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운 짧은 감상문
하버드에서 월든 호수로, 세상과 맞짱 뜨기
두툼한 분량에 압도되어 서가만 장식하던 책 <월든>을 완독 했다. 그 사이 '부끄러움'이 내 몫이 되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28살의 수재가 보장된 성공의 길을 마다하고 매사추세츠 촌 동네인 월든 호숫가에서 칩거했다. 살짝 정신이 나갔거나 세상과 맞설 용기가 없는 겁쟁이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로우에게 월든 호수에서의 생활은 강의실 밖, 삶의 실험터였다. 그는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을 직면하기 원했으며 한 번뿐인 인생을 '주어진' 대로가 아닌, ‘의도적’으로 살고자 하였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와 같은 치열한 물음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을 얻는 것’... 같은 뻔한 결론에 머무르지 않았다. 깊게 파여 있는 전통과 타협의 바퀴자국을 따라가지 않고 미지의 숲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삶에 대한 개인의 선택이란 ‘적응, 아니면 도태’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이 함께 내딛는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지만, 속내는 대체로 명분보다는 실리 쪽이었다. 고상한 척해 봤자 한 번뿐인 인생에서 도태되지 않고,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숙명이려니 했다.
소로우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기보다는 인생의 돛대를 부여잡고 당당히 맞서며, 의미 없는 것들을 모두 뒤집어엎고 인생의 골수를 빼먹고 싶어 했다. 이런 진지함은 적응도 도태도 아닌 삶에 대한 도전이자 용기 있는 맞짱 뜨기였다.
이십 대의 감수성, 자연에 대한 정밀 묘사
세상에 대한 야망이 최고일 이십 대 후반 젊은이인 소로우가 무용해 보이는 작은 생명들에 집중한 것이 놀랍다. 이 나이 먹도록 진달래와 철쭉이 헷갈리고 식물은 기껏해야 나무와 풀 정도를 구분할 수 있을 뿐인 나는 무엇으로 이리 분주했을까?
보릿대국화, 미역취, 쥐손이풀, 황새풀, 부들, 우단현삼, 물레나물, 조팝무, 피리풀, 등심초... 유리울새, 노래참새, 티티새, 딱따구리, 딱새, 개똥지바귀, 들꿩, 도요새, 멧비둘기, 되강오리, 날개 달린 고양이, 그리고 붉은 개미와 검은 개비의 치열한 전투... 등 이름도 생소한 호숫가 생명들에 대한 소로우의 정밀 묘사는 감탄, 그 자체다. 하나하나 살아있는 문장들은 간접경험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생생하다. 이러한 세계를 평생 모르고 사는 인생이란 얼마나 가난한 삶인가?
생각하는 삶의 동반자, 독서
‘우리 대부분은 방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는 소로우의 고백은 인맥 맺기와 사교술이 강조되는 요즘의 처세술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들어 부쩍 사람과의 대화가 부담스럽다. 최신 뉴스나 가십거리를 화재삼아 시간을 죽이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골프 이야기를 지나 요즘은 내 또래 남자들 모임에서도 건강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대화 상대 본인에 대한 이해나 교제는 실종상태이고 그렇고 그런 지루한 얘기가 반복되곤 한다. 소로우는 반복되는 뉴스를 따라잡는 일이나 무의미한 사교적 대화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며 '의미 있는 고독'쪽에 머물렀다.
이러한 삶의 지혜는 방대한 독서의 산물인 듯하다. 그리스와 로마, 구대륙과 신대륙을 넘나들며 서양 고전은 물론이거니와 힌두교의 경전들, 논어와 노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인용한 책의 목록들이야말로 젊은 소로우의 성숙의 비밀일 것이다. 삶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여전히 휘청거리는 내게 책이라는 지혜의 숲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준 소로우와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