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과 나

4. 프렛(Pret)-알레(Allez)

by 류시

펜싱이라는 종목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낮설게 다가온다. 처음 펜싱을 시작할 때는 언어 조차 익숙하지 않아서 굳어버린 머리로 용어를 숙지하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없게 된다.

앙가르드(En garde), 프렛(Pret), 알레(Allez), 마르쉐(Marche), 롱뻬(Retrait), 팡트(Fente) 등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 용어들 조차 너무나 낯설고, 뭔가를 하라고 코치님이 지시를 하시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고 머리 속에서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리게 된다. 심판 판정을 하실 때에는 더 긴 용어들을 사용하시는데, 아직 파악하지 못한 용어들도 굉장히 많다. 그래도 플뢰레에서 사브르로 종목을 변경할 때에는 기본 용어들은 좀 익숙해 져서 용어에 익숙해 지는 시간은 단축 할 수 있었는데, 종목 별로 또 디테일한 공격-방어법이 다르다 보니 종목별 용어도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도복입는 것도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다. 칼을 들고 하는 운동이다 보니 여러겹의 보호장비를 착용하게 되고, 또 점수를 내는 방식이 칼과 도복의 전기신호로 이루어 지기 때문에 전기 선도 도복, 마스크, 칼과 연결해야 한다. 성인들은 그래도 몇 번 해보면 익숙해 지는데,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한동안 코치님의 도움이 있어야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한번쯤은 여러겹의 보호구를 껴입고, 다 입고 나서야 중간에 한가지를 빼먹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입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은 아직도 가끔 이런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처음 펜싱을 시작하면 낯선 언어와 장비 착용, 복잡한 경기 규칙으로 접근성이 굉장히 낮아 보이지만 게임을 한번 뛰어 보면 이 모든 낯선과 어려움은 날아가 버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상대를 칼로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운동이지만, 신체 조건이나 순발력, 지구력, 근력과 같은 요인이 한가지만 작용하는 것이 아닌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하면 할 수록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운동이다. 상대가 굉장히 민첩하거나 근력이 세더라도 그 속도와 힘을 이용해서, 무게 중심을 흔든 후 반격을 할 수도 있고, 지속적인 하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보니 지구력이 좋은 사람이 후반으로 갈 수록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통해 승기를 잡기도 한다. 다양한 속임수 동작과 두뇌 플레이를 할 수 있기에 게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 경험도 해 볼 수 있다. 그래도 여느 운동들 처럼 기본이 되는 동작들에 대한 단련된 근육은 갖추고 있어야 되기 때문에 기본기를 익히는 과정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종목을 '사브르'로 바꾸고 한창 익힐 무렵 약국 개국을 준비하게 되는 바람에 한동안 펜싱 클럽에 못나갔었고, 약국을 시작하고 나서는 퇴근 시간이 늦어져 그룹레슨 시작에 늦게 도착 하게 되어 레슨 앞부분인 체력 훈련과 자세 훈련은 많은 부분 놓치게 되었다. 이렇게 초반에 단련 하지 못한 기초체력과 자세라는 중요한 기본기는 여전히 게임을 뛸 때 지속적으로 내 발목을 잡으며 괴롭히는 부분이고, 이 때문인지 게임마다의 기복도 굉장히 큰 편이다.


프렛(Pret)은 게임 전에 '준비', 그리고 알레(Allez)는 '시작'이라는 의미인데 나의 펜싱에서의 이 '프렛'은 아직 부족하지만, 일단 펜싱이라는 게임에 발을 들여 놓아 '알레'를 한 이상 내 몸이 허락하는 한 펜싱이라는 게임을 끝까지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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