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알#2 긴 연휴의 첫날

수염이 덥수룩했던 무명인에게

by Moony

모든 월급 생활자들이 기다려왔을 추석 명절입니다.

역병에 가난한 휴일까지 겹친 고단한 근래에, 모처럼 그리운 가족을 찾아가는 시간이겠지요.

말씀드린 적이 있던가요? 두 달만에 찾아와서 불쑥 글을 남깁니다만, 저는 시골 작은 군의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입니다.


응급실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주말은 평일보다 바쁜 날일 뿐이고, 명절은 '재앙'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흔히 찾아오는 '효도병' 자녀를 둔 '기력 없음'은 글 좀 쓴다 하는 응급실 의사들이 한 번쯤은 적어봤을 법 한 주제입니다. 저 역시 그런 효도병에 '평소 소고기나 사보내세요.'라고 일갈하는 단호박 가득한 싸가지일 뿐입니다만, 오늘은 그런 글을 적고 싶지 않습니다.


제 글을 기다리시는 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두 달만에 불쑥 달칵거리는 키보드 앞에 앉아 반쯤은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타이핑을 이어나가는 까닭은 엊그제 만났던 '무명인' 때문입니다. 이틀 전, 금요일에 저는 지루한 명절 전날을 응급실에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퇴근 후 귀성길을 고민할 때, 저는 밀려드는 온갖 환자들과 부대끼고 있었지요. 제 업이니 억울한 마음은 없습니다만, 여전히 초 경증 환자들이 밀려들어오고 그나마도 얼마 하지 않는 응급관리료에 핀잔을 먹을 때마다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마음이 바삭바삭 메말라가던 도중, 경찰차가 응급실 앞에 나타났습니다.


"샘 사체검안인가본데요?"

"후.. 그냥 제가 나가볼게요"


응급실의 정말 많은 업무 중 하나가 사체 검안입니다. 스스로를 응급환자라 생각하는 온갖 경증 환자들을 대하는 것이 주 업무이긴 합니다만, 가끔은 정말로 위급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응급실의 모습 한 켠에는 사체검안이나 자잘한 서류 같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지역에 검안의가 있는 기관이 저희뿐이라, 관내의 모든 변사자나 사망자는 저희 응급실을 거칩니다. 그 숨이 언제 멎었더라도, 행정적인 사망시간이자 그 사람의 역사는 저와 만난 그 시간으로 결정됩니다.


세상 어느 학문보다도 가장 과학을 좇아야 할 저희 의사들이지만, 죽음을 선언함에 있어서는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던 신을 찾곤 합니다.

'아직 많이 덥진 않잖아요. 아직 저녁도 못 먹었단 말이에요. 제발 온전한 시신이게 해 주세요!'

네. 저는 밀려드는 환자 덕분에 식전이었습니다. 비장하게 뜨거운 물에 불려놓은 신라면 블랙은 몇 바늘 꼬매다 보니 퉁퉁 불어있었지만, 아직 온기는 남아있어 금세라도 비워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은 가을의 초입이기에, 사나흘 이상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시신의 상태가 저의 부교감신경을 극한으로 자극할 여지도 있었지요. 여러분은 이해하기 힘드실지 모르지만, 제게는 매일 맞는 시신들의 사연보다 퉁퉁 불어있는 신라면 블랙의 면발이 더 신경 쓰였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인사말도 하기 전에 나온 질문은 아래와 같았지요.


"경관님, 사체 상태는 어떤가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산 중턱에서 발견돼서 그런지 흙이 좀 묻어있네요."

"뭐 지병이나, 목격자나 그런 건요?"

"아직 신원확인이 안 돼서요. 저희가 검안하고 나시면 바로 알아볼 겁니다."


이 년 전 응급실 발령이 난 후, 소아과 전문의로 수련을 받고, 작은 아기천사들을 보낸 적은 있어도 성인의 사체는 인턴 이후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처음에는 시신을 마주하고 마음이 참 많이 힘들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지며 컴퓨터 앞에서 사체검안서부터 클릭해놓는 저를 보면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네 밖에 시신 있죠?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검안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흔히들 생각하시는 부검과 검안은 다릅니다. 칼을 대고, 세세하게 죽음의 이유를 찾는 부검과는 달리 검안은 겉모습 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보이는 것이지요. 과학수사대가 나오는 미드 같은 모습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만, 그런 드라마와 다르게 사체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저 같은 신참이 사인을 규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추정할 뿐이지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고, 거무튀튀한 피부. 시반은 누워있던 자리 그대로. 다른 타살의 흔적은 없고, 산에서 발견된 것 치고는 흙이 묻은 것 말고 양호한 상태. 사체강직은 전부 풀려있고, 각막도 혼탁해 있었습니다. 적어도 48시간 이상 전에 사망한 고인을 뒤로하고 사무적인 표정으로 사체 검안서를 적었습니다.


8시 30분. 세상 사람들은 저녁 먹고, 2차를 가기 시작하는 시간이지요. 금요일 밤 응급실은 그 시간에 폭풍 속의 고요를 맞습니다. 저는 24시간 근무의 마지막을, 그래도 조금 또렷이 하고자 쪽잠을 청합니다. 고인의 신원이 빨리 밝혀져 가족의 품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보다, 제 잠이 서너 시간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오늘은 기필코 취객들을 다 내쫓고야 말리라 다짐하면서요.

하지만 제 바람은 언제나 그렇듯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깨졌습니다. 3살짜리가 코가 막힌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어머니에게 오늘 외래에서 받은 약 열심히 먹이라며 심리적 안정이란 처방만 주고, 또 술 취해 넘어져 다친 환자의 소독 같은 자잘한 일들이 저를 맞이합니다. 잠시 비응급 진료비가 20만 원이어도, 학교에서 보건 교육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이렇게 내가 괴로울까 고민하던 찰나 찾아온 환자를 옆자리의 간호사가 맞이합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검안서 받으러 왔습니다."

"아, 네 혹시 몇 시간 전에 그분...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동생입니다."


동생은 많아봐야 스물다섯. 그렇게 산기슭에서 스러져간 생명은 제게 그저 사체일 뿐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가족이란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네.. 형님 검안은 제가 했고요, 혹시 마지막으로 연락을 언제 하셨을까요?"

"저희 형이 간 이식을 받을 정도로 간이 안 좋아서요, 그걸 비관한 것 같아요.. 일주일 전에 집 나가고 연락이 안 되었습니다."


불현듯 사체의 검었던 피부가 떠오릅니다.

"네... 혹시 간질환은 어떤...?"

"잘은 모르겠어요. 몇 년 전에 어머니한테 이식도 받았었고요. 아마도 이래저래 부담이 되니까.."

"네... 사체는 외상의 흔적은 없었고요..."


그렇게 고인의 동생에게 세상의 일을 처리한 후 보내는 동안, 저는 제가 있는 이곳의 공기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요? 응급실 밥을 십 년 더 먹으면 이런 무게감이 줄어들까요? 아닐 겁니다. 심심찮게 누군가의 죽음을 선언하는 저 역시 제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그 아득함에 제 존재가 심연으로 침전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제 존재의 상실은 더더욱 그렇지요. 저 역시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겪었기에 삶의 무게가 비단 계좌의 숫자 만으로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스스로의 삶과, 병원 안에서의 삶을 분리시키더군요. 응급실에서 인간미 넘치는 의사는 심심찮게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음날 아침, 2시간 거리를 달려 퇴근해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밀려들어오는 화이자 백신만 100명은 족히 놓았다는 아내가 퇴근길에 건 전화에 부스스 눈을 떴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사는가.

고통받는 중증, 만성 질환자들이 신병을 비관합니다. 그 와중에 응급실로 찾아오는 코막힘, 감기의 향연. 삶 한가운데 불안의 소비와, 죽음 한가운데 슬픔의 지출 속에서 무뎌져 갑니다.

누군가가 저희를 조금 보듬어주길 바라지만, 선별 진료소에 가득한 지역 정치인이나 시민단체는 올해 저희를 찾지도 않습니다. 애당초 과자 몇 개 들고 오는 게 반갑지도 않았지만, 선별 진료소에서 솔솔 풍겨오는 치킨이나 피자 냄새가 이렇게 역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무명인이 세상의 이름으로 덧입혀졌습니다. 그는 저보다 어렸습니다. 이제 갓 서른.

사석에서 만났다면 그냥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상을 합니다. 그의 옆에서 발견되었다는 건빵, 그는 그 속에서 별사탕을 씹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지금 이 시점에 그는 세상에 관념으로서의 존재로 남았을 것입니다. 요즘 가을 밤하늘은 건빵 속 별사탕보다 더 반짝이는 별들이 즐비합니다.


명절입니다. 저도 3.5일의 쉬는 시간, 다음 근무일이 찾아오기 전까지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품에는 장기이식 스티커가 붙은 운전면허증을 담습니다. 저의 생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의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요?

어느 누구에게는 존재를 고양시키는 명절. 또 다른 누구에게는 존재를 폄하당하는 명절.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선 존재가 관념 속으로 희미해지는 명절.


그 명절이 다시 왔습니다. 그리고 응급실은 또 그렇게, 오늘도 버텨갑니다.

제 응급실에서의 시간도 몇 달 남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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