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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Dec 28. 2023

겨울, 땅끝에 서다

해남 달마산 크리스마스 트레킹 이야기(2023. 12.24-25

성탄절이 월요일이다. 

기회를 놓칠 리 없는 Y대장이 일박 남도 산행을 기획했다. 


"성탄연휴에 등산을?"

늘 넉넉한 아내도 눈꼬리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


말로만 듣던 산악회 멤버 O의 버스로 이동한단다. O는 나와 동갑내기 치과의사로 순전히 지인들과 여행을 위해 중형 버스를 소유하고 있다. 산악자전거부터 암벽등반까지 만능스포츠맨이자 세계 오지를 누비는 두주불사의 탐험가다. 


어스름 새벽에 집결장소에 나가보니 범상치 않은 외관의 버스가 시동을 켠 채 대기 중이다. 

차에 오르니 세상에, 좌석이 좌 우로 한 줄짜리 우등버스다!    

강진을 거쳐 완도까지의 긴 여정을 비즈니스석에서 쉴 수 있다니...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외유내강 우등버스


일박이일 코스 요약 : 강진 백련사-다산초당-가우도-완도 명사십리-달마산


강진 : 백련사 & 다산초당


지난주에 내린 폭설로 충청과 전라를 지나는 차창밖 풍경이 모두 눈밭이다. 

등받이를 제치고 두 발을 쭈욱 뻗고 비몽사몽 쉬다 보니 강진 백련사 입구. 



 

산사에서 맞이하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직업 탓인지, 절집 입구에 아빠의 금연을 기원하는 기와불사가 눈길을 끈다.  


여유 있게 절집을 둘러보고 눈 속에서도 초록을 뽐내는 동백과 대나무 숲길을 걸어 다산초당에 이르렀다. 



진즉 와 보고 싶었다.  

어느 해인가 약용, 약전 형제의 우애와 실사구시를 잘 표현한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흑산도와 강진을 마음에 품었더랬다. 동그란 안경 속 다산의 인상이 정겹다. 



다산이 18년에 이르는 기나긴 유배생활을 시작한 때는 그의 나이 40세였다. 100세 시대가 아닌 살아서 환갑을 맞이하는 것이 큰 사건이었던 200여 년 전이다. 그 당시 남자 나이 40세에 유배를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지만, 그는 '반전의 드라마'를 썼다. 한 사람이 업적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의 방대한 저서와 놀라운 사유를 남겼다. 



천하 만물 중에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중략)

그러나 유독 이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며 출입이 무상하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혹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으로 겁을 주면 떠나가며, 질탕한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미인의 예쁜 얼굴과 요염한 자태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번 떠나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 중에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나'보다 더한 것이 없다.

-정약용, 《다산의 마음》





가우도 :  출렁다리, 해초비빔밥, 황가오리빵


다산 박물관을 관람하고 가우도로 향했다.  

세찬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가우도 출렁다리를 건너니 식당이라곤 딱 하나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싱싱한 해산물 한 접시와 해초비빔밥, 여기에 서비스로 나온 매운탕 국물, 그리고 밑반찬까지 입에 착 감기는 '로또 맛집'이었다. 이웃 가게에서 갓 구워낸 황가오리빵으로 디저트도 완성!

 

가우도 출렁다리, 바닷바람 제대로 맞았다.


완도 : 광어, 쥐치, 돔, 소라, 전복 & 명사십리


완도 수산시장에서 광어, 쥐치, 돔, 소라와 전복을 구입했다. 물론 인근 하나로마트에서 각종 주류도 함께. 

완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신지도로 진입해 명사십리 해수욕장 입구의 펜션에 집을 풀었다. 



싱싱한 바다 먹거리들과 각종 주류로 위와 심장이 그득해졌다.  

땅끝도 넘어 완도까지 와서 맞이하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라 마음들이 붕붕 날아올랐다.  

바람도 잔잔한 달빛 아래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걷고 노래하고 점프했다.   


여명속 명사십리 해수욕장


달마산 : 미황사- 달마봉-떡봉- 도솔암 코스


성탄절 당일 아침, 굴떡국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이번 여행의 메인이벤트인 달마산 종주를 위해 버스에 올랐다. 

 달마산(達磨山)[489m]은 호남정맥에서 뻗는 기맥이 한반도 최남단으로 가기 전 해남군 남단에서 암릉(巖陵)으로 솟은 산이다. 이미 고려시대 이전에도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산이었다고 한다. 능선에 오르면 완도와 진도의 다도해가 펼쳐진다. 맑은 날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 산림청 지정 명실공히 전국 100대 명산이다. 


[제2코스] 미황사-달마봉-문바위재-작은금샘-대밭삼거리-하숙골재-떡봉-도솔암 까지 약 9킬로미터가 오늘의 미션이다.


미황사 입구에 도착, 달마봉까지는 묻지 마 오르막코스다. 잔설로 얼어붙은 돌계단을 조심조심 올랐다. 달마봉 정상에서 도솔암까지는 기암괴석이 작은 공룡능선이라 할 만한다.  명불허전, 뾰족한 바위 양 옆으로 펼쳐지는 다도해에 눈을 떼기 힘들다.  


30분쯤 진행했을까? 평소 날아다니던 K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꼬리뼈를 다쳤는지 더 이상 걷기는 무리라는 판단. Y대장은 K와 함께 하산했고 이후 일정의 인솔은 O가 맡았다. 리더의 막중한 책임감이 '날 회'처럼 전달되었다. 


아이젠을 차기도 벗기도 애매한 눈과 얼음, 바위가 함께 엉겨있는 험난한 길을 계속 나아갔다. 평소 같으면 4시간 코스라는데 걷다 기다 하다 보니 6시간이 걸렸다. 폰의 걸음수로는 15,000보, 하지만 4륜 구동으로 기어간 걸음수가 2만 보는 될 거라며 깔깔거렸다.    


종착지인 도솔암에 도착하니, Y대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도솔암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아쉬움을 달래려 올라온 것이다. 다행히 K의 꼬리뼈도 큰 부상은 아닌 듯싶다. 


도솔암은 기암절벽 계곡을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위에 누를 지은 그야말로 천하절경이다. 

아쉬운 것은 이전의 고즈넉한 모습 대신 말끔히 새로 지어진 누각이 자리를 차지한 점이다. 


아쉽다. 

단청을 하지 않아 더 소박하고 고즈넉하다는 미황사 대웅보전도 '천일의 휴식'이란 이름으로 공사 중이었다.

조금 일찍 찾아 억겁의 시간들을 오롯이 품은 얼굴들을 마주했더라면...  

도솔암의 까마득한 풍경


도솔암을 지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 하루 스치듯 지나온 기암절벽이 아득히 펼쳐진다. 이리 험한 길을 지나왔음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산과 내가 다르지 않았다.   

오늘도 일당 줄 테니 가라고 해도 망설였을 것 같은 쫄깃한 길을 '신나게' 걸어냈다.  


이런 길을 제가 걸어왔던 것이므니다


강진 : 불향 가득 돼지불고기 & 홍어회


6시간의 혹독한 겨울 산행 후 맛없는 음식이 있겠나. 강진의 병영마을 수인관의 불향 가득한 돼지불고기와 더도 덜도 말고 딱 맞게 곰삭은 홍어회 한 접시는 절로 소주를 불렀다.(딱 석 잔만!, 했다가 리셋 후 3잔을 더 했음에도 전혀 취기가 오르지 않았음...ㅋ)   



우등버스 좌석에서 숙면을 취한 탓인지 늦은 귀가 후에도 피로한 줄 모르겠다. 


12월에 가장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뮤지션은 단연코 Sting이다.  

세밑에 꼭 찾아 듣는 겨울 콘서트(A Winter's Night... Live from Durham Cathedral)를 감상하.......

행복한 잠이 찾아왔다.  



[PS] 일박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사람을 알아감이다. 이번에도 Y대장은 중탈(중도탈출, 탈락?)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지산(지혜로운 산행)이고 헌산(헌신적인 산행)이었다. 여행 기획부터 버스 운전까지 온갖 궂을 일을 다 하고도 정작 본인은 쿨~하게 산행을 포기했다. 산행부터 오지여행까지 프로 중 프로인 O와 말을 턴 것도 성과다. 졸지에 산악대장을 맡은 O는 기어가기 바쁜 산행 중 커다란 DSLR을 메고 와서 멋진 사진을 선사했다. 저녁준비부터 상차림에 숙소짐정리까지, 일머리도 좋고 후미대장을 맡아 산행의 마무리를 책임진 G에게도 많이 배웠다.   


[한 줄시] CJ 산악회


어쩌어찌 가입했는데, 로또였네^^



ㅎㅎㅎ



 

                   


 https://youtu.be/Dl1FnmSGj1Q?si=U7eYbnS1XcYlxHV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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