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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Feb 09. 2024

아니 땐 관사에 연기 나랴

사고뭉치들:공동생활에서의 허용과 이해의 경계

"선생님, 어디 가세요?"

"관사 주변에 연기가 보여서요, 혹시나 한번 가보려고요."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복도에서 마주친 L선생님이 바쁜 걸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신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옆반 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처음엔 엄마 찾는 아이들 덕분에 쉬는 시간이 되면 100M 달리기로 관사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아이들도 집에 먹을 것이 충분하고 컴퓨터나 태블릿 등 화상수업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퇴근 시간까지는 거뜬히 잘 보내게 되었다.


오후 수업까지 마무리하고 교무실에 들렀더니 L선생님이 내게 다가오셨다.

"선생님, 이따가 퇴근하시면서 놀라지 말고 들어가세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연기 나서 가보니까 선생님 집에서 나는 연기더라고요!"

순간 아득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주변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각자 집에 냄비를 올려두었나 확인하려고 다녀가시는 사이, 나는 아무 전달도 받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L선생님께 대략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천장 위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자욱했다. 아이들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봄이는 전자레인지에 돌려쓰는 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오래 돌리면 어떻게 되나 궁금했단다. 그래서 1시간을 넘게 돌렸다는 것이다. 거실에서 돌려놓고는 잊어버리고 방에서 놀다가 이상한 냄새 때문에 나가본 것이다. 그 사이 팥이 가득 담긴 찜질팩은 구수하게 익혀졌다가 너무 긴 시간 동안 구워졌다가 타버렸을 것이었다. 들으면서 타버린 찜질팩처럼 내 속도 타는 듯했다.


그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이미 발견했을 때는 연기가 가득 차서 나름대로 창문도 열고 환기를 시키려는 사이 연기로 발각된 것. 엄마에게 혼날까 봐 완전 범죄를 꿈꿨지만 선생님께 전해 듣고 기가 막혔다.


아이들도 놀랐던지 방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방석을 휘두르며 연기를 빼느라 진땀을 뺀 모양이다. 엄마가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으니 걱정할까 봐 연락을 못했단다. 


여러 선생님들이 다녀간 사이, 아이들은 혼나는 대신 괜찮냐는 걱정의 말을 들었지만 마음으로 혼쭐이 난 듯했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차차. L선생님이 관사에서 연기가 난다고 했을 때 나는 왜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불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매캐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전자레인지는 아무리 해도 탄 냄새가 빠지지 않아 버려야 했고 몇 날 며칠을 구수하면서도 시큼한 탄내를 안고 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가깝다는 사실에, 내 일처럼 달려와 창문과 문도 열어주시고 아이들을 살펴봐주신 분들이 계시기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 둘이 있는데 불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상상만 해도 간이 쫄깃해진다.


냄새는 건물 전체를 휩싸 안았지만, 선생님 중 어느 한 분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죄송해요. 냄새가 많이 나죠?"

그래도 다들 괜찮다고 하셨다.

 "어쩐지 냄새가 구수하더라고요."라는 말씀을 하신 선생님 말고는 아무 냄새 못 맡았단다.

"우린 괜찮아요. 불이 안 나서 다행이에요."


건물에서 연기를 발견하고 뛰어가셨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이 내가 없는 사이에도 좋은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전자레인지는 돌아가셨지만 큰 사고 없이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함 말고는 어찌 표현하리. 곁에 내 일처럼 내 아이처럼 염려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울타리 없는 관사에 보이지 않는 보안시스템이 있는 듯 든든하다.

아이들은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도 덤으로 얻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엄마에게 제일 먼저 알려야 한다는 것도.


관사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겼지만, 별 탈 없이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소한 일을 통해서도 우리는 작은 교훈을 얻게 된다. 크고 작은 경험들은 살면서 이렇게 쓸 이야깃거리를 남기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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