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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Feb 20. 2024

헤어질 결심

너를 사랑하고도

"J야, 생각을 바꿔봐."

"지금은 이게 최선인 거 같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초록이가 너무 마음에 걸려. 우리 초록... 흐흑"

오빠는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말끝이 흐려지고 눈물 흥건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음에도 오빠의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잠시 우리 둘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듯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이쯤에서 여기서 나오는 우리 오빠, 큰 오빠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겐 5살 차이가 나는 큰오빠가 있다. 우리 남편도 나와 다섯 살 차이인데, 남편과 우리 큰 오빠와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어릴 때 부터 오빠는 나를 "내 동생, 우리 막내, 공주!" 이렇게 불렀다. 아직도 나를 만나면 "공주야!" 부르면 마흔도 크게 훌쩍 넘은 나는 정말 오만상을 찌뿌리며 "제발, 오빠야." 하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오빠는 내 결혼식에서도 우리 엄마보다 더 많이 우는 울보 오빠였다. 눈이 벌겋게 퉁퉁 부운 채, 못 보낼 곳에 동생을 보내는 것처럼. 그러니 오빠의 막내 동생이 낳은 초록이와 봄이는 오빠에겐 자식처럼 아끼는 존재일 것이다.  




오랫동안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낸 세월. 아이들은 늘 내가 데리고 다녔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치는 일도 지치는 순간도 있있었지만, 아이들이 내게 큰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보내는 동안 아이들도 금새 자랐다.

나는 늘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애썼지만 간절한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 한 가지가 해결 방법이 있기는 했다. 아이들을 셋, 넷 다둥이 맘이 되었다면 다자녀를 낳은 공으로 벌써 나라에서 남편 곁으로 보내줬을 테지.


초록이가 예비 중학생이 될 무렵, 나는 관사에서 중학생 아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니, 아들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나마 방 두 칸이 딸린 가족 관사이긴 했지만 작기도 작고 학교 안에 있는 관사이니 교복을 입은 사춘기 아들이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다.


우리는 결국 헤어질 결심을 했다. 

언젠가 나는 전출이 되어 갈 가능성이 있으니 중학생이 되는 아들을 남편에게 먼저 보내기로. 딸과 관사에 남아있다가 언젠가 전출이 되면 가기로 하였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나와 애착이 강했던 아들에게 밑작업을 많이 했다.

"초록이가 중학생이 되면 여기는 관사 안에서 다녀야 하는데 괜찮겠어? 안그래도 우리 초록이가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중학교 다니다가 전학을 가면 네가 힘들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래도 엄마와 있겠다고 얘기하더니, 하도 이야기를 해서인지 아빠와 살던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함께 있어도 걱정 보내도 걱정. 아이들 보내는 애미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군대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것도 아니였지만, 함께 살지 못하고 주말에만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게 내겐 가혹한 상황으로 느껴졌다.

"초록이도 이제 컸고, 그러면서 더 성장하게 되는 거야."

남편은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요즘 사춘기 시작이라 마찰도 잦고, 부대낌이 많으니 오히려 좋지 않겠냐고. 그럼에도 아들과 헤어질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려서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초록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로 며칠 밤을 보냈다. 옳은 결정일까?

'미안해, 아가. 엄마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엄마 때문에 늘 네가 상처받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발령지를 옮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옮겨다니며 힘들었던 적도 많은데, 이번엔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하다니. 흐흑 으어엉.'


지금 내 상황을 보여주고 용하다는 점집을 가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잘하는 거 맞냐고? 이게 최선이냐고. 아들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거냐고. 어찌 삶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일까. 누군가 탁! 하고 결정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정말 모르겠어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숲 속에서 일어나지도 않을 무수한 일들을 떠올리며 한숨만 늘어가면 그만 '정말, 모르겠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만다.



아직도 결단의 순간을 떠올리면 초록이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만 가득 차오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건 맞지만 엄마랑 헤어져서 갖게 될 허전함을 주게 되어서. 엄마로서 해주어야 하는 것들을 챙겨주지 못할 것이기에.

무엇보다 내 아이 일상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 아파도 당장 달려갈 수 없다는 물리적 거리에 대한 간절함들이 가슴부터 뜨거운 눈물이 끓어올랐다. 그럼에도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 


큰 오빠도 나처럼 초록이가 겪을 아픔과 나의 마음이 느껴져서인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다른 방법은 없겠냐고 나를 설득하려 한 것이었다. 아무리 아빠가 잘해줘도 엄마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겠냐고.

아이는 할말이 많은 듯했지만, 마음을 다 표현하는 아이가 아니기에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듯했다.

서로 그러기로 결정해두고도 초록이에게 자꾸만 물어보았다. 아들도 이미 받아들였지만 오히려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학교도 잘 다니고 아빠랑 잘 지내겠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큰오빠 전화에 한번 크게 흔들리고 속앓이를 하다가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아들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살을 떼어내듯 가슴찢어지는 고통을 참아야했지만.


미리 교복을 맞춰서 찾아온 날. 아들이 첫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게 왜 그리 슬펐을까. 교복을 다림질하며 나는 또 무너지고 말았다. 줄곧 끼고 살다가 내 품을 떠나 보내려니, 가슴이 뻥 뚫린 듯 허전하기만 했다. 남편이 있음에도 왜이리 아들이 짠하고 안쓰러웠을까. 여전히 아들은 내게 아가처럼 남아있다. 아들이 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한밤 중 잠든 아가 손을 잡는다.

"사랑해, 아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남편과 아들, 두 남자.

나와 딸, 두 여자.

우리 그렇게 이산가족이 되어 딴집 살림이 시작되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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