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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Feb 15. 2024

방문에 구멍을 뚫다

소통창인가, 감시창인가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하교 시간이 되면 우르르 사라진다. 우리 아이들은 주택단지나 아파트 단지로 스쿨버스를 타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관사로 돌아온다. 그러다보니, 학원을 다니지 않거나, 걸어서 다니는 몇 아이들만 운동장에 남는다.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엄마의 눈에는 가끔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마음이 맞아 함께 어울리고 논다기보다, 그곳에 있어 함께 놀게 되는 것이니. 그나마 남아있는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기에 위안을 받는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교실까지 들렸다가 잠잠해지기도 한다. 때론 다투는 소리, 우는 소리가 나면 일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저 멀리 들리는 아이들 소리에 귀를 갖다 대기도 한다.

  

"엄마, 빨리빨리 와보세요!"

"왜, 무슨 일이야?"

"같이 놀다가 삐져서 집에 들어갔는데 방문도 잠겨 있고 1시간도 넘었는데 봄이가 안 나와요."

"방에서 혼자 놀겠지."

"아니에요. 대답도 없고 아무 소리도 안 나요."

초록이는 뭔가 걱정이 된 듯 빨리 오라고 교실로 찾아왔다. 이럴  집이 가까이 있어 급한 상황에 달려갈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동시에 안 좋은 점도 있다. 아무리 집이 학교 안에 있다지만 안 봐도 될 일, 참견 안해도 될 일에 자꾸 개입하게 된다.


"쿵쿵쿵! 봄아, 문 열어봐."


처음엔 가볍게 여겼다. 방으로 통하는 베란다 창도 잠겨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초록이랑 동네 남자 아이들이랑 놀다가 여자 아이가 혼자다 보니, 다 같이 놀리기도 하고 오빠인 초록이도 봄이 편을 들어주지 않고 같이 놀려댔던 모양이다. 급기야 봄이는 울면서 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봄아, 엄마야. 대답해 봐. 오빠가 봄이한테 정말 미안하대."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방 안에 귀를 기울여봐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문 잠가두고 다른 데로 나갔나? 더운데 놀다가 들어와서 잠이 들었나? 이 정도로 소리치면 일어나서 열어줄 만도 한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괜히 불안해졌다.


그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에이, 기다려보자.'라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다. 이렇게 부르는데 열어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관사에는 열쇠도 없었고, 핀으로 구멍을 쑤셔보아도, 문틈으로 카드가 들어갈 공간도 없었다. 마음이 급하니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남편은 공구로 방문 손잡이를 내리쳐서 열어보라고 했다. 결국 나는 펜치와 망치로 문 손잡이를 부수고 말았다.


방문 손잡이는 철커덕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나무 문 손잡이에는 공구가 내리친 흔적으로 가시 돋듯 거칠게 민낯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거기엔 봄이가 없었다. 나랑 초록이는 마주 보고 너무 놀라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붙박이장 문을 열었는데, 봄이가 이불 더위 위에서 곤히 잠들어있었다. 옷이 흠뻑 젖은 채로.

"봄아!"

나는 봄이를 흔들어 깨웠다.

봄이는 잠에서 깬 얼굴로 나를 개슴츠레 쳐다보았다.

"엄마!"

나는 무슨 상상을 하며 이 난리를 부린 걸까? 하지만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덥지도 않았을까? 그 답답한 공간에서 잠이 들었다니. 너무 곤히 잠들었던 모양이다. 처음엔 자기도 그렇게 잘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삐져서 오빠가 따라와 자기가 화난 것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인데 찾으러 온 사이에 그냥 깜빡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자고 나니 화난 마음도 이미 날아가버리고. 그건 다행이지만.

이렇게 종종 엄마 심장을 뛰게 만드는 녀석들.


그 이후로 그 구멍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문을 걸고 들어가면 왠지 속 터지는 엄마 속. 구멍을 통해 훤히 볼 수 있었다. 문도 잠글 수가 없으니 문 쾅 닫고 들어가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아이와 문 열지 않고도 말하는 소통창이 되어주었다.

"뭐 먹을래?"

메뉴도 물어보고,

"게임 그만해라."

잔소리도 할 수 있었다. 시커먼 엄마의 속내. 아이들은 방문 손잡이 언제 고치냐고 물었지만 방문에 맞는 손잡이를 찾는 중이라는 말로 오래오래 시간을 끌었다.


초록이와 봄이에게  구멍은 어땠을까. 아이들에게 구멍은 쥐구멍 속에 들어간 쥐에게 고양이가 코를 킁킁대고 가까이 들여다보는 무서운 구멍은 아니었을까. 어떻게든 메꾸고 싶고 닫고 싶은 구멍.


열린 구멍 덕분에 나는 한동안 문틈으로 아이들이 문 밖에서, 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가끔 도촬이 가능했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지만 기꺼이 엄마의 몰카를 허락했다. 가끔 V자를 그리며 예쁘게 포즈도 취해주었으니. 엄마의 시선이 관심처럼 느껴지던 시절.

주말에 열리는 남매식당에서 둘이 쏙닥거리며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젠 바늘구멍도 뚫을 수 없다. 철통보안 스템으로 꼭꼭 잠겨있다. 노크를 하고 방문도 바로 열 수가 없다. 구멍으로 소통하던 그때가, 관사에서 아이들과 뒹굴던 사춘기 이전의 시대(思春期-선사시대)가 너무나 그립다.


봄이 방문에 철커덕 붙여진 경고장 비스무리 안내장

똑똑 노크하고 바로 문열었더니, 노크하는 의미가 뭐냐며 이면지로 뚝딱 만들어 방문에 붙인다.

노크도 잘못했다간 벌금형. 너무 가혹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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