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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드론스타팅 May 17. 2016

인텔은 왜 드론 시장의 큰손이 되었나?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 인텔(Intel)의 드론시장 진입 스토리


언론의 동향만 보면, ‘드론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의 드론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죠.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 보면 아직까지는 미래 산업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 근거로 들 수 있는 것이 대기업들의 참여인데요. 삼성전자나 애플처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아마존 등이 드론 사업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이 기업들의 정체성은 제조업에 있지 않습니다.


아마존의 배송용 드론 프라임에어(PrimeAir). 사진=storify.com


그런 와중에 최근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Intel)입니다. ‘빰- 빰↑밤↓밤↑밤~’ 이라는 특유의 로고송으로 친숙한 기업이죠. 인텔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 드릴게요. 우리가 보통명사처럼 썼던 ‘펜티엄(Pentium) 컴퓨터’.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 펜티엄이 사실은 인텔의 상표명이에요. 놀랍지 않나요? 한때 전 세계의 반도체 시장을 정복했으며 지금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이 바로 인텔입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찬란한 이름 ‘펜티엄’. 사진=commons.wikimedia.org


인텔과 드론의 인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텔이 개최한 경진대회인 ‘메이크 잇 웨어러블 챌린지(Make it wearable challenge)’에서 셀카드론 ‘닉시(Nixie)'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죠. 닉시 팀은 우승 상금 50만달러(약 5억 8천만원)를 받는 한편, 돈보다 훨씬 귀중한 기회도 함께 얻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인텔의 CES 2015 기조연설에 초청된 것입니다.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50만달러 정도는 덤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죠.


CES 2015에서 제품을 시연하는 닉시의 크리스토프 코털 CEO. 영상=youtu.be/hPf9vHd4dtk


인텔은 바로 이 CES 2015부터 드론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닉시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자사의 '리얼센스(RealSense)' 기술을 적용한 드론을 선보이죠. 리얼센스란 컴퓨터가 고화질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 등을 활용하여 주변 사물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기술을 말해요. 리얼센스를 활용하면 얼굴 인식을 활용한 보안 장치나 사람의 동작에 따라 반응하는 게임 등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인텔은 이 리얼센스를 드론에 활용하여 장애물 회피 기능을 구현했습니다.


CES 2015에서 선보인 장애물 회피 드론. 영상=youtu.be/Us0BqJvsF9k


이 드론의 제조는 독일의 스타트업 어센딩테크놀로지(Ascending Technologies)가 담당했습니다. 두 회사는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결국 올해 1월, 인텔이 어센딩테크놀로지를 인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텔과 드론을 이야기할 때 닉시와 어센딩테크놀로지만큼이나 중요한 기업이 있는데요. 촬영용 드론 'Q500'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닉(Yuneec)입니다. 지난해 8월, 인텔은 유닉에 대한 투자를 선언한 바 있죠. 그런데 금액이 무려 6천만달러. 한화로 따지면 700억원에 달하는 거금인데요. 인텔의 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Brian Krzanich)는 이 투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인텔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사진=ibtimes.co.uk


우리는 드론이 인간의 삶을 상당 부분 바꿀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상품 배달이든, 재난 현장 탐색이든 간에요.

그리고 인텔의 기술이 바탕이 된 유닉의 스마트 드론은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하고 연결된 세상이 올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모두에게, 그리고 모든 곳에 드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텔의 로드맵에 있는 드론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드론 산업에 혁신을 일으킬 것입니다.



크, 멋진 말입니다. 크르자니크 CEO의 말처럼, 인텔은 유닉에 단순히 돈을 투자한 것뿐 아니라 기술 제휴도 함께 맺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인텔과 유닉이 손잡고 만든 신제품 '타이푼H(Typhoon H)'는 수 개월 내로 리얼센스를 결합한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죠.


* 유닉(Yuneec)의 타이푼H는 어떤 드론일까요?


CES 2016에서 선보인 타이푼H의 리얼센스 버전. 영상=youtu.be/feZ7yRpg4UE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왜 하고많은 드론 제조사 중에 유닉을 택한 걸까요? 물론 인텔에서 대놓고 밝히진 않았지만 몇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1. 독점적인 투자가 가능한가?


유닉이 추격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는 드론 업계 1위 DJI의 경우, 인텔이 유닉에 투자하기 전에 이미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인 엑셀파트너즈(Accel Partners)로부터 7500만달러(약 876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텔이 DJI에 투자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왕 거액을 쏟아붓는다면 그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맞겠죠.


엑셀파트너즈는 DJI에 876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사진=commons.wikimedia.org



2.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가?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요즘에는 중국 시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큰 성장은 바라기 힘듭니다. 특히나 드론은 중국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제품이죠. 소비자 수, 제조업체 수, 인프라, 정책 지원 등 모든 부문에서 중국이 압도적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가능성 있는 기업은 분명 있겠지만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중국을 잡아야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pixabay.com



3.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가?


중국에 드론 제조사는 별처럼 많지만, 쓸 만한 기술력을 갖춘 곳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부분 완구용 드론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유닉은 Q500 시리즈를 통해 DJI 못지 않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될성부른 나무’, ‘싹수가 보이는 기업’이라고나 할까요? 물(자금)과 햇빛(기술)을 공급해주면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인텔은 그 가능성을 보고 거액의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 유닉의 Q500은 어떤 드론일까요?


유닉의 기술력을 보여준 Q500. 사진=yuneec.com


인텔은 어센딩테크놀로지와 유닉 외에도 에어웨어(Airware), 프리시전호크(PrecisionHawk) 등 여러 드론 업체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 대체 왜 인텔이 드론 산업에 뛰어든 걸까요? 인텔 경영진의 속내야 ‘며느리도 모르는’ 거겠지만 정답은 아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공룡기업인 인텔을 놓고 ‘먹고사니즘’을 논하다니! 다소 도발적이라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인텔도 사정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인텔을 지탱해 온 사업은 CPU를 필두로 한 반도체입니다. 그 중에서도 PC 관련 제품들이죠. 그런데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PC 시장의 전망이 암울해졌습니다.


그냥 모바일로 갈아타면 되지. 덩치도 크고 기술력도 뛰어나잖아?


충분히 가능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모바일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합니다. 모바일 시대의 펜티엄이랄 수 있는 ‘스냅드래곤(Snapdragon)'의 제조사 퀄컴(Qualcomm)이 그 주인공이죠.


인텔의 모바일 시장 진출을 가로막은 퀄컴과 스냅드래곤. 사진=cpuboss.com


PC로 치면 CPU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AP 시장에서 인텔은 퀄컴의 아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모바일 칩 생산 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죠. 인텔의 체면을 생각하면 굴욕적인 결과였는데요.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인텔 입장에서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는 것 정도죠.


모바일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인텔은 다방면에 활발한 투자를 하며 미래의 먹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사물인터넷(IoT), 커넥티드 디바이스(인터넷에 연결된 기기), 클라우드 서비스(Cloud service) 등이 그것이죠. 드론도 인텔의 미래 계획에 이름을 올린 거고요. 인텔 정도 되는 기업이 한 사업에 ‘올인’할 리는 없겠죠. 선택지 중 하나에 700억원을 쓰다니, 새삼 인텔이 얼마나 거대한 조직인지 알 수 있죠?



지금까지 인텔과 드론의 밀월 관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얼마 전 미연방항공청(FAA)이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했는데요. 앞서 명연설로 저의 마음을 흔들었던 크르니자크 CEO가 이 위원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드론 산업에서 인텔이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위원회 활동을 통해 드론 정책에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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