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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록펜 Apr 28. 2018

사자야 클러치는 밟을만하냐

운전교육 끝나가는 Y에게

커버 사진은http://www.1freewallpapers.com에서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보낸 편지에서, 이름만 바꾸었습니다.



          필승! 아이캔두! Y야 잘있냐ㅋㅋㅋ 이제 야수베가스 생활도 막바지겠구만. 곧 외박인데 기대 많이 하고있겠네. 난 가평 3 야수단에서 운전교육 받았었는데 근처에 남이섬 있어서 외박때 가족이랑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점심먹을 때 마신 맥주맛이 아직도 생생하구만. J랑 내가 조교가 그렇게 꿀이라고 영업해놨는데 운전실력 잘 길러서 경쟁자 물리치고있는지 모르겠네. 굳이 조교 아니더라도 운전병은 충분히 엄청난 메리트를 가진 주특기야. 자대가면 많이 느낄거다 특히 전투병 많은 야전부대일수록.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지신명께 춥고 눈많은 최전방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빌자꾸나. 



         바깥소식 전해주자면, 역시 우리 멋사소식이 제일 궁금하겠지? 2주 중간고사 기간동안 정기모임 안해가지고, 그동안 놀면 뭐해 싶어서 작년에 안했던 인디언 포커랑 알까고 한번 해보자고 팀을 모아봤어. 시험 안치는 사자들도 있어가지고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다가. 인디언 포커부터 하고있는데 생각보다 코드가 안어렵더라고. 작년에 왜 안했을까 싶더라. 적극적으로 팀 짜서 대회 나가는 것까진 안하더라도 충분히 우리끼리 공부하면서 직접 게임 해보고 할 수 있었는데. 했으면 루비 문법 스킬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을거여. 그래서 이번엔 좀 딥-하게 공부하고 자료도 남겨서, 다음 기수가 좀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놓을 생각이다. 막 전략짜고 코드 분석하고 하는데 다들 똑똑하더라고… 팀웍도 좋고 나에겐 이 팀이 멋사 부산대의 정예 멤버인것 같아서 해커톤도 우리끼리 나가보자고 영업중이야. 



         해커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올해는 학교에서도 해커톤을 열더라고. 뭐라더라 우리학교가 소프트웨어 융합 중심대학인지 뭔지 돼가지고, 전공자 + 비전공자로 팀 꾸려서 지원하면 되더라고. 캬 이거 그냥 멋사한테 돈 받아가라고 퍼주는거 아니냐. 비전공자 비율이 높을수록 선정에 유리한데, 코딩에 어느정도 감각 있고, 개발에 참여 가능한 비전공자라고 하면… 여기 더 써봐야 프린터 잉크만 아깝지않겠나. 게다가 같은 결과물로 학교 해커톤이랑 멋사 해커톤을 동시에 준비하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개발계획서 써보는 경험도 값질 것 같고 말이야. 4차 산업 혁명이니 융복합이니 하며 바뀌는 패러다임에 우리학교도 발맞춰 가려고 열심인거 같아. 이번 해커톤도 그렇고, 소프트웨어 연계전공 프로그램도 만들고 하는거 보면(이번 지원자중에 SW연계전공이 몇 있거든. 난 첨에 보고 ‘경영학/빅데이터 연계전공’ 이라길래 그짓말하는줄 알았다;). 모처럼 애교심이 샘솟는구먼. 



         애교심은 애교심이고, 한계도 뚜렷이 보이더라. 아무래도 학교라는, 거대하고 보수적이고 또 경직된 조직에서 변화를 시도하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 결국은 그 SW 연계전공 이라는 것도 그냥 비전공자들 모아다가 컴공 수업 해주는 거더라고. 물론 아예 접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 노잼이고, 이론 바탕인 수업에서 연계나 융복합이 잘 일어날 것 같지는 않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까 우리 멋사가 가진 매력과 가치가 딱 떠오르더라고(지금부터 멋사 뽕 이빠이 들어가니까 침 한번 삼키고 읽도록). 이번에 인디언포커 스터디 하면서 느낀건데, 멋사의 공부법은 여태 우리가 받은 교육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아. 여태 우린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이론부터 배우고 문제를 풀거나 실습하는, 0에서 시작해서 100으로 올라가는 교육을 받고 그게 유일한 공부법이라 여겨 왔어. 근데 멋사는 반대야, 100부터 시작해서 0으로 내려가는 거지. <!DOCTYPE html>부터 써 내려가는 대신에 만들어진 템플릿을 이리 저리 뜯어보고 요소들을 바꿔보면서 이 클래스가 뭘 뜻하는지,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댔을 때 버튼의 색깔이 바뀌게 하는 건 어떻게 하는지 익히는 것처럼. 이러한 공부 방식이 멋사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아닐까. 그저 시험 점수로 평가받기 위해 그냥 머리에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미지의 영역에 헤딩해가면서 굳은살을 쌓아가는거. 어쩌면 코딩이라는 멋사의 컨텐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 새로운 지식에 대담하게 덤빌 수 있는 자세. 나이가 몇이든, 학교가 어디든, 전공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단순히 선택을 통해서 성취 가능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 아무도 당신의 이마에 ‘무학자’라는 도장을 찍어서 지식 획득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이 짜놓은 거미집이며 변명의 실크로 짠 명주 올가미다.

                                                                          엠제이 드마코, 「언스크립티드」 중에서 



요즘 읽고있는 책의 한 구절인데, 많이 반성하게 되더라. “이건 취직에 필요없는 건데”, “저거 공부하기엔 이미 늦은거 아닌가”, “내 전공이랑 상관없는 건데”, “저건 쓸모없으니까 넘어가자” 라며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것들. 대학에서 진짜 했어야 했던 공부는 그게 아닐까. 짜여진 시간표에 맞춰 강의실 가는거 말고. 오로지 스스로의 필요로, 흥미가 생겨서 하는 공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터디를 꾸리고, 공부한 내용을 나누며 화학 작용이 일어나는 공부. 알파벳이나 숫자 따위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런 공부. 5학년이 되어서야 이걸 깨닫다니 큰일이다. Y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 어떤 거미집과 올가미가 우릴 가두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잘 벗어날 수 있을지. 기회가 되면 이런 얘기도 한번 해봅시다.

 


         이제 진짜 완연한 봄날씨네. 낮에 따땃-하니 햇살 받기 참 좋다. 이런 날 산성 가서 막걸리로 낮술 딱 조지면 최곤데 맞재. 그러고보니 멋사끼리 산성 한번 간 적이 없네. 휴가때나 전역하면, 애들이랑 산성 한번 가자꾸나. 낮술 하면, 극락이 따로 없다 진짜. 페이스북 보니까 나도 딱 5년 전 5월 4일에 야수교 외박 나왔더라고. 자대를 외박 전에 알려줬는지, 그 다음에 알려줬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안 알려줬을 거야. 자대가면 전화에 페북에 편지 말고도 연락할 방법이 많아가지고 편지로 연락 잘 안하게 되던데. 그래도 편지 주고받는 것보다 좋은 방식은 없는 것 같다. 이제 겨우 편지 두 통 쓰는 건데 나는 Y 너가 입대하기 전보다, 우리가 더 진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고 생각하거든. 답장은 어디로 보내는지 알재. 날 풀렸다고 얇게 입지 말고, 특히 잘 때. 감기 걸리기 딱 좋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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