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양관측 장비 중 하나인 수중글라이더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2016년 12월, 영유권 분쟁으로 뜨거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이 마찰을 빚었다. 사건은 이 민감한 지역에 미 해군이 수중드론(AUV)를 투입해 조사를 마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인근 해역을 순찰 중이던 중국 해군은 회수 중이던 수중드론을 강제로 나포했고 이는 곧 두 국가 간 외교 마찰로 번졌다. 단순한 외교적 마찰을 넘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던 이 사건은 수중드론이 나포 이틀 만에 반환되면서 해프닝으로 그쳤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날선 대립 속에는 수중글라이더(Underwater Glider)가 있었다. 도대체 수중글라이더가 어떤 드론이기에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일까?
수중글라이더(Underwater glider)는 공중을 누비던 드론이 바다를 향하며 등장한 새로운 해양관측 장비 중 하나다.
이전 해양관측 분야에서는 중층 플로트(Subsurface Float)라는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층 플로트는 중·심층 해류 패턴을 관측해 해양 순환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장비이다.
지난 남중국해 사건의 주인공인 수증글라이더는 이 중층 플로트와 수중드론이 만나 탄생했다. 두 장비는 부력으로 바다를 누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중글라이더는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수중글라이더는 부력을 조절해 추력을 얻고 배터리를 이용해 방향을 전환한다.
내부에 장착된 배터리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수중글라이더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수중글라이더는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지고 각종 센서를 탑재해 연안과 대양을 구분하지 않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해양 탐사 임무에 나서는 수중글라이더는 이리듐(Iridium), 아르고스(Argos) 같은 해양 관측 위성과 통신할 안테나를 장착한다.
이 위성안테나는 수중글라이더 제어, 긴급 회수, 수집 자료 송수신 등에 활용한다. 하늘을 누비던 드론은 바다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수중글라이더는 바다로 뛰어든 드론의 많은 모습 중에서도 가장 오래, 가장 멀리 활약할 수 있다.
이제는 꽤 익숙한 유삭식 무인잠수정(ROV, Remotely Operated Vehicle)이나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AUV, Autonomous Underwater Vehicle)은 고작 수일에서 수주 밖에 가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수중글라이더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한 해 동안 바닷속을 누빌 수 있다.
이처럼 해양관측과 탐사 분야에 혁신을 예고하고 있는 수중글라이더를 둘러싼 사건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중글라이더 관련 연구는 1960년대 무렵부터 진행됐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이다.
이제 수중글라이더는 90년대 이후 현대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검증을 마치고 각종 해양관측 및 각종 조사 활동에 활용 중인 것은 세 종류로 정리할 수 있다.
슬로컴(Slocum) 글라이더의 기원을 알아보려면 19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미국 우즈홀 해양 연구소(WHOI, Woods Hole Oceangraphic Institution)에서 근무하고 있던 헨리 스톰멜(Henry Stommel) 박사는 새로운 해양관측 장비를 떠올렸다.
그는 직접 요트를 몰아 세계 일주에 성공한 조슈아 슬로컴(Josua Slocum)에게 영감을 받아 프로젝트 이름을 정했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인 더글라스 웹(Douglas Webb)이 구체화 하는데 성공했고 1991년에 첫 실험을 무사히 마쳤다.
슬로컴 글라이더는 내부에 추가 전원공급 장치와 입출력 단자를 설치해 기존 해양관측에 사용하던 센서를 장착할 수 있다.
이 수중글라이더는 2000년대 중반 무렵, 운용 기술 현대화를 거쳐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해양관측 장비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더글라스 웹이 이끄는 텔레다인 웹 리서치(Teledyne Webb Research)는 급격하게 온도가 변화하는 수온약층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슬로컴 서멀(Slocum Thermal)을 개발했다.
새로운 소재와 설계를 적용한 슬로컴 서멀은 종래의 수중글라이더 보다 더 멀리 더 깊이 잠수할 수 있게 됐다.
시 글라이더(Seaglider)는 워싱턴대학에서 개발과 연구를 진행 중인 수중글라이더다.
유선형 날개 한 쌍과 수직 안정기, 꼬리 안테나를 지닌 이 장비는 겉보기에는 다른 수중글라이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워싱턴대학 연구진은 시 글라이더 개발을 위해 기존 장비들을 분석하며 한 가지 공통적인 약점을 찾아냈다.
바로 수중글라이더 대다수가 심해로 이동 중 수압으로 부력을 잃는다는 점이었다. 연구진은 시 글라이더에 압축성 소재를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수압을 견디기 위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동체는 여러 센서 사용을 방해하는 또 다른 장애 요소를 낳았다.
연구진은 2002년 무렵 시 글라이더 운용 자료를 바탕으로 선체 강도와 동체 형태를 개선한 딥 글라이더(Deepglider)를 개발했다.
딥 글라이더는 부력 제어에 사용하는 제어 장비의 용량을 늘려 높은 압력 하에서도 추력 손실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스프레이 글라이더(Sprayglider)는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와 스크립스 해양연구소(SIO, The Scripps Institution of Oceanography)가 공동 개발한 장비이다.
이 수중글라이더는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다른 장비보다 더 깊은(수심 1000~1500m) 곳에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유체역학적으로 디자인 된 원통형 동체 덕분에 전력 사용을 줄이고 강한 해류 속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스프레이 글라이더는 다른 장비와 다르게 각 날개마다 이리듐 위성안테나를 지니고 있다. 덕분에 다른 수중글라이더 보다 높은 통신 성공률을 자랑하지만 전파 혼선 등으로 센서 관측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수중글라이더가 점점 그 세를 확장하면서 관련 시장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이 발표되고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 기관 더글라스 웨스트우드(Douglas-Westwood)는 지난 2016년 『세계의 자율무인잠수정(AUV) 시장 World AUV Market Forecast 2016-2020』을 발표했다.
더글라스 웨스트우드는 해당 기간 동안 전 세계 AUV 시장이 연평균 10% 성장세를 보이고, 그 중 군사 분야에서 활약하는 AUV가 총 수요의 7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군사 기관은 더 오래 그리고 더 멀리 헤엄칠 수 있는 수중글라이더에 주목하고 있다.
2013년 미 국방성은 「무인체계 통합보고서(USIR)」를 통해 무인자율수중체계가 필요한 17개 분야를 선정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정보, 감시, 정찰(ISR, 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에 해당 체계를 최우선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해군은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체계 연구개발, 구매 및 유지보수에 올해까지 19억 달러(약 2조 원)를, 연안전장환경 관측용 수중글라이더 연구 및 개발 사업(LBS-G program)에 2990만 달러(약 334억 원)를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과 러시아도 군사 분야에서 활용할 수중글라이더 연구 개발에 각각 850만 유로(110억 원), 470만 달러(52억 원)를 집행할 예정이다.
꾸준히 해양 드론을 연구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수중글라이더를 국산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4년 경북대학교 해양과학연구소는 경상북도와 포항테크노파크, 해양수산부와 함께 약 200억 원 규모의 수중글라이더 운용시스템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경북대 해양과학연구소는 같은 해 7월 관련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수중무인기 통합운용센터를 설립했다.
많은 노력 끝에 경북대 연구진은 지난해 6월 무렵, 8일 동안 독도와 울릉도 해역을 오가는 시험을 시작으로 8월 무렵에는 458시간 동안 440km를 운항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를 책임진 경북대 박종진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선진국에서는 수중글라이더로 얻은 자료를 많은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며, 국내 부품 산업 인프라를 활성화 하는 등 수중글라이더의 국산화와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늘이라는 넓은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드론은 수많은 분야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이다.
내일의 혁신을 이끌 드론은 이제 하늘만큼 넓은 바다를 무대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해양관측 방식 현대화에서 시작한 수중글라이더는 이제 군사 분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바다를 탐사하는 수중 글라이더가 있다면, 바다를 청소하는 드론도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중국은 미국과 마찰을 일으켰던 남중국해에 자체 개발한 수중글라이더를 배치했다.
중국 정부는 자체 개발한 수중글라이더 하이이 1000(海翼 1000)가 91일 동안 총 1880km를 항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하이이 개발과 운용을 담당한 중국 선양자동화연구소는 이 수중글라이더가 태풍 등 열악한 해양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실험으로 수중글라이더가 해양환경보호 및 과학탐구를 비롯해 군사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이번 실험을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실시한 항행의 자유 작전(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지구 최후의 미개척지 심해. 아직 누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은 무수한 상상을 일으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지의 공간을 정복할 수중글라이더를 두고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나타날 수중글라이더는 어떤 모습일까? 드넓은 바다를 내달릴 수중글라이더는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우리의 새로운 눈이 되어준 친척처럼 바다 깊이 잠수할 수중글라이더도 미지를 밝힐 새 눈이 되어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 드론 전문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