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여행기2
발리공항에 도착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미리 비자신청과 관세신고를 하고 왔기에 빠르게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ATM에서 250만 루피아(약 21만원)도 찾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esim이 안된다. 늦은 밤 도착이라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두었는데 찾아갈 수가 있을까? 공항 와이파이도 잘 잡히지 않는다. 연결은 되었는데 느리다. 구글맵을 열고 걸어가는 길을 캡처해둔다. 1.2km다. 가방은 무겁지만 충분히 걸어갈만 하다. 걸어서 공항을 빠져 나간다. 길을 걸으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날씨는 선선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엄청난 택시 호객꾼들이 있다. 한 밤중에 이동수단이 없을까봐 공항에서 걸아갈 수 있는 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3만원이나 주고 예약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호객꾼을 뿌리치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헤맨다. 업데이트 안되는 캡처지도를 가지고 조명도 없는 골목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빠른 포기가 답이다. 큰길로 걸어나오는 길에 오토바이 호객꾼이 필자와 필자의 와이프(2명)를 200K(17,000원)에 태워준다고 한다. 한사람당 8,500원 정도, 1.2km 가는데 비싼 듯하다. 100k에 가기로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밤길을 달린다. 시원한 밤공기가 상쾌하다. 이 호객꾼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난 흥정까지 잘 하는 것 같다. 뭔가 시작부터 뿌듯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호객꾼 아저씨들이 골목길에서 헤매기 시작한다. 길은 잘 모르지만 뭔가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서는 200k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길을 헤맸다는 것이 이유다. 단호하게 거절할까도 생각했지만 발리 물가에 대한 감이 없고, 여행의 시작부터 다툼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200K를 주고 밝게 웃었다. 아저씨도 밝게 웃는다.
숙소에 들어왔다. 하이타이 냄새다. 그래 이건 분명 하이타이 냄새다. 비싸게 예약한 숙소가 한국의 저렴한 여관방 같다. 또 한번 호갱이 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쁘지 않다. 냄새와 함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서 일까? 엄마는 빨래할 때 하이타이를 사용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하이타이가 뭔지 모른다. 어린 시절 살던 집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지하실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 하이타이 냄새, 마당 한켠엔 재래식 화장실도 있었다. 이런 냄새들을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엔 엘리베이터 옆사람의 향수 냄새도 싫다. 무엇이 나에게 이러한 분별심을 갖게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