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론, 그리고 투자의 기록
* 본 글은, 100억 plan a to z라는 전자책의 일부를 종이책 출간을 위해 고쳐 쓴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해당 전자책은 이 곳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77381/review.
채찍 효과라는 말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채찍 효과를 "Bullwhip effect를 공급사슬 관리 supply/demand chain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 중 하나로, 이것은 제품에 대한 수요정보가 공급사슬상의 참여 주체를 하나씩 거쳐서 전달될 때마다 계속 왜곡"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위키피디아, 2020).
채찍의 끝부분이라는 단어는 건설업계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채찍의 끝은 원자재를 이용한 사업, 특히 중공업과 건설업체들이 관련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채찍의 끝 산업 (건설업과 중공업)에 특화되어 발전해 왔었고 세계 경기에 또한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 채찍의 손잡이 부분은 왜곡이 심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이득이 많다. 건설사를 예로 들어 보자.
저자는 H건설 화공플랜트 사업부에 속해있었는데, 이러한 빅 5건 설사들을 흔히들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는 EPC COMPANY라고 명명한다. EPC라는 것은 (Detail) Engineering, Procurement 그리고 Construction으로 (상세) 설계, 자재들의 구매/조달 그리고 현장 시공을 통틀어 진행하는 turn key 회사들을 말한다. 이러한 EPC 회사들의 위에는 범접할 수 없는 발주자들 Client (사우디 아라비아의 SAUDI ARAMCO,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SHELL과 BP British Petroleum, 베네수엘라의 PDVSA, 아랍에미레이트의 ADNOC, 그리고 쿠웨이트 Kuwait Oil Company KOC 등등)이 있다. 자, 그렇다면 발주자들은 프로젝트에 돈을 댄다. 한 마디로 돈의 흐름의 시작은 이 회사들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이 돈을 이용해 '자원' resource를 발주자의 스펙 specification에 맞게 구매하고, 조달하여 현장에서 시공하는 것이 바로 EPC 회사들이다. 이러한 EPC 회사들과 발주자들 사이에 속하는 채찍의 손잡이 부분에 속하는 회사들을 FEED, FRONT - END ENGINEERING DESIGN 업체들이라 칭한다. 이들은 Licensor들과 손잡고 공사의 뿌리부터 큰 줄기들까지 큰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DESIGN이다. 즉, Engineering보다는 상위의 개념이며, 밑그림이 없이는 EPC 회사들이 상세한 스케치 (상세 설계 및) 제대로 된 구매를 진행할 수가 없다. 채찍의 손잡이에 속한 이들은 또 있는데 바로 PMC라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회사 PROJECT MANAGEMENT COMPANY들이다. 이들 또한 발주처, FEED 등과 평행 선상에 있는 회사들이다. EPC 회사들이 인력을 동원하여 실제로 화공 플랜트의 시작과 끝을 세세하게 그리고, 색칠해 나간다면, PMC 회사들은 발주 처가 정한 큰 그림에 맞게 이들이 색칠을 하는지 점검하고, 또한 간섭한다. 그리고 중요한 의사 결정의 단계들은 여전히 EPC 회사에서 가져야 하며, 발주 자와의 분쟁이 발생할 때에도 PMC들은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경향이 있다.
말 그대로 이들은 PMC;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서 공사관리(EPC COMPANY MANAGEMENT)를 한다. 공사가 수행되면 이들 PMC 또한 EPC 회사들의 또 다른 발주처 CLIENT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군다나 이들은 PMC를 하면서(도) EPC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회사들이며, 그런 회사들은 EPCM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BECHTEL이 이 사업 부분에 능하다.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프로젝트의 구조가 아래와 같이 간단해진다.
CLIENT
FEED (+LICENSOR) - PMC (+ EPC)
SUB-CONTRACTOR of PMC
PMC에서 EPC를 수행하게 되면, 하도급 계약은 CLIENT와 SUB-CONTRACTOR 간 Direct로 이루어진다.
물론 보통은 이렇게 간다:
CLIENT
FEED (+LICENSOR) - PMC
EPC
SUB-CONTRACTOR of EPC
발주처는 생각보다 PMC의 말을 잘 듣는다. 충고도 조언도, 그러나 실무는 모두 PMC와 EPC업체들 간에 이루어진다. 이들 PMC와 FEED업체들은 일반적으로 시공을 할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그저 설계용역비, 공사 관리비만 받고 그로 인해 순수익이 엄청 높을 뿐이다. 말 그대로 공사대금을 발주 처로부터 지불받으면 인력비용과 기타 잡비만 제하면 모두 순이익으로 돌아간다.
반면, 3조짜리 EPC Lump Sum 공사라면 건설회사. EPC 들의 몫은 기본 이윤은 보통 많이 남기면 3~5%에 불과하다. 정말 전설적인 공사 수행이었다면 6~8% 이상 남길 텐데 쉽지는 않다. 적어도 저자는 짧은 9년의 건설 생활에서 그 정도의 영업이익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3조의 공사를 수행해도 최대의 전설적인 영업이익은 3천억에 그친다고 봐야 한다. 국내 건설 회사 중에서 현대건설은 특히 매출에서 해외 비중이 비약적으로 높은데 현대건설의 연간 영업이익률이 최고점이었던 2010년의 경우 6.9%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공사는 수주해도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2013-2015년 사이의 대표적인 예가 삼성 엔지니어링이다. 이 회사는 2013년 상반기까지도 마이너스 영업이익률 (-6%)를 기록하며 (저가) 수주 행진을 이어간다. 그 회사를 욕 하는 것이 아니라 EPC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크게 대조를 해보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현대건설도 수주한 공사의 실행률에 따라 그 영업이익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익을 남기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하도급업체 관리, 발주처와 PMC의 등살을 견뎌야 하고 혹시라도 공기를 어기면 공사대금의 몇%를 Liquidated Damage, 일명 LD로 일정 금액을 뱉어내야 한다.
그러나 PMC와 FEED업체는 총 공사금액의 보통 7~10% 정도를 수주받는다. 시공과 구매가 없이 설계와 관리비를 용역으로 받기 때문에 순 수익률이 상당히 높고, Risk도 적다. 보통 RISK는 공사의 시작 부분이 가장 작고 공사의 끝 부분에서 가장 커진다.
FEED업체도 EPC 업체를 경쟁 입찰시키기 전에 FEED회사끼리 경쟁을 시키는데 EPC 회사들은 감히 저 경쟁에 끼어들 수가 없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해야 되겠다. 한국 건설회사들이 가진 석유화학 분야의 지식들은 너무나 얕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설계 중심적으로, 상세 설계에만 집중되어있다. 그려 놓은 밑그림에 색칠을 하는 것. 이 색칠은 밑그림의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되고 큰 가지 하나라도 다른 방향으로 그릴 것을 제안하면 난리가 난다. 또한 어떤 색으로 칠하고 어떤 붓과 어떤 물감을 써야 하는지도 국제적으로 규정되어있다. 예를 들면 ASME / API 등이다.
그래서 혹여 라도 FEED에서 규정해놓은 붓과 물감을 쓰지 않을 경우는 다시 색칠해야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EPC 회사의 상세 설계 Engineering 부서는 고정화된 틀에서 생각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버렸다. 프로젝트의 큰 틀을 보는 눈을 키우기도 어렵고 시작과 끝을 Design 하기가 (당연히) 쉽지가 않다.
여전히, 한국 건설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EPC와 PMC를 같이 수행하는 BECHTEL과 같은 EPCM 개념의 상위 회사로 나아가거나, 밑그림을 키우는 능력을 길러 FEED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인이 역경에 강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20세기의 한국인이다. 21세기에 휘둘러지는 채찍은 그 효과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견디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인 21세기라는 '난세'에 돌입한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계속되는) 엔화 약세로 일본 EPC 업체의 공격적으로 수주활동을 펼쳐가고 있고, 중국의 대형 건설회사들은 자국 내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들만의 기록 track record를 쌓고 있다. 여러 신흥 EPC 업체들 (중동과 인도)의 EPC 시장 진출은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먹거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이 난세 속에서 채찍의 끝에 위치한 건설 사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당연히, 채찍을 휘두르는 손잡이를 향해야 할 것이다.
* 2014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쓴 글을, 2019년에 석사 유학을 통해 생각을 날카롭게 정리하여, 2020년에 브런치에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