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나 봐

나이가 재산이 되게 살자

by dropfairy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 누군가는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일, 그저 그렇게 넘기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아.

2025년 8월. 두 번의 승진 낙방과 난생처음 교통사고가 있었어.

양육을 위해 선택한 안정적인 직장. 수백 명의 직원 중 한 명으로 16년을 일하고 이제는 조금 화려해지고 싶었어.


핏이 된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고 사람들 앞에 서고 싶었어. 바꿀 수 없어 순응했던 일들을 이제는 내가 바꾸고 찬사도 듣고 싶었어.

2주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의 면접을 봤고, 여러 타당한 근거로 내가 될 거라고 확신했지. 첫 번째 낙방 때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충격, 그리고 두 번째 낙방 때는 온통 슬픔이 차올랐어.




나이가 들수록 내가 싫어했던 것, 못하는 것, 하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성장하지 않으면 쇠퇴할 것 같거든. 고인 물처럼 나도 썩어갈까 봐 겁이 나나 봐.


냇가에서 함께 놀던 초등학교 상급생 언니가 구급차에 실려간 걸 봤고, 다시는 언니를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됐을 때부터였을까? 나에게는 물 공포증이 있어. 가슴 너머 몸이 잠기면 숨을 가빠져. 물속에 얼굴을 넣으면 입과 코와 귀로 물이 넘쳐날 것 같아.


수영을 배워봤지만 크게 나아지진 않았어. 차라리 서핑이라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 퇴근 후 이미 차에 실린 짐을 싣고 바로 양양으로 차를 몰았어. 금요일 저녁인데도 피서철이 끝나서인지 차가 정말 적었어. 들뜬 마음에 속도를 올렸고 목적지까지 70킬로 밖에 남지 않았어.

항상 차간거리 유지를 잘하는 편인데 그날은 브레이크를 밟아도 앞 차와의 간격이 점점 가까워졌어. 이대로 가다가는 무조건 앞차를 정면으로 박을 것 같아 2차선으로 핸들을 돌렸지. 그런데 핸들 조작이 되지 않고 차가 제멋대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어.

꿈속에 있는 듯 정신이 아득해지며 화물차 사이드를 박고 승용차를 스친 후 터널 벽으로 돌진하며 차가 멈췄어. 이제껏 보험사 긴급출동 한번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교통사고를 냈어.




귀인이지. 어찌할 줄 모르고 멍해있는 나를 차 밖으로 대피시키고 2차 사고가 나지 않게 현장통제를 해준 내 뒤를 지나가던 소방관들. 자동차 관련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연락한 나를 위해 먼 길을 돌아 달려와 준 상이오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본 적이 많지 않아. 알아서 혼자 잘하고 뭔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혼자서도 빛이 나는 나만의 별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

예측했다면 조금은 달랐겠지. 그런데 정말 몰랐어. 내가 승진하지 못한 이유가 단지 그동안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내 능력과 스펙, 가능성이라면 승진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자만했어.

시력이 좋지 않아 야간 운전을 잘하지 않아. 부득이한 야간 운전 시 과속을 하지 않아. 그런데 그날은 빨리 양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앞서 있었어. 터널 안 노면은 젖어 있었고 그곳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차량 미끄럼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라는데 나는 과속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어.

보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두 번의 낙방과 난생처음 교통사고를 겪었어. 머리와 심장이 동시에 먹먹해지며 나의 전부가 일시 정지 된 것 같았어.


그때마다 얼음땡 게임에서 땡에 반응하듯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어. 달리고 걷고 반추하며 "그럴 수 있지. 뭐 어때." 이렇게 되뇌니 어느덧 내가 웃고 있더군.




2025년 8월. 한여름의 찰나가 여러 장의 스냅 컷으로 남게 되었어. 곁이 필요한 모든 순간에 든든하게 나를 지켜준 진짜 내 편 수영언니, 정화언니, 주연이, 하나.


의식이 마비된 듯한 첫 교통사고의 처음과 끝을 함께해 준 내가 평생 귀인이라 부를 상이 오빠.


도전하는 나와 실패한 나에게 똑같이 "엄마 멋있네."라고 응원해 준 내 아들 재이.


"어른이 되었나 봐."


나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실패나 사고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어제는 아팠지만 오늘은 추스를 수 있고 내일은 다시 뛸 수 있어.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지켜나가며 고난에 작게 흔들리고 고마움에 크게 감동할 거야.


"나이가 재산이 되게 살자."라고 다짐했던 소녀의 바람대로 나이만큼 점점 어른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