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시기가 아쉬운 제로테크의 새 드론, 헤스퍼(Hesper)
모든 드론이 얼마나 높은 곳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지 경쟁할 때, 낮은 높이에서 오직 조종사만 바라보는 드론이 있습니다.
이 드론은 작은 크기에 그다지 긴 비행시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카메라와 언제든 바로 비행을 시작하는 가벼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드론은 조종사와 조종사 주변에만 집중합니다. 바로 셀카가 전문인 드론들이죠.
전문 촬영드론에 비하면 빈약한 사양이라도 완구형 드론에 비하면 호사스런 사양인 이 셀카 전문 드론을 우리는 ‘셀카 드론’이라고 부릅니다.
셀카 드론은 탄생했다기보다 성능 좋은 미니 드론이 발전한 형태입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 덕에 초소형 카메라 성능은 믿을 수 없이 좋아졌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저렴해져 어지간한 완구형 드론조차 너도 나도 셀카 드론으로 편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성능을 추구하는 드론은 더 빨리, 더 높게, 더 강하게 날기 위해 덩치를 키워 셀카는 무리였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드론은 고성능 스마트폰 카메라를 무기로 셀카 드론 춘추전국시대를 열었습니다.
도비는 작고 가벼워 완구형 드론처럼 보였지만 다리가 안으로 접혀 들어가고 GPS 까지 갖춘 강한 드론입니다.
도비 드론의 뛰어난 성능은 제로테크라는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도비 드론은 안일하게 라인업만 늘려가는 그렇고 그런 완구형 드론에게 ‘그런 정도로는 어림없어’ 라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죠.
그래서 도비 드론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셀카 드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비 드론 이후로 제로테크의 이름 아래 등장할 새 드론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로테크라는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2017년 초였습니다.
도비 드론의 높은 완성도를 한 단계 더 높인 ‘제로스페이스(zerospace)’ 라는 시스템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제로스페이스는 도비 드론 여러 대로 군집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제로스페이스 실내 비행 시연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선보였던 인텔 슈팅스타가 처음 소개 된지 불과 몇 달 후였고, 제로스페이스는 실내 비행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로테크는 도비 드론이라는 완성도 높은 하드웨어에 제로스페이스라는 소프트웨어까지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드론 회사가 되었습니다.
곧이어 제로테크는 도비 드론의 후속기, 헤스퍼(Hesper)를 선보입니다.
둥근 도비와 다르게 마치 DJI 매빅을 닮은 첫 인상으로 어딘지 수많은 그렇고 그런 폴딩 드론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2017년 4월 당시 표준 폴딩 드론이던 매빅에 비해 작은 헤스퍼는 그 크기만으로도 참신했죠.
가벼운 휴대가 장점인 스파크였지만 다리까지는 접을 수 없었기 때문에 헤스퍼는 더욱 DJI의 대항마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DJI 스파크와 경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요?
2017년 여름 출시를 예고하던 헤스퍼는 선선한 낙엽을 밟고 맞이한 겨울이 지나도록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 DJI는 매빅과 스파크 중간 크기의 드론인 폴딩 드론 매빅 에어를 출시합니다. 이것으로 DJI는 소형 폴딩 드론 시장까지 장악했습니다.
그 한 해 동안 DJI의 정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그 정상에 도전하는 새로운 드론들이 소리 없는 경쟁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드론 디자인 명가 패럿이 새로운 드론을 소개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드디어 상하 180도 까지 회전하는 카메라 짐벌을 가진 독특한 드론 아나피로 DJI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모두 이 새 드론 아나피에 관심을 가질 때 제로테크의 헤스퍼도 소리 소문 없이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드론 디자인 명가 패럿의 새 드론 아나피는 어떤 드론보다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스퍼는 도비 드론처럼 GPS와 글로나스(GLONASS)로 말뚝호버링 기능을 겸비하고 실내에서도 안정적인 비행을 자랑합니다.
이제는 표준이 되어버린 초음파 센서와 비전 센서가 탄탄한 호버링을 지원합니다.
헤스퍼의 가장 독특한 점은 1축 짐벌 카메라입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레이싱 드론 ‘까치 250’ 이후 1축 짐벌이 시장에 등장한 것은 헤스퍼가 처음입니다
1축 짐벌을 가진 헤스퍼의 카메라는 위 아래로 움직입니다.
헤스퍼가 탑재한 짐벌은 진동으로부터 카메라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촬영을 위한 카메라 각도 조절을 위한 것입니다.
상하로 움직이는 카메라를 가진 셀카 드론은 편리합니다.
고정된 카메라는 화면을 담을 수 있는 너비와 각도가 정해져 원하는 앵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완벽한 셀카를 위해서는 어떤 바람에도 휘청이지 않는 정밀한 드론 조종을 수련하거나, 무너지지 않는 스쿼트 자세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육체를 단련해 셀카 드론 앞에서 해맑은 V를 그려야 했습니다.
화면 떨림은 디지털 손 떨림 방지 기능(EIS, Electronic Image Stabilization)가 감당합니다.
그래서 헤스퍼의 짐벌을 흔들림 없는 화면에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헤스퍼가 촬영한 영상은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도비 드론이 자랑하던 EIS는 헤스퍼에게도 그대로 계승됐기 때문입니다.
헤스퍼의 카메라는 13MP로 4208×3120 해상도 사진과 4K 영상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떨리는 화면을 잘라 이어붙이는 원리로 동작하는 EIS 기능을 사용하면 아쉽지만 1920x1080 화질로 촬영합니다.
하지만 도비 드론부터 꾸준히 발전한 여러 촬영모드는 더 안정됐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설정한 목표를 따라가며 촬영하는 팔로우 미는 헤스퍼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기능입니다.
따로 트렉커를 사용하지 않고 이미지 인식만으로 동작하는 헤스퍼의 팔로우 미는 높은 신뢰도를 보여줍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린다면 시선을 가리는 장애물 탓에 이 기능도 별 도리는 없어 보입니다.
헤스퍼는 장애물을 인식할 별도의 센서를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DJI 드론에게는 기본이 된 충돌 방지 센서지만 헤스퍼에게는 아직 사치인가 봅니다.
헤스퍼가 사용하는 배터리는 흔한 2S 리튬폴리머 배터리의 최고 전압인 8.4V보다 높습니다.
헤스퍼는 LiHV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에 소개된 이 배터리는 더 높은 출력을 원하는 드론에 종종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수명이 짧아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소형 드론이 출력 한계를 극복하는데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지적 받던 LiHV의 수명도 이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듯합니다.
헤스퍼의 LiHV 배터리도 만족할 만한 수명을 예상합니다.
접히는 드론은 조종기도 접혀야 합니다. 휴대성을 강조해 접을 수 있는 조종기는 많았습니다.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부분을 접거나, 조종기 스틱을 빼 안으로 넣기도 했지만 접는 것은 변신과 다릅니다.
헤스퍼 조종기는 접기만 하는 다른 조종기에 비해 확실히 변신에 가깝습니다.
좌우로 벌어진 조종기 사이에 스마트폰을 고정하기 때문이죠.
버튼 하나로 이륙과 착륙이 가능한 조종기와 함께 헤스퍼가 날아갈 수 있는 거리는 800m입니다.
조종기 없는 스마트폰만으로도 120m까지 가능합니다.
셀카 드론의 비행거리로는 충분해 보입니다.
DJI의 비행거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800m도 짧은 비행 거리는 아니니까요.
1년 만에 베일을 벗은 헤스퍼의 사양은 아쉽게도 2017년 4월에 소개된 사양과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폴딩 구조인데도 매빅보다 작은 크기로 DJI 스파크의 대항마로 꼽히던 헤스퍼의 반짝임은 1년여의 시간과 함께 그 빛을 잃은 듯합니다.
제로테크의 도비 드론과 DJI 스파크와 함께 나란히 비교해 보겠습니다.
성능이 아쉬우면 가격이 공격적인 법입니다.
헤스퍼는 DJI에 대항하는 다른 드론처럼 470불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아쉬운 사양을 극복해 보려 했지만, 행사에 세일까지 더한 399불의 스파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안타깝게도 헤스퍼는 DJI의 대항마보다 도비 드론의 후속기 같습니다. 모양은 전혀 다르지만요.
1축 짐벌과 흔들리지 않는 영상을 담는 EIS, 작게 접히는 구조와 독특한 변신 합체 조종기는 헤스퍼 드론만의 매력입니다. 2017년 당시에는요.
1년이 지나 소리 없이 출시된 헤스퍼에서 우리는 시청 앞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같은 서글픈 감정을 느낍니다.
제로테크가 헤스퍼를 적시에 출시하지 못한 데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겠지만, 제로테크의 침묵이 다시 세상에 도전하는 드론을 준비하는 힘을 담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물건을 하나씩 공부하고 있는 엔지니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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