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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Oct 19. 2023

그저 주는, 풍경소리

관옥 이현주의 비빔밥 사유로 채워진 무가지 이야기


십수 년 전, 가을빛이 완연한 덕수궁 모처에서 함석헌 선생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아담한 키에 강렬한 눈빛, 넥타이보다는 생활한복이 잘 어울리는 관옥 이현주 목사님을 처음 뵌 날이다. 목사님의 강연 속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도 처음 만났다. 그날이었다. 골통 보수 기독교인이던 나의 사고에 살짝 실금이 가기 시작한!


'Spirirual but not religious'

내용(영성)보다 형식(종교)에 치중하는 기독교를 떠난 자의 '남은 불안'에 관옥 목사님이 발행하는 <풍경소리>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풍경소리>는 잘 쓴 글로 채울 생각 없습니다.

꾸밈없고 정직한 글 그리고 일상에서 진실 <진리>을 실험하며 느끼고 깨닫는 글이면 환영합니다. 재미는 없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체험에서 우러난 글 또는 시를 기다립니다.


<풍경소리> 책은 매긴 값이 없습니다. 돈 받고 팔지 않습니다. 달라고 하는 분에게만 거저 드립니다. "좋은 것일수록 함께 나누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좇아서 펴내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의 소개글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이름만으로도 푸근한, 순천에서 올라오는 보석 같은 사유와 묵직한 시들은 한 달간 먹고 남을 만큼 충분하다.



90%의 필자가 무명인데, 이번 호엔 그중 나름 유명有名인이신 박두규 님  시가 마음을 때린다.



우주의 저울/ 박두규


강가의 돌멩이가 하릴없이 물결에 쏠리는 일이나 꿀벌 한 마리가 태어나 죽는 일이 모두 우주의 질서이고 리듬이다. 태양과 많은 행성과 그리고 사람들, 바닷속 물고기 한 마리까지도 동등한 무게로 그 질서를 이루고 그렇게 유지되는 우주가 마음의 균형이다. 졸참나무 도토리 한 알과 강을 건너는 새 떼들, 슬픔에 겨워 잠 못 이루는 그대까지 모두가 우주의 저울 위에 있는 것들이다.


수평의 저울이 기울고 우주의 흐름과 균형을 깨는 것은 오로지 나를 묶고 있는 나, 나의 감옥, 나의 마음 때문이다. 마음이 안과 밖으로 나뉘어 저만의 반경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균형 잡힌 마음의 집이 무너지고 종일토록 조울躁鬱과 혼란의 시간이 흐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일상의 작은 슬픔과 기쁨에도 우주가 흔들리고 두려움에 휩쓸려 어둠의 숲을 헤맨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단호하게 날아오르는 새가 먼바다의 수평을 보게 되리. 외롭고 두려운 스스로를 가여움으로 품어내는, 끊임없는 그 날갯짓만이 生의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으리. 그리하여 비로소 혼돈 속 우주 질서의 대열에 들게 되리. 다시금 빛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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