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기록

by 델몬트

문득 혼자 밥을 먹는 아내의 뒷모습을 소파에 앉아 바라보다 이제 우리 집에는 세 사람이 산다는 게 명확히 다가왔다. 그리고 내 팔에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50일이 되어 4킬로대에 불과한 아기가 거실 불빛을 피하듯 웅크리고 안겨 있었다.


계획적으로 할 일을 하는 아내와 계획적으로 놀아온 나 사이에서 칸트 집안답게 우리 아이는 2024년 12월 연말 새벽, 40주 0일 6시에 태어났다. 12월은 왠지 케이크를 먹을 일이 많아 이 달에 태어난 걸 나중에 푸념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요즘 인기 있는 1월생은 바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아 오히려 파티 분위기 나는 12월생이 느낌 있다고 생각도 했었다.


고생하는 아내 옆을 힘겹게 지켰던 산부인과 입원기간을 보내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2주 조리원을 지나 아이의 탄생과 함께 우리 부부도 엄마와 아빠로 태어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산후 도우미가 있어 편한 날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힘든 나날들이다. 둘이 같이 앉아 저녁을 먹으며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우리 아가는 작고 보살핌이 지속적으로 필요했다. 아기띠를 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밥을 먹다 보니 이게 입으로 들어 가는지 코로 들어 가는지 싶어 당분간 밥은 각자 먹을 듯하다. 그리고 돌아가며 아기 빨래와 젖병 세척과 밥 먹이고 둥기둥기 놀아주다 보면 쳐 자거나 한 명은 새벽 수유 당번을 하는 나날들이다.


거의 딩크로 향해가던 우리는 도통 출산을 어떻게 결정할지 몰랐었다. SWOT 분석처럼 4 사분면을 그려도 그 당시의 삶에서 단점이나 위기는 없어 보였고 그 반면 출산 시에는 수입 감소, 흉흉한 세상, 줄어들 개인 시간, 더 늘어날 걱정 등 겪어보지 않아도 알 법한 핑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결정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사람과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주변에 비해 아내의 임신과정은 순탄한 편에 속하였다고 보이지만 쉽지 않았고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나는 챙겨준답시고 브로콜리 반찬을 강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은 10대 남자아이에게 이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들의 힘든 상황에 대해 훈계를 한 적도 있다. 에서나 잘하지 밖에서 오지랖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산부인과였는데 수술실로 보낼 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던 나와 다르게 아내는 "내 옷 챙겨"라고 T의 면모를 보여줬던 기억도 난다.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서는 호흡도 제대로 못했었다지. 그리고 갑자기 간호사분이 아이를 안고 나왔는데 '응? 저게 뭐지? 우리 딸인가? 왜 이렇게 팔다리가 길지?'라는 경황없는 생각에 휩싸여서는 다 조치해 놓은 탯줄을 잘 자르지도 못해 서너 번에 걸쳐 가위로 자르고 폴라로이드를 찍으라 해서 찍고 처음으로 태지가 묻은 아이가 힘주어 잡는 손에 손가락을 내어 주었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친구들이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겪기 전까진 몰랐다. 이 아이의 첫걸음마와 첫 학예회, 그리고 자전거의 뒤를 밀어줄 날들과 사춘기, 입시 결혼, 많은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정월대보름에 기도의 대상이 하나 더 늘었고 삶의 우선순위도 우리 가족으로 명확하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아내와 함께 아이의 우주를 잘 만들어 나갈 것이다.


지금은 감기에 걸려 콜록대는 아이를 옆에 재워두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큰 채로 글을 쓰고 있지만, 아이는 우리 부부를 부모로 만들 것이고 우리 가족을 셋으로 만들어줬다. 방문 간호사님이 아이의 시야는 지금 20센티미터 미만이라 알려주었다. 우리 아이를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이 아이를 함께 지켜보는 아내도 더 가까이 바라보아야겠다.


세상에 나와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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