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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Nov 21. 2023

다 주고도 넉넉한 섬, 거제

해달별 품은 거제 가라산 트레킹, 23-11-18

물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 함민복, 섬(전문)




일박여행이라 여유 있게 아침 9시 천안을 출발했다.

살짝 아쉬운 맘은 어제 내린 첫눈이 꽤나 푸짐해서 광덕산 정상의 상고대가 눈앞에 아른 거린다는.

다행히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창 밖이 온통 설국이다.


금산 추부면 어디쯤 창밖 풍경


멀리 흰 고깔모자를 쓴 남덕유산이 보인다.

올 가을은 최악의 단풍 때문에 아쉬웠는데, 본격적인 눈꽃산행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구름 위에 머문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남덕유산(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 사진이!!)



통영 이마트에서 장을 봤다. 마침 쓱데이?라나 마트 안은 인산인해, 콘서트장 같다.

덕분에 횡성한우를 40% 세일가로 득템!

다음 목적지는 통영수산시장, 남자 손바닥보다 큰 가리비와 왕소라, 삐꾸리, 굴 2kg을 쓸어 담았다. 숙소인 거제 학동마을의 아담한 2층 펜션에 짐을 풀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해달별이다.

첫날 저녁 낙조를 보고 이튿날 새벽에 은하수, 그리고 거제 해금강의 일출을 볼 계획이다.

은하수를 보려면 일단 달이 어두운 그믐즈음이어야 한다. 미세먼지가 없는 강원도나 남해안쪽이라면 확률은 더 올라간다. Y대장은 이런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여 몇 달 전에 날짜를 잡았다.


낙조시간에 맞추어 차를 몰고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잠시 머뭇하더니 위험해 보이는 경사의 좁은 도로로 내려간다.

역시!! 이번에도 대장의 촉수가 제 몫을 했다. 홍포선착장 테트라포트 위에서 파도소리를 반주로 바라본 낙조는... (말을 잊음)



숙소로 돌아오니 배에서 소리가 난다.  

펜션의 주인장은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의 청년과 백발의 어머님이신데 얼굴에 '친절'이라고 써있다. 한우와 해산물 파티를 위한 숯불과 찜통을 뚝딱 준비해 주신다. 와인 전문가인 C형이 화이트와 레드를 고루 준비해 주셨다. 다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고 하면서도 해물라면까지 깔끔하게 흡입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나뭇가지 위 손톱달이 선명하다.


"별과 해만 있는 거 아니라고, 내가 있어야 완성"이라고 침묵시위 중.


 


많은 사람이 자정 즈음일 거라고 잘못 알고 있지만, 밤하늘이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뜨기 한 시간쯤 전이다.

Y대장은 5시쯤 우릴 깨웠고 가로등 하나 없는 산중턱의 비박지로 안내했다.

헤드라이트를 끄자 완벽한 어둠, 머리를 드니 별들이 쏟아진다.



우측 하단, 방패모양 오리온 찾으셨나요?


나 모르면 간첩,  북두칠성



은하수를 보지 못해 살짝 아쉬웠는데, 마음을 달래 주려는 듯, 멀리 별똥별이 휘익 떨어진다.


다음 코스는 해금강 일출!

해금강 사자바위 입 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그렇게 장관이라는데 일 년에 두 번 밖에 볼 수 없단다.

해금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출시간에 맞추어 우제봉을 올랐다.

코 앞에 해금강과 사자바위, 그리고 부지런한 고깃배들이 보여주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바람도 구름도 없다.

오롯이 바다와 하늘과 사뿐히 떠 오르는 태양뿐.


'한 입 베어 물면 입천장을 벗겨낼 뜨거운 홍시 같다'


 

우제봉의 퍼펙트 일출


해금강 명물, 사자바위


학동 해변의 명물 몽돌해수욕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근처 식당에서 굴국밥으로 배를 채웠다.


넘 이뻐 돌멩이 하나 들고 온 일행이 있음은 절대 비밀


오늘의 미션은 트레킹, 학동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목표는 거제 최고봉인 가라산, 해발 585m로 부담 없고 바다조망이 기가 막힌 대표적인 섬트레킹 코스다. 걸음이 빠른 이들은 가라산(585m), 노자산(565m), 망산(397m)까지 하루에 완주하기도 한단다.

나무에 매달린 남파랑길 안내 리본이 반갑다.

가라산 정상은 봉수대로 널찍하지만 조망은 그리 볼 것이 없고, 노자산 가는 길에 뫼바위 전망대가 압권이다. 서해와는 확연히 다른 에메랄드 물빛의 다도해, 코발트빛 하늘과 눈 앞에 펼쳐진 봉우리들 덕분에 가슴이 뻥 뚫린다.


뫼바위 전망대에서 학동마을과 다도해

 

585m지만, 해발산행이라 만만치 않다



귀갓길, 지인추천 통영의 소박한 횟집에서 모둠회를 주문했다.

역시 산지라 싱싱함이 남다르다.

어떤 물고기는 쫄깃하고 또 다른 놈은 사각거린다.

들었으나 잊어버린 물고기 이름이 가물하다.


횟집 밖 방파제 너머로 한때 유명했던 마리나 리조트가 보인다.

빨간 자동차가 아니라 배 위에 쓰여 있는 119표시도 이채롭다.



통영 앞바다의 등대와 방파제, 마리나 리조트


섬 하면 고립, 외로움이 떠올랐다. 헌데 시인은 가장 낮은 물울타리란다. 누구나 넘어오라고, 다 퍼주는 곳이라 읽는다. 그래도 되는, 그러고도 남는 넉넉함이 섬이란다.


* 늦은 밤, 통영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부러운 얘깃거리 나눠주신 K샘, 대상포진에 감기몸살까지 최악의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일박이일을 선물해 주신 Y대장께 감사드립니다. 절대 아프지 마시옵고 옥체를 잘 보존하시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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