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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Feb 03. 2024

사춘기 아들 납치 사건

이게 실화야?

긴급 속보입니다.

납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월 1일 오후 5시경. 경기도 K중학교 다니는 C군이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한 겨울, 반팔 검정 티셔츠에 잠바 하나 걸친 채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하얀 카니발에 실려 어딘가 끌려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완전 범죄.

나는 그렇게 아들을 납치하기에 이르렀다.




큰일이다. 내 아들이 순순히 따라와 줄까? 올해는 꼭 아이들과 해외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속 계획을 오래 품고 있었다. 복잡한 일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뭐든지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들, 증명사진이 필요해"

"안 찍어. 나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한다고요."

"올해 변동 사항이 있어서, 가족들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그래."


아들, 미안해. 뻥이야! 중3이 되는 아들, 너에게 엄마가 여행을 가자고 해도 너는 순순히 갈 것 같지 않았어. 알아,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 네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지만 너의 의견은 요즘에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내용이 거의 없단다. 미안해.

(새빨간 거짓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슬프지만 현실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엄마의 거짓말로 사진관에 끌려간 초록이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눈썹 가린 앞머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앞머리를 깐 채 찰칵!


세상 제일 싫어하는 앞머리를 올리며, 왜 눈썹을 보여야 되냐고 내게 입모양으로 궁시렁 거린다.

"어이, 학생! 여기 봐, 여기!"

"에헤이, 머리까락 더 올려야지. 아저씨가 눈썹 보이면 3,000원 깎아준다이."

"눈 똑바로 뜨고, 웃지 말고 무표정으로!"

사진사 아저씨가 깎아준 덕분인지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한 것인지 사진 촬영은 일단 성공이다. 3.000원도 할인받았다.


아들의 사진을 들고 시청에서 여권 신청을 완료했다. 떠나기 일주일 전 비행기 티켓을 끊고 바로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검색하다가 태국 맛집을 보여주며 밑밥만 던졌다.

"어때? 맛있겠지"

"우와 여기 리조트 진짜 좋다!"

"호텔에서 보는 뷰 끝내준다."


아들은 점점 내 작전에 말려들었다. 여행 가기 이틀 전 여행 가방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한다.

여권도 마침 도착했다.


"아들, 여권 나왔어!"

"여권은 왜요?"

"세계화 시대에 요즘엔 지하철 타듯 기본으로 교통 카드처럼 갖고 있어야 언제든 떠나지."

눈치를 살짝 살핀다. 폰 보느라 정신없는 아들 옆에 앉았다.

"초록아, 낼모레 우리 태국 간다!"

"난 안 가요."

"비행기 표 다 끊었어."

"와, 이거 실화예요? 어떻게 이틀 전에 여행 간다고 통보하는 법이 어딨어요?"


그렇다. 아들아, 이건 실화야. 어디든 안 가겠다고 발뺌하는 사춘기 아들과 함께 가기 위한 엄마의 납치 작전이란다.


아들은 비행기 값이 얼마냐? 그 돈으로 컴퓨터 사양을 늘리면 얼마나 합리적이냐? 그 돈을 용돈으로 주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숙소는 어디냐? 뭐 하고 놀 거냐? 뭐 먹을 거냐? 자긴 뭐 입어야 되냐? 수영복은 챙겼냐?


다행히 아주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휴우, 한고비 넘겼다. 이렇게까지 해서 데려갈 일인가! 친정 엄마랑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고, 애들하고도 가고 싶은 마음에 저지른 행동.


몇 달 전부터 태국 가면 같이 가자던 친한 언니가 있어서  쉽게 저지르지 않았을까? 점점 쌀쌀한 바람 부는 사춘기 녀석들 마음에 뜨거운 콧바람 넣어주러 일단 질러본다.


은밀히 진행된 납치 사건의 시작은 생각보다 성공적이었고, 돌발 사건 없이 무사히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pictures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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