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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Mar 02. 2020

소담쓰담

가정의의 소소한 진료 일지

에피소드 하나.


성탄 전일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검진 결과를 보러 오셨다.


"다행히 담낭에 좁쌀만 한 용종 외엔 큰 이상이 없네요."

"제 신장은 문제가 없나유?"

"그러고 보니 신장이 하나뿐이시군요..."

"제 아들에게 떼어 준지 10년이 되어가는구먼유..."

"그런데 교수님, 저보다 아들이 늘 걱정 이예유..."


어느새 아주머니 눈가가 젖어있다.


"아들보다 신장이 먼저 늙어버릴까 봐... 그게 늘 마음에 걸리는구만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온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엄마들이다...


"...참 별 걱정을 다... 아드님 몸에 들어간 순간 신장도 같이 젊어지는 거예요! 시집가면 성이 바뀌는 경우처럼요..."


건네드린 휴지로 코를 푸시는 아주머님 얼굴이 환해진다.


"참말이지유? 제가 그 소릴 월마나 오래 전부터 듣고 싶었다구유... 정말 고맙십니더.."


진료실 문밖을 나서는 아주머님 뒷모습에 울 엄니가 겹쳐 보인다.




에피소드 두울.


10년째 단골이신 80대 노부부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몇 해전 치매진단을 받으신 후로 늘 총기 있던 할머니 얼굴엔 부처님 누님 같은 선량한 미소만 남았다.

오늘따라 할아버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이 사람땜에 좀 힘드네요.. 요즘 들어 부쩍 밥을 잘 안 먹어요. 내가 살림을 하니 맛도 없겠지만, 평생 진 빚을 갚고 사네요. 요즘..."


"할머니! 기분은 좀 어떠세요?"


빙그레 웃기만 하신다.


"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군지 아세요?"

"그런거 잘 몰러..."


"몇 남매나 두셨어요?"

"오남매!"


눈빛이 반짝 살아난다.


"요즘은 자식들도 잘 못 알아봐요.. 동생이라고도 하고 아저씨라고도 하구..."


할아버지가 거든다.


"울 자식들은 잘 살어.. 어디 사는지는 몰라두"


더 드릴 말씀도 없고 해서... 쭈글쭈글한 할머니 손을 꼬옥 잡아 드렸다.

요즘 들어 부쩍 깜박거린다는 울 엄마 생각이 났다.

당황스럽게도 눈가에 물기가 올라온다.


할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나가시는 할머니께 뜬금없는 인사를 했다.


 "할머니, 메리 크리스마스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오래 진료실을 맴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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