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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Feb 02. 2024

눈치 없는 남자, 눈칫밥 먹는 여자

학교에 텐트 치는 남자

주말마다 피곤에 쪄든 얼굴로 나타나던 이 남자, 달라졌다.


"밥 먹고 아빠랑 운장장으로 야구하러 갈까?"

금요일밤 집으로 돌아온 이 남자, 저녁도 먹기 전에 놀 생각이다.


"안 피곤해?"

아이들과 야구 방망이를 들고나가면서 웃음으로 대신한다.

 

'간이 피곤한 남자 맞아?'

 물론 다음 날 아침이면 꿈길을 헤매듯 이불속을 오래 지킬 것이겠지만.


그에게 딱 맞는 숨통,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오자마자 창을 활짝 열어 젖힌다.

나는 닫기 바쁘다.


관사를 드나드는 선생님들과 주말에도 남아있는 솔로 선생님들, 혹여나 지나갈지 모를 학부모들, 매일 학교에서 만나는 우리 학교 꼬맹이들, 누군지 모를 동네 사람들. 그들에게 오며 가며 우리네 살림살이가 보일까 봐 창문을 닫는다. 창을 통해 너저분하게 걸린 옷가지가 보일까 봐, 지나가다 화장실 갔다가 나오다가 눈을 마주칠까 봐 블라인드를 내린다.


어느 새 그는 열면 히 보일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연신 '아 좋다, 좋다'를 외친다.

"답답하게 문을 왜 자꾸 닫아?"


나에겐 생활공간이자 직장인데

그에겐 쉼터이자 캠핑장이다.


관사 건물 앞엔 낭만스럽게도 잔디가 깔려있었다. 남서향이라 아침부터 작은 방 베란다 창을 지나 벽을 타고 거실 창까지 빛도 오래오래 머물다 간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면 창에 붙어있는 식탁까지 환해진다.


햇살에 못 이겨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게 만들거나, 찻물이라도 데워서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어 진다. 기지개를 켜고 고양이 같이 남편은 햇살을 즐긴다. 모자도 안 쓰고 선크림도 잘 안 바르는 남자가 내 남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깨알같이 주근깨가 눈가에 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한 잔 타 들고 창밖으로 나간다. 뭐 하나 보니, 창틀에 마시다 만 커피를 올려놓고 텐트를 치신다.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갖다 두고 독서를 즐기시더니 텐트 날개를 활짝 열어놓고 낮잠을 주무신다.


펜스 하나 없는 관사. 학교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관사에 텐트를 치다니. 사람들이 운동하러 지나다니는 곳에, 가끔은 차를 세우러 오는 그곳에.

pixabay

가끔 부담스러우면서도 나도 같이 즐기기도 한다. 얼굴이 조금은 두꺼워진 이유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왠지 부끄럽고 신경 쓰인다. 얼핏 보면 다 초월한 얼굴로 편안해 보이지만 교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학교 선생님이 운동복에 덜 빗은 머리를 한 채,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부모를 만난다고 상상해 보라. 사실 좀 많이 편치 않은 마음 상태가 된다.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병처럼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특히, 학교 안에서 그 주변 생활권에서 예민하게 걸리는 마음이 늘 생긴다.


가끔 학부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당황함을 감추고 어색한 미소와 목례로 화답한다.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을 더한 상태. 이것이 이도저도 못하는 내 모습이다.


부끄러운 짓 하지 않았고 이런 나의 모습도 내 모습이다. 교실에 반듯이 서있는 나만 내가 아니다. 내가 자연스러우면 상대방도 자연스럽다. 최면하듯 그 순간을 넘기면 사실 별것이 아니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 남편이 텐트를 치기 시작했을 때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지나다니는 사람들 보면 좀 그렇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런 마음으로 가족과 관사에 어떻게 살아?"라는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주 조금. 아마 아주 조금이었던 것 같다. 소심하게도. 눈치 보는 여자를 부끄럽게 만든 이 남자. 조금씩 나를 내려놓으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보니 다른 분들에게 피해드릴 일 없고 선생님들과 주말에 텐트 치고 아이들과 보낸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지지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있다. 가끔 우리가 텐트에서 아이들과 음식을 즐길 때 우연히 지나던 낯익은 손님(?)과 나눠먹을 때 기쁨이 배가 되는 것을 느끼며 이것이 삶의 재미임을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과 나. 우린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매일매일 관사에서도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기에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일상들에는 시끄러운 나의 민낯이 또 펼쳐진다. 우아하게 아이들을 대할 없는 시간이 훨씬 길지 않은가. 어제 기어이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뱉어낸 내 날카로운 말투와 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하고. 자기 전에 아이와 서로 사과를 하며 '미안해, 사랑해'를 반복하는 일상.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고, 때론 미처 추스르지 못한 감정이 묻은 격양된 목소리가 울러 퍼져 부끄러운 내 공간. 그는 이해할까? 아이들 단도리하기도 쉽지 않은데 남편까지...


내 일상이 벗겨지기 싫었다. 소리치는 내 소리가 새 나갈까 봐. 내 민낯이 부끄러워 창을 꽁꽁 닫았다.

쿨한 척 문을 열면, 좋네 맞장구를 치고 다시 춥다, 벌레 들어올라 온갖 핑계를 치며 나를 위한 막을 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절대 막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잠깐, 아이고 숨차라 글이 길어서 다음 이야기는 쉬었다 갈게요!


다음 편은 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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