천주교와 기독교의 성지 순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그들 모두가 이스라엘의 시작점인 이 땅, 하란을 기념하기 때문이지요.

단군 신화 속에는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환웅이 자리를 잡습니다. 바람, 구름, 비를 관장하는 세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지요. 그러나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는 정확히 어디를 뜻하는지 고고학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꼭 밝혀졌으며 좋겠습니다.

Harran and other major cities of ancient Syria, by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반면 갈대아 우르와 하란이라는 지역은 고고학적으로도 이름난 도시입니다. 기원전 역사 속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앗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제국을 넘어서 다양한 역사적 배경들이 이 곳을 거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이름부터가 하란, 우리말로 길목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고대국가들이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현재 하란이라는 지역은 터키의 Şanlıurfa라는 지구에  속해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비옥한 땅과 문명이 발달된 도시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그리고 그는 지체 없이 떠납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나도 달콤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며, 복의 근원이 될 자격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복의 근원이란 우리가 아는 그 복과도 어느 정도 연관은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새해에 많은 분들과 누군가의 허락 없이 자유롭게 나누는 덕담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복의 근원이 되는 자격이란 다시 말하면, 새해에 복을 받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연 설명하면, 성경에 그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을 준다고 하였고,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그를 통해서 복을 받는다고 약속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너무 황홀해서) 정신이 혼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래 그림과 같이 모든 식솔을 거느리고 하란 지역을 떠납니다.

Abraham depart out of Haran, by Attributed to Francesco Bassano the Younger - www.rijksmuseum.nl

그가 떠난 곳은 바로 가나안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또 한 번 약속합니다. 그 땅을 그에게 주겠다고 말이죠. 이미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를 한 민족의 수장으로, 그를 통해 수많은 자손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보장받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100세가 넘도록 자손이 없었습니다. 그런 인내의 시간을 지나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습니다. 야곱, 성경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팥죽 사건'은 아실 것 같은데요. 야곱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배가 고파진 형의 면전에서 맛있는 팥죽을 끓이며 천진난만하게 말합니다. '형, 이거 먹고 싶으면 나에게 장자권을 줘' 바보 같은 야곱의 형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그의 장자권 (형의 권리)를 팔고 말지요. 이 야곱은 향후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이름이 변하게 됩니다. '너를 이제부터 야곱 (속이고 뺏는 자)가 아닌,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기다)로 하라.'


이스라엘, 약속과 고난

아브라함이 실질적으로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자손들은 가나안이 아닌 이집트에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의 아들인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입니다. 뒤에서 두 번째 아들인 요셉이 이집트에 노에로 팔려가 총리라는 지위까지 올라가고, 이후 야곱 (이스라엘)과 그의 아들들은 흉년을 피해 이집트에 살게 됩니다. 물론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총리의 가족이라는 지위 아래)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집트 사람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흘러 결국에는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그 시간이 바로 430년입니다.

 

단군신화에서 시작한 고조선이 조선이 되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고통받던 시절이 약 40년(1910 - 1945년)이 채 안됩니다. 이들은 이의 10배나 되는 시간을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시면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노동력을 이집트에 공급했는지 부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결국 이집트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나아갑니다.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거기에 사는 족속 중 하나인 아낙 자손들은 거인과도 같은 신체조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신체적으로 몇 배는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몇 개의 단어들로 극적인 반전을 맞습니다. '마침내, 그러나, 결국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라'


그들은 돌고 돌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고, 그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완성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사이에서 그들은 그들의 조상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람난 아내를 처절하게 잡는 남편의 모습같이, 혹은 잘못된 길을 가는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사랑의 외침이 성경 곳곳에 녹아있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과 바벨론 제국의 포로 생활로 나라의 기반이 흔들려 갑니다.


이스라엘의 모습과 나의 모습,

지금 이스라엘과 저의 모습을 봅니다. 제가 떠난 그 시점인 2017년의 한국도 너무나도 좋았던 때입니다. 해외 현장에서 개처럼 일하다가 본사로 발령이 나니 얼마나 좋던지요?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이 도합 2시간이 넘었지만 전혀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벽같이 (07시 이전에) 출근해서, 칼같이 (18시 이전에) 퇴근하였습니다.

그런데 왠 걸요? 갑자기 정부에서 주 40시간 근무가 발표되어 5시 30분이면 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도 저녁 6시 반이었습니다. 회사가 변하는 것이 느껴지고,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work and life balance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결국에 저는 저의 목적이 이끄는 대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lockdown의 중심에서 많은 글들을 보았고 저의 것으로 소화하여 저의 글쓰기에 매진하였습니다. 지난 4월부터 어제까지 총 30편의 글을 브런치를 통해 써왔습니다. 워드 파일에 옮겨보니 한 편당 1000 - 1500자 내외로, 총 4만 5000자 분량의 글들을 써왔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요?

길지 않은 시간을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영국에 와서 늦은 나이 (만 35세)에 시작한 학문적 도전이 쉽지 않아 매 순간이 저에게는 도전이었습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취업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결국 목적이 이끄는 대로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결국에,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난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걸어갑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의 일부를 그 목적을 향해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그러나,

마침내,

결국에 라는 단어들이 여러분의 인생길에도 분명히 있을 것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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