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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용 Dec 17. 2016

어느 동행

- 태풍 탓일까? 대리기사와 학교선생이 '통'하다

8월의 마지막 밤, 새벽녘 금호동 산길입니다.

대학로에서 시작된 운행길, 학교선생님들과 함께 갑니다. 남선생 하나, 그의 선후배 여선생 둘, 이렇게 셋이 나누는 대화는 음악과 직업의 애환, 우정과 배려가 가득합니다.


엘리트교사로서 한껏 자긍심과 책임감이 맘껏 발산되는 차속 풍경입니다. 태풍 탓일까요? 아직도 차창밖으로는 험한 바람이 가득하건만 그래서 뒤뚱거리는 차 안은 오히려 평안하고 끈끈하기만 합니다. 여선생 둘 주욱 경유를 마치고 기사와 단둘이 가는 금호동 산길, 대화가 이어집니다.



돌직구, 교사 촌지를 물어보다



"...학교 선생님이시니, 평소 궁금했던 거 몇개 물어볼까 합니다...

...선생님들이 돈봉투를 받는 일...그리도 흔합니까?...."

" !! ...  ...    

솔직히 돈봉투를 받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두 아이를 둔 저도 애들 학교선생들에게 사례

하곤 합니다.....한국적 문화에서 그것이 없어지기는 정말 어려운거 같아요..."


"...사례를 받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차별한다고 보시는지요..."

"... 설령 사례를 받았다해서 특정 학생을 두둔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봅니다. 

이건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양심을 걸고 말할 수 있어요..."


흔들리는 차안이라 그랬을까요? 평소 근엄할거 같아 보이는 이분의 마음도 흔들린걸지.. 대리기사의 약간은 도발적 질문에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토로합니다. 태풍과 험한 밤길이 오히려 조그마한 차속 두사람의 마음을 이어줍니다. 


이야기는 어느덧, 교사 직업 환경의 어려움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분, 나름대로 솔직하게 토로하고, 때로는 저를 설득시키려고도 합니다. 그 모습에서 진정성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뇌물인 촌지문제로 이어지다보니, 이분, 자신이 처한 입장에 대해 양면성을 보입니다. 촌지를 둘러싼 현실 환경의 불가피성, 하지만 그 떳떳하지 못함에 대한 자기 변명.... 학교 선생으로서 가지는 자부심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져버렸습니다.



둘을 실은 차량은 어느덧 한강변을 지나 금호동 산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태풍이 할퀴고 간 자국이 가득합니다. 이리저리 뿌리뽑힌 나무자락을 피해 산길 운행이 이어집니다.


"... 선생에게 촌지를 건네는 경우는 두가지인거 같아요. 첫째, 학부모가 자기위안을 위해서... 

둘째, 드믄 경우이지만, 무언가 댓가를 바라고서 하는...."

"...돈을 건네야 학부모로서 마음이 편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도 선생이지만.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편한 경우가 있습니다..."


대화 중 문득문득, 이분의 곤혹스러워 하는 느낌이 묻어나옵니다. 주로 이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학부모가 돈봉투를 건네면, 학교 선생은 그걸 거절하기가 참 힘든게지요?..."

"...사실 거절하는 방법을 찾기란 만만치 않아요. 그러다보면 한두번 받게 되고...그러다보면...

...하지만 젊은 선생들 중에는 촌지를 거부하는 분들도 많아요. 특히나 자존심때문에도 

받을 수 없어 하는 분들도 많고..."


"...선생님이 보시기에 촌지를 받는 비율이 대략 어느 정도라 보시는지요?..."

"....대략 1/5는 될 거라 봅니다....하지만 솔직히 오랜 동안 교사로 지내면 거의 몇번씩은 

받게 되지 않을까요?..."


50대초라로 밝히는 이 선생님, 참으로 솔직한 말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뭐랄까, 그분의 이런 '고백'이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이분 역시 고해를 하는 듯한 솔직함, 진지함으로 대화를 하다보니, 오히려 교사의 처지를 이해할 정도가 됩니다.


"...저도 사실, 선생님에 대한 예우를 위해서도 명절같은 때, 몇만원 정도의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액수가 커지면 그 성격이 달라질까봐..."

"...네 저도 애들 선생님들에게 큰 선물을 건네진 않아요. 돈 십만원 어치 정도를 건네는 건데..."



솔직해서 민망한 동행길



차는 금호동 산꼭대기 좋은 아파트 주차장입니다. 차를 주차시켜놓고도 둘의 대화는 멈추지 않습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사직을 얻으려면 학교에 선물을 해줘야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공립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사립학교 들어가려면 그런걸로 알고 있어요...."


차마 그 액수가 어느 정도이냐 물어보기가 민망해집니다.  이미 둘간의 많은 대화를 거치면서 맨속살을 다 드러내 보인거 같은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솔직함 뒤에는 약간의 민망함이 남게 됩니다.


이제 그만 운행을 마쳐야 겠습니다. 이 분, 차에서 내린 뒤에도 미련이 남는 둘간의 대화가 좀더 진행됩니다.  마음이 조금은 착잡합니다. 뭐랄까, 이분의 솔직한 대화에 대해 고마움과 함께 연민이 생겨버립니다.


세상에는 학교선생에 대한 존경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에 대해 존경심과 기대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한편으로는 촌지나 뇌물에 대한 시선도 공존합니다.  문득, 선생님들은 이 두 시선의 교차 속에서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천상 내가 느껴야 할 내 몫의 판단입니다. 청렴결백하게, 사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교사분들도 많을텐데요...


금호동, 내 어린 시절을 몽땅 보낸 동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산꼭대기의 새벽별을 바라봅니다. 운행을 끝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는 도중, 어느 동료기사분이 보낸 문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태풍이 씻어준 금호동 산공기, 내 마음의 심기를 씻어줍니다.  동료기사의 배려가 고맙기만 합니다.  


태풍이 씻어준 밤공기, 내 심기를 닦아주다



"...태풍에 찌들었지만 맑은밤 하늘 한번 보세요....." 


참으로 지금 내 마음에 꽉 들어차는 문구입니다. 금호동 산꼭대기, 하늘이 가까워서일까요?  한결 맑은 공기에 별들이 가까워 보입니다. 심호흡 한번 할 기회를 준 그분의 배려가 고맙기만 합니다. 


남들은 세상이 대접해주느라 그 문제로 골머리 아파하는데, 우리 대리기사들, 뇌물을 받아먹으려해도 아무도 대접하지 않는 신세가 오히려 고마운 걸까요?  최소한 뇌물을 주고받는 문제로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릴 필요 없으니 말입니다. 문득, 그 선생님은 나와 헤어지고 나서 편한 밤을 보낼까 궁금해져 버렸습니다.  


태풍에 찌들고, 세상사에 시달리고 고된 노동에 찌들어도 잠시 맑은 밤 하늘을 조금은 더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어 좋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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