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2): my case
이 이야기는 인터뷰의 형식을 따서 본인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던 2014년 말의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고찰하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총 10편의 이야기가 준비되어있고, 오늘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월급쟁이의 삶과 해외 현장에서의 삶은 극과 극이었으며, 더욱이 가족들과 함께 현장에 부임한 저는 저의 고통의 갑절만큼 아내와 아이들 (당시 3살, 10개월) 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지금도 그 시점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힘들어 말을 잊지 못합니다.
그만큼 직무환경이 최악이었기에 아내의 마음에도 힘든 하루하루가 모여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았습니다. 아부다비 현장에서는 4개월 만근 시 2주간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세 번째 휴가 즈음이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영국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스웨덴에서 공부하는 친구와 영국에서 만나서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작품들도 보고 공연들도 보고 싶다고.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일언반구, 거절의 ‘ㄱ자도’ 꺼내지 않고 허락했습니다. 아내가 오죽하면 4살 큰아들과 돌이 9개월 지난 둘째를 두고 가겠다고 했을까. 마음이 아팠지만 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후련히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알기에, 재충전의 시간이 되리라 확신했습니다. 아이들 둘을 돌보면서 제가 작성한 블로그의 글이 있는데 한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블로그: https://m.blog.naver.com/drleepr/220681205571
아이들과 티격태격 아웅다웅 지내는 일상이 바쁘면서도 어찌나 즐겁던지요. 그래서 마음은 더 안타까웠습니다.
왜 한국의 건설업계는 이다지도 자기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없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삼국인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시간을 소비해서 (물론 돈은 네 곱절 이상 받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건설사의 사업 모형 BM이 구조적으로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는, (잘해야) 수익률 4-5% 내외의 악독한 환경이기에 [1]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에는 그 후 폭풍을 예상할 수 없겠지요.
그리고, 회사의 목적이 수익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결국 그 수익의 구조에 대해서는 제 자신이 취업 전에 더욱 확실히 파악하고 갔었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했던 제 잘못이지, 회사의 잘못은 아닙니다. 노동 시간이 많을 뿐이지 월급은 매우 적당하게 줬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쓴 글: 채찍의 끝에 위치한 건설 업계 이야기는 별도의 글이 있으니 참조하세요.)
이런 마음속에 폭풍과 같은 잡상들이 소나기처럼 내리는 그때, 아내가 영국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잠정적으로 이 곳을 떠날 것임을 작정했습니다.
재충전한 활기 충전한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
아내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곧 과장 진급을 눈앞에 든 저의 결정에 대해 그 어떤 주저함 없이:
‘응! 그러자’
라고 대답을 했지요. 오히려 제가 더 민망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생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속 생각이 가는 데로 내뱉은 잠정적 결론이었는데 말이지요. 그냥 좀 투정 부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아내의 확신에 가득한 답은 저를 체계적인 생각과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숲에서 나무를 보는, 탑 다운 리서치 Top-down research를 지금도 좋아하는데요. 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가장 잘 아는 Quantity Surveyor, QS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QS-> 어디가 원산지? -> 영국!
그렇다면 영국이 답이지요?
아내가 영국에 다녀온 것이 저에게는 정말 가나안을 정탐한 열두 정탐꾼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QS의 자격을 취할 수 있는 QS-accredited university 들을 찾아보았습니다.(물론 이 대학들을 나온다고 해도 APC의 과정은 동일합니다.)
다양한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QS의 기초에 대한 커리큘럼을 보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QS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단지 ‘자격을’ 득하는 것일 뿐인데 이것을 목표로 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다시 건설을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과 같다.’
‘QS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한국) 건설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나은 건설업을 꿈꾸기 의한 디딤돌의 과정이다. (QS의 자격은 지금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건설업, 나아가서는 건설과 연관된 경영, 경제 부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경제 경영 부분을 좋아했던 과거의 투자경험들에 비추어 보면서 말입니다. 하여 곧바로 대학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직접 학교 홈페이지들을 하나하나 방문해 갔습니다.
제가 아는 영국 대학은 옥스퍼드와 캠브릿지 밖에 없었고 거기서는 건설 construction에 대해서는 석사 과정 master course가 전무했습니다. 당연하지요. 순수학문 중심인 두 대학에서 건설학은 끼어들 틈이 없었겠지요.
다시 THE [2] university ranking에서 top-down으로 내려가며 그 밑의 대학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몇 가지 대학들을 손에 쥐었습니다.
Reading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Bartlett
Manchester
Sheffield
Glasgow
Edinburgh
등이었습니다. 각 학교마다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가 있었으나, 스코틀랜드의 억센 환경과 악센트를 고려해서 글라스고와 에든버러는 제외하고 나머지 세 학교의 하기 과정을 선택하였지요.
Reading: commercial management of construction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Bartlett : construction economics and management
Manchester: construction management
당시 Reading을 제외한 두 학교의 세계 랭킹은 극도로 높아서, (UCL의 경우 세계 11위), 레딩을 제외한 다른 두 대학은 입학에 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학교에 철저하게 지원 준비를 하였습니다. 각 학교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그 학교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Give and take와 비전 vision을 섞어서 Statement of Purpose, SOP를 작성하였습니다.
영국 대학들은 유명할수록 등록금이 비쌌습니다. 상기 학교들의 등록금 순위는 하기와 같았습니다.
UCL (23000 £)
Manchester (21000 £)
Reading (18000 £)
보시다시피 격차가 상당했으며, 저희 형편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의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을 (2200원 대에서 1400원대의 후반의) 통해 잠정적인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 서비스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저에게는 더욱더 확신을 주었습니다.
‘지금 가야 한다.’
그리고 세 군대 학교 중에서 두 곳의 학교에서 conditional offer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컨디션이 제 아부다비의 마지막 1년을 무한하게 영향을 주었음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던 그 조건의 첫 장을 다음 챕터에서 열어보겠습니다.
3편: 나의 적은 나, 그러나 IELTS는 공공의 적에서 이어집니다.
[1] THE: Times Higher Education 2020에 따르면 건축 (Architect) 분야에서 UCL의 위상은 세계 딱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한 Bartlett 단과대학에는 Architect, Planning, Construction and Project Management(CPM)등이 있으며, 저는 마지막에 언급한 CPM에 속해 있습니다.
- THE: https://www.timeshighereducation.com/world-university-rankings/2020/world-ranking
- Bartlett: https://www.ucl.ac.uk/bartlett/
[2] 수익률 4-5% 내외: https://assets.kpmg/content/dam/kpmg/kr/pdf/kr-ifa-construction-industry-20180927.pdf
좋은 자료입니다. 제가 정말 고민이 많았던 2014-2017년의 수준에서 현재는 그래도 많은 (이익률 측면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지만, 결국은 ‘판관비’의 절감 효과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쥐어짠다고 다는 아닐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