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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Feb 29. 2024

단출해진 관사생활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도스도옙스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아들과 눈물 바람을 맞으며 헤어진 후, 우리는 그 사이 어쩔 수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원래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갔다.                


"봄아, 뭐 먹을까?"     

한 사람 입맛을 맞추는 일은 참 쉽다. 피곤한 날 저녁에는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딸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만 끓여도 한 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 3첩 반상은커녕 한 가지 메뉴로 한끼를 해결하는 식이다. 아들이 있었다면 떡볶이는 식사 후 가벼운 간식이었을 뿐일텐데 봄이와 나에게 떡볶이는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알맹이 빠진 밥상에 입이 심심하고 허기가 지면 중국요리, 고기, 칼국수, 돈가스, 갈비탕 등으로 속을 채웠다. 다행인 것은 평소에 골고루 영양소가 설계된 급식을 먹는 것으로 위한을 삼았다. 


또는 1시간을 훌쩍 달려 시내로 나가 봄이가 좋아하는 연어초밥을 실컷 먹고 오거나 예쁜 레스토랑에 가기도 했다.  사치를 부리고 있다가 매일 안부차 걸려온 남편에게 딱 걸리기도 일쑤. 잘못한 아닌데 마음에 걸리는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보기에 딸과 알콩달콩 데이트 하듯 일상을 보내는 모습에 부러워했다. 


"밥 먹었어?"

"응, 우리 지금 00에서 초밥 먹고 있어."

“와, 우리는 지금 계란 볶음밥 해먹었는데, 너희는 잘 먹고 잘 사는구나. 아, 빈부격차가 느껴진다.”

남편은 농담처럼 던지곤 했다.     

"초록아, 밥은 먹었니?"

"아직 아빠가 안 오셔서요."     

조금이라도 늦어지거나 배고프다고 이야기를 하면 속상한 마음에 일하는 남편에게 부재 중 전화를 몇통 남기곤 했다. 초록이를 데리고 가면서 자기가 잘 챙긴다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 얘기하면 남편은 걱정 하나 없는 사람처럼 가볍다.

"이제 초록이 나이가 몇 살이야? 배고프면 뭐라고 챙겨 먹겠지."

초록이가 좋아하는 메뉴를 먹을라하면 '우리 초록이가 먹으면 진짜 잘 먹을텐데...'하고 아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3-4번은 어머님이 오셔서 저녁을 차려주시기에 마음을 놓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들이 걸리는 마음은 마음이고, 맛있는 음식은 걸리지도 않고 잘도 들어간다. 엄마 맞아? 엄마 맞다. 굶어지지도 않는 나는 현대 여성. 내가 건강하고 잘 먹어야 일도 하고 아들 딸 맛난 거 사주는 거지. 

‘초록아, 엄마가 집에 가면 맛난 거 사줄게.’    

속으로만 고해성사를 하고, 미안한 마음을 지우는 듯 약속을 하고는 맛있는 한끼를 딸과 우아하게 즐긴다.

 

살림을 하다보면 가족의 수만큼 할 일이 배가 된다. 분리되어 살다보니 치울 것도 반으로 줄고, 세탁기도 그만큼 많이 돌릴 일이 없다. 초록이의 책상과 입던 옷가지를 정리하고 나니, 수납 공간이 늘어난다. 철이 지날때마다 넣었다가 뺐다가 보관 상자에 넣었다가 하는 수고로움이 줄었다. 그렇게 공간도 마음도 여유 공간이 조금 생겼다.      


생긴 여유만큼 허전함도 커졌다. 북적북적 딸과 투닥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밤마다 웃기는 아들의 코메디쇼도 볼 수 없다. 딸과 작당모의 하고 웃기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점점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없어지는 모습이겠지만.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며 온몸으로 웃는 풍경도 사라졌다. 조용하고 차분한 틈에 딸과 계획한대로 공부도 하고 책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교감 선생님이 궁금하셨는지 물으셨다.

“요즘에 집에서 뭐하고 지내? 학교 끝나면 봄이를 통 볼 수가 없네.”

두 아이들과 살면서 남편이 자주 오면 집과 운동장에서 우리가 학교를 꽉 채우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드니 교감 선생님도 달라진 풍경이 느껴지셨으리라. 옆집에 사시던 교감 선생님은 소음 속에서 사시다가 해방이 되시기 무섭게 다른 학교로 떠나셨다.     


나와 봄이는 한주를 꽉차게 보냈다. 뭘 그렇게 많이 하나 싶게 여유롭지만 꽉차게 보냈다. 조용조용 꼬물꼬물 거리며. 금요일,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꽉 차게.

월요일엔 봄이와 함께 도자기를 빚으러 시내까지 나가서 한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화요일에는 도서관에서 실컷 책을 읽고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왔다. 수요일은 퇴근하자마자 봄이를 혼자 두고 나의 취미생활을 하러 길을 나섰다. 목요일은 봄이랑 그때 그때 다르게 지내다가 하루가 간다. 저녁 영화를 예매해서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 한 편을 보며 같이 공감하며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은 일정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과 아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간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가고 아들과 떨어져 산 지 2년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는 아픔을 겪고 금새 적응해갔다. 아니 이제 이게 더 익숙해지고 편해져서 다같이 모이는 시간이 행복했지만 사춘기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끄럽고 피곤한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그 사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언제 그렇게 살아볼까?'


나 스스로에게 특별해진 우리의 삶을 그렇게 표현해보곤 한다. 

언제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며 살겠어?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고 관사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거야. 좋았잖아, 우리. 불편한 집이었지만 우리는 돌아갈 집이 있었고 다같이 다닥다닥 붙어 잠을 이루었던 날들이 행복했잖아. 조금만 걸어가면 계곡이 있고 산이 있는 자연을 누리며 살았잖아. 지역적 특색으로 우리 아이들은 지역이 주는 혜택을 얼마나 누리며 살 수 있었어. 큰 돈 들이지 않고 교육을 시키며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인품 좋으신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보낼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어. 학교가 가까우니, 오가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는지 몰라. 우린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았던 거 같아. 힘든 시간을 잘 견뎌 지금에 이르게 되었어. 덕분에. 


대신, 아들에게 주어진 자유로 기본적인 습관들이 많이 무너지긴 했다. 너무 큰 자유를 한껏 느껴서 부모의 통제가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미꾸라지 사춘기 속수무책 아들. (큰일이다. 아들이 내 정체를 알아버려서 가끔 검색이라도 하면. 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에 맘에 들어하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끝까지 가봐야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지금 당장은 내게 잃은 듯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떨어져 산 시간만큼, 공유하지 못한 이야깃거리만큼 아들과 거리가 생긴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도 든다. 사소한 일상을 나누지 못한 시간이 아쉽기는 하다. 대신 사춘기에 만난 날카로움을 매일 마주하지 않았기에 서로 덜 다치지 않았을까 위로해본다. 주말에 압축하여 눈에 보이는 잔소리거리를 쏟아내곤 했지만 말이다. 


둘씩 나눠서 지내다 보니 아빠와 아들의 정이 깊어졌으리라. 나 또한 딸과 둘이서 하는 비밀들이 생기고 애틋함이 생겼다. 둘이서만 쌓은 추억이 있으니 통하는 부분들이 생기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거 같다. 같은 취미 생활을 즐기고, 밤에는 나란히 누워서 도란도란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어떤 선택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관사에서 살게 된 시간과 아들을 보내어야 하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작고 큰 순간의 경험치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관사에서 살았지만 다른 여느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주어진 삶에 적응하며 내가 있을 곳이 어디든 지금 이 순간을 잘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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