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 첫 번째 두드림
이 글은 상식의 노크, 콕: 첫 번째 두드림의 '그 사이에 콕' 부분에 수록된 글입니다. 정식으로 콕COC과 저작권 계약이 되어 출판된 글이므로 무단 전재/수정/재배포는 저작권 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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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꽃피는 나무」
간질간질 앞서 걸어간다
토요일이다. 서울에서 늦은 근무를 마치고 오랜만에 전주에 딸이 도착했다. 아들은 원격수업으로 리포트와 기말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내와 나는 늘 반복되는 삶에서 하루라도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서로를 챙기느라 거실은 늘 여유롭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서로 조용조용 발걸음을 옮기며 배려하는 모습에 미소가 머문다.
특히, 아침잠이 없는 나는 새벽마다 까치발을 하고 거실과 공부방을 오가며 운동 준비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늘 아내는 눈을 비비며 잠과의 전쟁을 치르곤 한다. 정말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새벽 5시, 오늘도 알람은 울리지도 않았다. 나는 가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조심스레 새벽 운동을 나서기 위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신는 순간이었다. 거실에는 이미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도 운동복 차림으로 새벽 운동 준비가 마무리된 상태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다시 한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가족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요즘 가끔 아내가 새벽 운동에 동참했다. 그렇지만, 전 가족이 새벽 운동을 나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얼마만의 일인가? 우리 가족 넷이 모여서 새벽 운동을 한다는 것이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울 아들이 운동을 나간다고? 아직 잠을 안 잔 것 아니니? 날을 샌 것 같은데”
“울 딸이야 부지런하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들은 의외 인디? 괜찮겠어! 아들”
“그래, 울 아들 괜찮겠니?”
“그럼 내가 누군디, 00이야, 000, 그 유명한 새벽 물 찬 갈매기 박 00을 모른단 말입니까?”
“음, 당신은? 우리 딸은?”
그렇게 새벽을 열며 우리 가족은 맑은 공기와 푸른 나무와 동이 트기 전의 어슴푸레한 하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임에도 산책로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뛰다가 걷다가 계획 없이 움직이는 사람, 목숨을 걸고 운동하듯이 너무나 진지한 사람,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며 걷는 사람,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 억지로 끌려 나온 사춘기 아들딸을 챙기느라 운동은 뒷전인 아빠와 엄마 등 다양한 영상이 만들어진다.
가족과의 모처럼 새벽 운동에 들뜬 나와는 달리, 아내와 딸, 아들의 반응은 특별하지 않았다. 저만치 앞서 당당하게 걷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걷던 나는 ‘그래, 뭐, 나 혼자라도 좋아하면 그만이지, 이런 날이 몇 번이나 있겠어? 오늘 주어진 시간에 많은 이야기보다는 사소한 것이라도 알아 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지’라는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했다.
언제부터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 것일까? 젊은 시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곤 하였다. 여행도 혼자 가고, 고향 집을 방문할 때도 일부러 빙빙 돌아서 가는 완행버스를 즐겨 타곤 했다. 이리저리 돌아서 가는 버스 여행도 나름의 맛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으면,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나름 그 지역의 특성을 전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나 흘렀다고 내가, 이다지도 변해버린 것일까? 한 번은 나 자신의 걸어온 삶과 걸어가야 할 시간을 정리하고 설계해야 할 때 이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은 ‘먹은 것 없이 배부른’ 행복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의미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래도 진정성을 가지고 정리해 보니
되뇌고 되뇌지 않아도 될 만큼
오늘도 다시 달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건강이라는 두 글자에 콕 박힌 영혼 없는
가장이 한심스러워 보일 때
환하게 웃으며 찾아온 딸아이의
미소는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낙타의 울부짖음으로
오래오래 서로에게 남겨진 덩어리 하나가 된다
너무도 포괄적인 단어, 가족
얼마나 소중한지 달려와 준 딸
원격수업 기말고사를 잠시 접고
맑은 공기 가득 던진 아들과 아내는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싱그러운 풍경화 화첩에
따사로운 태양이 간질간질 앞서 걸어간다
박여범, 「간질간질 앞서 걸어간다」 전문
오늘 내가 걸어야 하고, 달려야 하는 의미를 찾으려 수고할 필요가 없다. 되뇌고 되뇌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단어는 ‘건강’이다. 틀에 박힌 운동으로 영혼 없는 몸짓에 그친다고 생각하니 한심스러워 보인다. ‘말’보다는 ‘실천이 먼저다.
이럴 때 환하게 웃으며 찾아온 딸아이의 미소는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낙타의 꿀맛 같은 외침이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소중한 것을 잠시 내려놓고 맑은 공기 가득한 아들, 아내와 함께 그림으로나 만날 수 있는 싱그러운 풍경과 화첩을 만들고 싶다.
칠월의 햇살이 간질간질 따사롭더라도…….
단순하지만, 가족과의 새벽 운동이라는 소박한 삶 하나로 추억을 만들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 ’ 추억‘은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가능하면 좋은 추억을 남기고자 한다. 그런데도, 혹여 기억하고 싶지 않은 ’ 추억‘이 오래 남을 수 있다. 그 ’오래 남음'을 ‘좋은 추억’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정신 건강이 더욱 필요한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추억’의 현장에 서 있는가.
다음 호 줄거리,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중학교 3년 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제법 공부를 했던 친구는 청주로 진학하였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교 시절 지나가는 소식을 접했을 뿐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나이가 나이인지는 몰라도 서로를 찾는 문자와 밴드, 블로그 등이 그리움의 이어주는 매체가 되었다.
‘혹시, 00 중학교 친구 여범이 아니니?’라는 이 짧은 문장은 40년 세월을 종이 한 장의 추억으로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친구는 친구다. 000 친구를 40년 만에 만난 그날의 마음을 시와 글로 함께 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도,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그립고 보고픈 친구를 찾아가는 글쓰기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망설이면 많은 것이 지나가 버립니다. 어깨를 펴고 ‘시가 꽃피는 나무’에 물과 햇빛 그리고 맑은 공기를 가득 채워주는 글쓰기에 손을 잡아 줄 것으로 믿습니다.
박여범
시인,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로 전북문인협회, 남원문인협회 회원, (사)전국 독서 새물결 모임 연구원으로 활동, 전북 타임스 신문과 전북매일신문사 오피니언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문경출판사), 『독서로 행복해지는 한 권의 책』(부크크), 『시詩가 꽃 피華는 木나무』(부크크) 외 다수가 있다. 전북대, 군산대, 광주대, 서남대, 중부대, 한국방송대학교에서 글쓰기와 비평론에 대한 다년간 강의를 진행하였다. 현재는 용북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