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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록펜 Mar 19. 2018

사자야 잘 있느냐

훈련받고 쉬고 있을 Y에게

커버 사진은http://www.1freewallpapers.com에서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보낸 편지에서, 이름만 바꾸었습니다.

※중간에 좀 잘리는 듯한 내용은, 훈련소 편지 글자 수가 800자로 제한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편지를 출력하고, 전해주시는 기간병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글도 쓰고 있습니다. 군생활 건강히 마치고 귀한 아들, 소중한 친구로 돌아가시길 보잘것 없는 선배가 기원합니다



  Y야! 훈련 잘 받고 있나. 이제 3주차쯤 됐으니까 수류탄, 화생방 이런거 했겠네. 무사히 훈련 마무리하고 일기 쓰면서 잘 쉬고 있을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쯤 되면, 내가 왜 사진 뽑아가라고 했는지 잘 알거야ㅋㅋㅋㅋ 한번 볼 때마다 조금씩 닳는 사진이었으면, 지금쯤 네 사진들은 다 가루가 됐겠지. 좋은 사람들, 소중한 추억들 되새기고 돌이키면서 힘든 시간 잘 버텨내길 바란다.  

  나도 오늘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카톡방 정리를 하다가, 사진을 몇 장 봤거든. 우리 해커톤 가서 찍은 사진.

기억하기론 여러 이유로 좀 힘들었던 시간이었는데, 굉장히 밝은 얼굴로 웃고 있는 나를 봐서 좀 신선하더라. 그리고 다른 사자가 보이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브이자를 그리고 있던. Y 너. 그래서 이렇게 쓴다. 주소 꼭 올리라고 말까지 해놓고 까먹고 있었다 내가. 알콜성 치매가 이렇게 무서운거다 Y야.

  으레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인데도 하게 되네. 진짜 많이 바빴다. 올해 멋사 더 제대로 해보자고 선발에 OT에 정성을 꽤 쏟았거든 우리가. PPT도 몇 번을 고치고, 자기소개 슬라이드도 만들고, 캠퍼스 돌면서 포스터도 붙이고. 포스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강 직전에 붙였는데 월요일에 비가 오더라고. 씁쓸했지만 어쩌겠냐.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좀 나쁠 수도 있지. 그걸 배우기 참 좋은 곳이, 군대라는 생각이 드네.





  군대 얘기 길게 해 봐야 재미없으니까. 짧게 끝내고 멋사얘기 하마. 딱 세 가지만 꾸준히 하면 된다.

책 읽고, 운동 하고, 일기 꼭 써라.


복무 전/후의 너를 가르는 무언가가 되어 줄 거다. 다만, 그곳에서 네가 맡은 역할을 어느정도 수행할 수 있을 때에 해야 한다. Y 넌 센스가 좋아 잘 하겠지만, 노파심에 말해주는거야. 나처럼 개고생하지 말라구.



  다시 멋사로 돌아와서.이번 6기는 TO를 많이 줄여서 딱 열두명만 뽑았다. 소수 정예로 이탈자 없이 가자는 쪽으로 운영진에서 뜻을 모았거든. 쟁쟁한 사람들이 많다. 작년에 S대에서 5기 수료하고, 휴학해서 본가 부산에 내려온 김에 우리랑 멋사 하고 싶다고 지원하신 분이 계신다. 그분 연락을 받은 날에 비가 왔는데, 이분은 빗물을 스팀으로 만들어버릴 만한 분 같더라. 결과는 당연히 합격. 이외에도 어마어마한 분들이 어린사자가 되셨다. 기회가 되면 그분들과 함께 보고싶구나.


  그리고 하나 더. 작년에 하려다가 말도 못 꺼냈던거 드디어 한다. '멋사로' 멋사+내일로 인데 기차 타고 경북-충청-서울 찍고 해당지역 학교 멋사들 보고 오려고. 지역마다 하나 이상 학교랑 컨택중이다. 나에겐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프로젝트다. 너도 알다시피, 멋사가 그래도 전국 연합 동아리인데, 우리가 변방이라 그 네트워크, 분위기를 잘 느끼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보는거지. 위에서 통 내려오질 않으니까 말야. 학교 하나하나 가서 멋사 어떻게 굴려가고 있는지 얘기도 나누고, 맛집도 가고, 게임하면서 놀고, 가능하면 AI대전 같은 콘텐츠도 준비해볼 생각이다.



최대 800자인지 몰랐습니다 행정병님, 두세 장만 더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읽으면 된데이. 프로젝트 잘 되면 부산대 멋사만이 가진, 고유한 연례 행사가 되길 욕심내본다. 욕심 조금 더 얹자면, 내후년 멋사로는 Y 네가 이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네.

  또 다른 사자들 소식을 좀 전해주자면, H는 대장 역할 정말 잘 하고 있다. 여걸이야 여걸 완전.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술잔이 비어있는걸 어찌 그리 잘도 찾는지. J도 정말 잘 해줘서 너무 고맙다. 질문 준비를 굉장히 잘 해줘서 면접때 도움이 많이 됐어. 내가 PPT는 좀 만지는데 엑셀은 젬병이거든. J가 잘 다뤄줘서 선발, 평가가 참 수월했던것 같아. S는 총무랑 벌점관리 하는데 뚝딱뚝딱 벌점제도도 잘 만들어주고 좋다. 자기소개 슬라이드 만드는데 움직이는걸 넣을거래. 어떻게 넣을거냐 그랬는데 대답이 멋졌어.


배워서 하면 되지

이게 멋사쏘울 아니냐 크...

  오늘 봄소풍 가는 날이라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다. 30분까지 미용실 가야하는데, 대충 머리만 감고 가지뭐. 극 남초라 수퍼 스뽀-츠 각이다. 볼링 안친지 꽤 됐는데 손에 감각이 남아있을런지 모르겠네. Y 넌 볼링 좋아하냐. 돌이켜보니 서로 뭘 좋아하는지 제대로 얘기해본 적도 없네. 나오면 토킹어바웃 씬나게 하자꾸나.



마지막 입니다. 조교님 행정병님 감사합니다. 복받으실거에요. 간첩 잡으실 겁니다.



  부산엔 슬슬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 코가 봄이 옴을 알려주는구나. 벚꽃엔딩도 슬슬 차트 올라오고. 5년전 이맘때 나도 훈련병이었는데, 그때 동기들이랑 벚꽃엔딩 가사가 기억이 안나서 집단지성으로 완성해서 수첩에 썼던 기억이 난다. 운전 교육은 어디서 어떻게 받는지, 자대는 어디고 선임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고 또 불안해 했는데. Y 너도 비슷하겠지? 하나만 기억하면 걱정이 좀 누그러들거야.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집가까운 자대와 좋은 차, 천사같은 선임도 좋지. 하지만 나는 Y 네가 바깥의 조건이 뭐가 되었든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길 바란다. 늘 건강하고. 수료하면 전화 한번 해라.


답장은 부산 ~로 부탁한다. 무리해서 쓰지는 말고. 후반기 가서도 편지 쓸 시간 많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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