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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Mar 02. 2020

네 이웃의 동물공포증(Zoophobia)

동네 산책길 10에 1명은 당신의 이쁜 강아지가 무섭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 숨죽이고 살지만,

바야흐로 온몸이 들썩는 봄이다 봄.

동네 산이나 학교 운동장, 아파트 주변 등 기분 좋아야 할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는 못 할망정 서로 눈 흘길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다름 아닌 애완동물로 인한 크고 작은 다툼 이야기다.  


요즘은 애완을 넘어 반려동물이란 말이 대세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이란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에서 '즐거움을 위한 도구'란 의미의 애완(愛玩)동물 대신 '평생의 동반자'격인 반려(伴侶)동물로 격상되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개나 고양이를 가족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애정을 쏟는 가장 큰 이유는 정서적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체온은 사람보다 1~2도가량 높다. 안으면 따뜻하고 포근한 털의 감촉이 정서적 안정을 줄뿐 아니라 신체활동량을 늘려 건강에도 좋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병원에서 76명의 심장병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치료 도우미견과 함께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불안감, 스트레스, 맥박, 혈압 등에서 현저한 개선 효과를 나타내었다.


..... 그런데 당신의 이웃 중 어떤 이는 주먹만 한 강아지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공포를 경험한다. 세상에 이처럼 이쁘고 가냘픈 '우리 아기'가 무섭다니, 말이 되는 일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지난 주말에도 필자의 동네 산책길에서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이웃 1: "아가! 아가! 어딨니? 에구, 그러게 엄마 곁에 바짝 따라오랬지!"


이웃 2: (곁을 지나다 두려운 표정으로) "저기요. 죄송하지만 개 좀 묶고 다니실 수 없나요?"


이웃 1: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눈흘김) "아니 이렇게 이쁘고 귀여운 아가어디가 무섭다고…. 참, 병이야 병!"


이렇게 서로 입장이 다른데, 누구 편에 서야 옳은가? 말이야 이웃 1의 말이 맞는다. 이건 병이고 이웃 2는 환자다.


의학 용어로 동물공포증(zoophobia)으로 폐쇄공포증·고소공포증 같은 특정 대상에 대한 비이성적 공포가 주 증세다. 보통 사람은 전혀 무서울 것 없는 공간·높이·동물에 대하여 공포감이 생기는 일종의 신경증적 불안증세다. 어릴 때 개에게 물리거나 쫓긴 기억 때문에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이유 없이 청소년기에 발생하며 여성에게서 두 배 정도 흔하다. 필자의 환자 중 고혈압과 비만으로 운동이 꼭 필요한 아주머님 한 분은 시도 때도 없이 마주치는 줄 풀린 강아지가 무서워 좋아하던 동네 산책을 아예 포기하셨다. 병이라면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정 대상 공포증은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며 별다른 약이나 치료법도 없다. 더구나 꽤 흔해서 산책 중에 마주치는 이웃 열에 한 분은 당신의 이쁜 강아지가 공포와 수치심의 대상이 된다.



세상 살다 보면 이해 못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입장 바꾸어 강아지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귀여워하면서 훨씬 작고 연약한 쥐나 지렁이를 무서워하는 주인님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요 미덕임에 동의하는 분이라면, 오늘 산책을 나서기 전 개목줄과 배설물 봉투 챙기는 것만큼은 절대 잊지 마시라.


*2013. 8. 13. 조선일보 아침편지 기고글  어루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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