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과 나

5. 첫 첫 첫

by 류시

지난 주말 펜싱 대회를 참가하였다. 작년에는 펜싱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경험삼아 나가볼까 하는 마음에 참가 신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일요일에 열리던 예선전이 갑자기 토요일로 당겨지는 바람에 일하느라 못 갔었다. 중간 중간 부상이나 일 때문에 한달 혹은 몇 주씩 쉬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펜싱이라는 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었기에 펜싱 대회는 어떤지 궁금했다. 클럽에는 그래도 몇번 참가 했었던 분들이 계셔서 그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고 자잘한 대회들은 그 전에도 나가려면 나갈 수 있었겠지만 모처럼의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 대회고, 클럽에서도 여러 명이 참가한다고 해서 나도 꼭 나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 당일, 8시 반에 첫 경기가 열린다고 일정표가 나왔는데 '뭐 이렇게 일찍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코치님이 7시까지 대회장으로 오라고 하셨다. 다행이 네비게이션을 찍어 보니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았고, 주말에 이렇게 이른 시간엔 차가 전혀 안 밀릴테니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펜싱 가방 없이 칼집만 샀었는데, 장비를 다 챙겨 가려니 짐이 어마어마 했다. 마스크, 선, 메탈자켓, 상하의 도복, 신발, 장갑, 플라스틱프로텍터, 천프로텍터, 칼 두자루 그리고 물과 먹을 간식까지 펜싱 가방을 사지 않은 것이 매우 후회되었다. 자그마치 네개의 보따리가 생겼고 모두 차에 실어 출발했다. 집에서 경기장까지는 십 오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펜싱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 앞에 주차장이 있어서 양손 가득찬 짐들을 들고 어렵지 않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고 경기장 내부의 불도 다 안 켠 어둑한 경기장에 들어가자 눈이 침침한 느낌이 들어서 '이래서 오늘 경기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클럽 동료들은 대부분 이미 도착해서 짐을 내려 놓고 옷을 갈아입고 오곤 하였다. 나도 옷부터 갈아입고 코치님들과 동료들과 경기장을 맛보러 내려가서 실제 경기가 열릴 피스트에서 몸을 풀고, 동료들과 가볍게 연습 경기도 했다.


'뿔'이라 불리는 예선 조는 총 4개 였는데, 그 중 우리조는 5명이어서 나는 총 4명과 경기를 치루고 그 결과에 따라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 되었다. 점수는 5점을 먼저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데, 다른 종목인 '플뢰레'나 '에페'의 경우는 3분 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지만 내가 하는 종목인 '사브르'는 워낙에 빠르게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시간제한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순식간에 경기 결과가 나오는 종목이다.


평소 거의 클럽 동료들과만 시합을 해 봐서 낯선 사람과 하는 경기가 더 긴장되었다. 코치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나 요령 들을 알려 주셨지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상태에서 첫 경기가 펼쳐 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5점을 실점하고, 나는 겨우 1점을 딸 수 있었다. 두번째 경기도 마찬가지 였고, 세번째 경기에서는 그래도 뭐 좀 해보려 했으나 역시나 2점을 겨우 따고 마지막 경기에서야 코치님이 레슨에서 알려주신 것을 겨우 적용해 볼 수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었는데, 그 전엔 그것을 할 정신조차 없었던 것이다. 레슨에서 배웠던 결과를 적용하자 놀랍게도 5대 0으로 상대방의 득점을 허용하지 않은 채 승리할 수 있었다.


참여 인원이 많지 않은 종목이라서 예선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 와보니, 코치님이 본선에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알려 주셨다. 다른 조의 예선도 다 끝나자 본선 진출자 명단이 나왔는데, 턱걸이로 겨우 본선에 진출 할 수 있었다. 대기 시간을 가진 후 대진표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같은 클럽에서 제일 많이 싸워 본 그래도 클럽에서 그나마 경력이 오래 된 분과 본선 첫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사실 클럽에서 둘이 경기할 때, 경기의 방향이 펜싱이 아닌 단순 칼싸움처럼 되는 경우가 많아 코치님한테서 제일 지적을 많이 받은 안 맞기로 유명한 조합이었는데,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대회에서까지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 창피해져서 여기에서 만큼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예선 마지막 승리 때의 감각을 유지한 채로 본선 경기를 치루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본선은 15점을 먼저 득점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으로 먼저 8점을 득점한 사람이 있을 경우 중간에 1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게임이 이어지는데, 이 휴식 시간 전까지는 그래도 어렵게 우세를 점해서 8대 7로 겨우 앞선 채 휴식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나는 클럽에서 이 분과 경기할 때도 간혹 앞서다 후반에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었는데, 대회에서도 역시 후반이 시작되자 흐름이 꺾인 건지 체력의 문제인지 결국 한점도 득점하지 못하고 8대 15로 경기를 마치게 되었다. 그래도 첫 대회에서 처음 목표였던, 1승도 해보고 턱걸이지만 본선도 진출해 봐서 여기서 나의 첫 대회가 끝난 것이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단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기왕 대회에 나왔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경기해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만나려면 잘해서 더 높은 순위까지 진출하는 방법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려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클럽 동료들이 16강에서 아슬아슬하게 다 떨어져 버려서, 경기가 다 끝나자 점심 때 쯤이었다. 대회엔 참석하지 않아도 응원 온 클럽 동료들도 있어서 다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벚꽃도 슬슬 피고 있어서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펜싱이라는 운동이 이번 대회를 통해서 단조로운 내 삶에 또 하나의 색채를 덧씌워 준 덕분에 앞으로 이 운동을 더욱 즐기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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