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그녀 실천적 이상주의자
한낮 온도가 37도에 달하는 한여름 일요일.
트레드밀을 10킬로 뛰고 실내자전거로 15킬로를 달렸다.
급하게 환복을 하고 책 두 권과 양산을 챙겨 집 근처 대형카페로 향한다. 책은 조용한 곳에서 읽어야 한다고, 글은 혼자인 곳에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좀 달라졌다.
온전히 조용하고 혼자인 내 공간의 안락함은 오히려 나를 게으르게 만들었다. 요즘엔 적당한 소음과 군중이 섞인 곳에서 허리를 곧추세워야 잠들지 않고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초점을 놓은 채 쨍한 하늘을 응시했다. 하고 싶은 말과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차츰 떠오른다.
"중학생이 된 것 같아."
내성적이고 사색을 즐겼던 무채색에 가까운 아이였다. 수줍음이 많아 낯선 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너무 창피해서 설날 때 세배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잘하는 건 밤새워 책 읽기, 정리 정돈하기, 분류분석하기, 생각하기. 모두 혼자 하는 일들이었다. 특별할 게 없는 아이는 조금은 특별해지고 싶었다.
15살 때 교생선생님이 맘에 안 드는 남자가 쫓아오길래 일부러 이상하게 걸었더니 그 남자가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종아리를 교차해서 일자로 걷는 연습을 했다. 마음에 드는 멋진 남자가 내 걸음걸이 때문에 도망가면 안 되니까.
공부가 취미였던 나의 둘째 오빠는 여자가 얼굴만 예쁘고 머리가 빈 게 제일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다. 얼굴도 안 예쁜데 공부도 못하면 평생 연애도 못할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ANNE처럼 되고 싶었다. ANNE처럼 성장하는 밝고 성숙한 여자가 되면 길버트 같은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길버트를 만나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많이 낳아 각자를 세상의 빛으로 희망으로 잘 길러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노력했다. 노력하지 않고 꿈꾸는 건 탐욕스럽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름답지 않으니 노력해야 했다. 노력해도 얻지 못할 수 있지만 노력해야만 꿈꿀 자격이 있으니 꿈꾸기 위해 노력했다.
집을 건너 학교로 가는 길목에 광주문화예술회관이 있었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단화에도 또각또각 발소리가 울리던 햇살이 닿은 대리석 모서리가 윤슬처럼 반짝이는 곳이었다.
방과 후 습관처럼 그곳에 갔다. 잘 닦여 반들반들 윤이 난 계단 정상에 오르면 상시 공연이 있었고 음악과 전시가 끊이질 않았다. 표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무료 관람이 많아 온갖 콩쿠르를 본 것 같다.
그곳에서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가끔 내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이면 도서관에서 전날 메모해 온 수첩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오후에는 또 아지트를 오가며 중학교 2년 반 정도 단골 루틴을 지켰다. 조금씩 내 색이 생기는 것 같았다.
주위를 관찰하고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내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때 보았다. 나팔꽃이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오후에 시들어있는 것을. 시들어져 갈 줄 았았던 꽃이 다음날 아침에는 또다시 만개해 있는 것을. '기쁜 소식'이라는 꽃말처럼 이제 막 세상이 깨어나는 아침에 가장 먼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애써 피어나는 것 같았다.
이 신비한 꽃을 보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몽글몽글 꽃잎마다 맺혀있는 이슬에 요정이 살고 있지 않을까? 물방울 요정? 그렇게 나는 'dropfairy'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타고 있는 태양 아래 붉은 벽을 거침없이 오르는 화려하고 힘찬 꽃을 매일 관찰하던 것도 그때였다. 담쟁이덩굴이 갖지 못한 짙은 감귤색 꽃과 향기가 너무 신기했다. 능소화라는 이름을 알지 못해 그 꽃은, 붉은 담장 위에서도 색을 잃지 않던 강렬함으로 수십 년 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교정에 줄지어 가득한, 꽃의 밑동이 잉크색 그러데이션으로 짙어지는 무궁화도 자주 봤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무궁화를 볼 때면 늘 이 시를 읊조렸다. 떠날 때가 되면 잎을 단정히 모아 몸을 떨구고 스스로 봉긋한 무덤이 되는 자태가 여느 꽃들과 달랐다. 먼 훗날 나의 때가 되면 이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이후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중학생때와 비슷한 키와 몸무게, 다행히 계단이나 횡단보도를 뛰어갈 체력이 아직 있다. 혼자서 관람하고 사유하고 그러다 가끔 내가 좀 멋있다고 도취되는 것도 여전하다.
일찍 결혼을 했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는 빛나는 성인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지만 헤어지지 않는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
15살이 45살이 되었는데 다시 중학생이 된 것 같다.
재미있거나 의미 있거나 아님 혼자 있기. 중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습관이 나를 만들고 끊임없는 노력이 나를 꿈꾸게 한다.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성장해야 하므로 혼자서도 꿋꿋하고 행복하고 결론적으로 멋있을 것.
꿈꾸는 그녀 실천적 이상주의자.
30년 후, 50년 후, 나의 색은 어떻게 밝혀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