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방울 Mar 04. 2024

솜사탕 같은 추억을 구름 속에

 숨겨두고 꺼내 먹어요

뒤돌아보면 걸어왔던 길은 흑백사진 처리를 한 것처럼 감성 돋는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자꾸 뒤를 돌아본다. 거슬로 올라가다 보니 한 장, 한 장 사진 속에 담겨있는 풍경이 보이고, 그 안에 내 사람들이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꾸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기쁜데 너무 슬프다. 이 무슨 감정이란 말인가.


오랜 시간, 가족과 흩어져 살아온 주말부부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세상에, 그렇게도 바라 바랐던 일을 이제야 이루게 되다니. 서류를 제출하고 안되면 서글퍼서 베개를 적시곤 했었다. '오예!' 하늘을 날아오르고 맨발로 뛰어가 남편에게 발령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 발령 소식을 전해 듣고 가족들은 기뻐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터라 떠들썩하게 들뜨진 않았다. 기쁜 마음도 컸지만 떠나올 이곳이 왜 이리 아쉬운지.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를 한다는 식상한 표현으로 하자면, 내 덕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16년 차 주말부부(엄밀히 따지면 그보다는 좀 더 빠지긴 하다. 그 사이에 육아휴직도 하고 파견도 하였으니)를 끝내고 가족과 합체의 시간이 다가왔다. 진짜 기쁜 거 맞긴 맞다. 진짜니까 믿어주시길. 그런데 자꾸 남편에게 미안하리만치 훌쩍이며 많이 울었다. 가족과 함께하게 된 일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지역의 경계를 넘어 소속교육청이 바뀌고 이젠 함께 근무할 수 없는 내 동료 교사들을 떠나려니 가슴이 아렸다.


함께 근무했던 학교 선생님들도 기쁜 마음을 전해주었다. 떠나기에 아쉬운 마음도 함께.

"누님, 저 어제 꿈을 꾸다가 울었어요. 꿈속에서 누님이 떠난다고 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선생님이 가면 이제 우리 어떡해요!"

"너무 잘됐다. 근데 너무 아쉬워."

서로 마음을 전하며 울컥 목소리가 흥건해져서 바라보았다.

"보고 싶을 때 만나면 되지."

애써 태연한 척, 우린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좋은 인연으로 오래 보자고 했다.



4년 전, 이곳에 왔던 그날부터 글을 쓰는 동안 지난 시간을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떠올려지는 기억의 순간으로 날아가 앉아 그곳에서 글을 쓸 수 있다니. 다행히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아!' 퉤퉤 침 뱉을 일도 없었고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수두룩 빽빽하다. 관사에서만 있었던 일을 떠올려도 며칠 밤낮을 지새우며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슬기로운 관사생활'을 제목으로 연재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짤막하게 사진과 함께 기록된 내 일기장을 들춰보며 지나온 4년의 시간만큼 연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관사를 비워주어야겠다. 연재를 하는 동안 자꾸만 관사에 머물게 되어 지금을 걷는 일이 버거웠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과의 낯선 느낌과 그곳에 친숙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이 자꾸 떠올라서 한편 괴로웠다. 보고파서 전화를 걸고, 그때의 사진을 자꾸 들춰보게 되니 말이다. 글을 쓰는 동안 자꾸 여기서만 어슬렁거리면 어쩌나 싶다. 이젠 관사를 떠날 시간. 언제고 기억 속을 더듬어 그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3월을 시작하며 잠시 그리운 마음을 접어두기로 했다.


교실 정리를 하고 관사 짐을 정리하는 날, 내가 걷는 길마다 사진을 찍었다. 비어있는 관사로 딸은 나를 따라 출근했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담아 오고 싶다며. 버릴 이불을 가져가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빈집에 우리는 하루를 보냈다. 봄이도 내 마음과 같은지 사진으로 구석구석 담고 있었다.

"참 좋았는데."

"이제 여기서 못 사는 거네. 나는 여기 친구들이랑 졸업앨범 찍고 싶었어. 소원카드에도 그렇게 썼는데."

"그랬구나. 엄마가 발령 나서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네. 그래도 봄아, 우리 다 같이 살 수 있게 되어서 좋잖아."

"그렇긴 한데, 나는 이 동네가 참 좋았어. 관사에서 사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날 밤, 봄이와 나는 우리가 즐겨 찾던 식당에 갔다. 고기를 구워 먹고, 야무지게 냉면까지 먹었다.

"사장님, 저희 이사 가요."

"어머나, 그래요? 이렇게 가끔 오셔서 맛있게 드시고 가셨는데."

"놀러 오면 들러서 먹고 갈게요."

"다른 데 가셔서도 잘 지내세요!"


내가 지나갔던 장소와도 인사하고 싶었다. 사람들과도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며 마무리하고 싶었다.

"선생님, 지금 선생님 잠깐 뵈러 가도 돼요?"

"아, 기분이 갑자기 이상해요. 눈물 날 거 같아요. 선생님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으시죠?"

"지난번에 빌렸던 플루트 교재 드리려 가려고요."

"한참 보시고 나중에 주셔도 되는데... "


취미로 플루트를 배우러 다니던 학원 선생님께 인사하려고 카드 한 장, 전해드릴 선물을 들고 찾아갔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보이셨다.

"선생님, 발령 나셨죠?"

"네. 또 올게요."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잉, 나 이런 거 싫은데, 눈물 나잖아요. 근데 진짜 너무 잘되셨다. 그동안 멀리 다니시느라 고생하셨잖아요."

나도 덩달아 눈물이 핑 돌았지만 선생님을 꼭 안아드렸다.

"놀러 오시면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방 내어 드릴게요!"

"진짜 올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 꼭꼭 껴안아주고, 이곳저곳 다시 밟아보며 사진으로 담고 마음속에 저장해 본다. 선생님들이 퇴근한 후에도 봄이와 나는 학교를 떠나지 못한 채, 운동장을 뱅뱅 돌았다. 철봉에도 매달려보고 그네도 타보면서 봄이는 파노라마 사진으로 빙그르 천천히 돌며 하나로 담아내었다.

'봄아, 너도 엄마랑 같은 마음이구나. 4년 동안 너도 친구들과 얼마나 정이 많이 들었을까. 세상에서 우리 학교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자랑하던 네가 학교를 떠나는 마음이 어떨까.'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따라 동네를, 학교를, 친구를 억지로 정을 떼어내며 나와야 했던 지난 시간들도 함께 겹쳐지지 미안하고 짠한 마음도 들었다. 초록이가 4학년 때 친한 친구와 헤어지면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친구 안 만들 거예요. 친해지면 또 떠나고, 또 떠나고."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체념하는 마음도. 다행히 다 잃었던 것이 아니기에 그보다 소중한 것들을 느끼고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정리해 본다.


차를 타고 떠나기 전에 봄이는 다시 관사로 들어간다. 이삿짐도 없이 텅 빈 방을 빙 둘러보았다. 군데 근데 얼룩이 피어올랐던 현관에 우리가 직접 페인트 칠을 하고 손바닥을 찍었던 곳에 봄이가 손을 갖다 댄다. 문에 찍혀있는 손은 봄이 손보다 훨씬 작고 어린 손이다. 그렇게 자랐구나. 벽에 투명 테이프를 붙여 위에 키를 재었던 곳에도 키를 대어 본다. 우리가 있던 사이 15CM나 자랐다. 감사한 시간이다. 길어진 손가락만큼, 커진 키만큼 우리는 마음도 자랐을 것이다. 4년은 아이들 인생에서 노른자같이 중심에 놓아도 모자람이 없을 시간.


초록이와 봄이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우리는 관사에서 있었던 시간을 소중하게 꺼내어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손이 닿지 않아 점프했던 철봉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걷던 운동장을 다시 돌며 바람 부는 겨울에 연날리기했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봄날 민들레홀씨 포르르 날렸던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어린이날 친구네 식구들을 불러 가족 체육대회를 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더운 여름날, 물풍선을 만들고, 물뿌리개로 물싸움했던 그날의 웃음소리를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한밤중 눈 내리는 밤에 내복바람으로 나가서 눈을 만지며 좋아했던 하얀 밤. 화면에 다 채워도 모자를 수많은 장면을 차곡차곡 담아, 아직은 닿지 않은 시간에 이르렀을 때 다시 하나씩 꺼내어 볼 것이다.


구름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달콤하게  꺼내 먹기로 하자




[슬기로운 관사생활]을 읽어주시고 라이킷 소리로 기쁨을 주시고 댓글로 깊은 공감을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관사에 머물며 아이들과 살았던 시간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엄마가 가는 대로 따라와 잘 적응해 주고 더없이 행복한 웃음을 만들어준(뻥뻥 속 터지는 일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참 고맙고 미안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처음 겪었기에 특별한 관사이야기는 사실 평범한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야기는 또 다른 이들의 일상이고 별것 없는 사소함이 가득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0화 단출해진 관사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