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무섭다

사유하는 여자

by dropfairy

오늘로 브런치 작가가 된 지 2주가 됐다.


오른쪽 엄지와 연결된 손바닥과 검지 손가락이 아프다. 사실 지난주부터 오른손이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어깨, 목, 등까지 아프다.


이 글까지 총 18개의 글을 모두 휴대폰으로 작성해서 올렸다. 이유는 집에 컴퓨터가 없기 때문이다.


2주 전에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직접적인 이유는, 그전 2주 동안 두 번의 승진 도전에서 모두 낙방한 덕분이다.


모든 지원자가 그랬겠지만 떨어질 줄 정말 몰랐다. 자기 객관화가 됐다고 생각하면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객관적으로 내가 안 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승진 후 입을 정장과 하이힐, 그리고 평상시에 신을 편한 구두까지 미리 구매했다.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 엄마가 얼마나 바빠질지에 대해서 주야장천 얘기했다.


"엄마, 내가 아르바이트 면접 보면서 느낀 건데, 안될 것 같은 곳은 되고 될 것 같은 곳은 안되더라"


아들의 이 말은 안중에도 없이 나는 이미 멋지게 정장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쉼 없이 인사를 하며 박수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나만 몰랐나? 연달아 충격적인 결과를 받고, 덜 아픈 척 많이 웃고 힘이 넘치는 듯 뛰어다녔다. 그러다 돌연 그냥 울고 싶었다. 손상된 내 자존심을 치유할 도구가 필요했다.



책을 내는 게 내 꿈이라고, 오십 전에는 꼭 작가가 되겠다던 내 다짐을 증명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예시를 본 후 구체적으로 나를 소개하고 최근 쓴 글과 20년 전에 쓴 글까지 3개의 글을 첨부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점심때, 알림으로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이 길이 내 길인가?"
"어렵게 준비한 16년 만의 승진 도전은 실패했는데 브런치 작가는 이렇게 쉽다고?"


나를 알아주는 곳에서 나를 돋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브런치스토리에 내 글을 빨리, 많이 제대로 올리고 싶었다.


퇴근 후 침대에서, 출근길 전철 벽에 기대서, 헬스장 사이클을 타면서, 걷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휴대폰 자판을 톡톡 두들겨 문장을 만들고 빈 공간에 나를 새겼다.






내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은 언제부턴가 휘어있다. 학창 시절 하도 연필을 힘주어 쥐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계속 글을 쓰다가는 머지않아 내 오른쪽 팔도 휠 것 같다.


지난달까지 노트북이 책상에 거의 인테리어처럼 놓여 있었다. 8월 말, 아들이 기숙사로 들어갈 때도 엄마는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다며 흔쾌히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5일 후,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됐다.


이틀 전부터 회사 컴퓨터로 브런치스토리에 로그인을 해봤다. 넓은 화면으로 접속하니 문단 배열, 오탈자도 잘 보이고 우선 자판을 자유롭게 치는 게 좋았다. 다음 주부터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 글을 쓰려고 한다.


회사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직장인의 내적 갈등을 이겨낼 만큼 글 쓰는 게 좋다. 글을 쓰다 보면 쓸 거리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쓸 얘기가 많아진다. 한컴타자연습으로 단련한 워드 실력을 이제야 활용해 봐야겠다.



글쓰기가 무섭다. 매일 쓰고 싶고 계속 쓰고 싶고 글만 쓰고 싶다.



운동도 안 가고 밥도 덜 먹고 글만 보고 싶다. 어깨가 아프고 손이 저리고 눈이 흐려도 글만 생각난다.


글쓰기가 이렇게 무섭다. 몰랐는데, 글거리가 담긴 화수분이 내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