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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Aug 04. 2020

억울한 사람이 약 먹는 이유

고지혈증약 먹어야 해 말아야 해?

매일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중 대표적인 두 분을 소개합니다.     

 

환자 1.

50대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성. 혈액검사 결과 중성지방 420(200이하가 정상범위), LDL콜레스테롤 182(130 이하가 정상범위)로 매우 높은 상태. 생활사를 여쭤보니 거의 매일 회식에 접대에... 주식은 삼겹살, 소주가 반찬이. 운동은 월 1-2회 골프가 전부.      


환자 2.

60대 비구니 스님. 중성지방 380, LDL콜레스테롤 167. 주식은 잡곡밥에 된장찌개에 호박잎, 깻잎 등 각종 제철 채소와 과일. 새벽 예불부터 저녁 식후 너른  절마당 청소까지 마치면 평균 매일 만 보 이상 걸으심.      


두 분 중에서 앞으로 평생 고지혈증 치료제를 복용해야 하는 분은 누구일까요?

헷갈리신다고요?


그럼 두 분 중에서 주치의인 저에게 약을 처방해 달라고 조르는 분은요?


십중 팔구는 50대 남성 사장님이십니다.      


“에고 선생님, 먹고살자니 접대가 많아 어쩔 수가 없네요. 콜레스테롤이 높으면 혈관이 막힌다는데, 좋은 약이나 좀 처방해 주세요...”


“일단 술과 삼겹살 섭취부터 줄이시고, 하루 한 시간 가량 시간 내셔서 주 4-5회 이상 운동부터 해 보세요. 그렇게 두 달만 조심하시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다시 측정할게요. 그렇게 생활습관을 교정했음에도 여전히 높다면, 그땐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요건 제 답변입니다.  

이제 감이 좀 잡히시나요?


안타깝게도 두 분 중 평생 고지혈약을 드셔야 하는 분은 비구니 스님이세요.

고지혈증의 원인이 스님은 ‘내부’이고, 사장님은 ‘외부’이기 때문이요.


사장님은 몸이 문제라기보다는 많이 먹어서(외부) 높아진 것이지만, 스님은 섭취한 음식이나 운동량의 문제가 아니라, 간과 소화기관의 콜레스테롤 생성과 소비를 조절하는 기능(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이거든요. 스님에게는 더 이상의 음식조절이나 운동하라는 조언은 의미가 없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려면 고지혈증약을 드실 수밖에 없어요..


스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실 거예요. 억울하지요. 평생 수행하면서 고기 한 점, 술 한 잔 못 먹고살았는데 핏속에 지방성분이 높게 나온다니...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그것이 진짜 고지혈증이라는 병이고 억울하지만 약을 먹어서라도 혈관을 깨끗이 하셔야 건강을 유지하실 수 있어요. 그것도 평생토록 말씀입니다     


고지혈증 치료를 하다 보면, 한 두달 약을 드시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진 분 중, “이제 좋아졌으니 그만 먹을래요.”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혈압약을 몇 달 드시는 동안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중단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고지혈증 치료제도 중단하시면 안돼요.  

이런 약들은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이 생기는 원인을 교정하는 완치용 치료제가 아니고 높아진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끌어내리는 '조절제'라서 매일 꼬박꼬박 드셔야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는 스님이나 사장님 같은 양쪽 극단은 아닌 분이 더 많으실 거예요. 매일은 아니지만 술도 즐기고  튀김류좋아하고, 운동은 마음뿐 늘 작심삼일이신. 그러던 어느 날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결과를 듣게 되는 거지요.

그런 경우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해요. 약이 싫다면 대신 철저하게 식이조절과 운동을 하고 정상으로 회복되는지를 확인하셔야 하고요.  아니면, 먹고 싶은 음식과 게으름을 허락하는 대신 고지혈약을 매일 드시던지. 이도 저도 못하고 어영부영 지내다 고지혈증 동맥경화로 이어지고 뇌졸중, 치매, 심근경색으로 고생하시는 일은 절대 No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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