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탈출

제발 (글) 똥 좀 잘 누게 해 줘.

by 빛방울

똥 잘 누게 하는 변비약처럼 글똥 잘 누는 처방은 뭔가요?

학교에서 아이들과 글똥 누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생각을 하나씩 꺼내어 똥 누듯이 글을 쓴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글은 힘주지 않아도 참신하고 기발하다. 그냥 썼는데 진솔하고 꾸밈이 없다. 틀린 글자조차도 귀엽고 순수하다. 고쳐주고 싶지 않다.


나에겐 변비약이 필요해. 똥을 잘 싸고 싶거든. 사실 나는 변비는 없다. 하지만 힘을 주어야 나오는 글똥을 죽을똥 말똥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싸는 중이다. 이러다가 고질병이 될까 봐 두렵다.


똥 잘 싸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황금똥 같은 똥을 누는 사람.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살면 당연히 얻게 되는 결과.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겠지.

다른 사람의 똥과 내 똥을 비교해보지 않았지만 내가 그쪽 계통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나의 초록이와 봄이 아가였을 때는 황금똥이었던 것 같다. 건강한 음식으로 가려먹은 엄마 젖을 먹었으니 똥도 그럴 만도 하다. 어른이 된 후, 다시 황금똥을 눈 적이 있었을까?

결혼 전 7-8년 동안 비건 시절 그때 나는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 한 번 눈여겨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내 똥빛깔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깨끗한 음식을 먹었기에 내가 이야기하는 황금똥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힘을 주지 않아도 길고도 때깔 좋은 똥이 원 그리듯 나온다. (자꾸 똥얘기라니 더러운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읽는 분들에게 똥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똥 누듯 써보겠습니다. )


글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내가 좋은 생각을 하고 세상에 놓인 수많은 사물들, 자연, 사람들을 내 안에 넣었다가 나온 것이 어떤 것으로 만들어질까.


내가 고약한 냄새나는 음식을 먹으면 내 똥도 고약하겠지만, 내가 좋은 집을 갖고 있어서 내 안에 품었다가 나온 모든 세상은 좋은 에너지를 담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글은 누군가를 이롭게 글이 될 것이다. 내가 홍익인간은 아니지만 홍익인간의 후손이 아닌가!


사람들이 내가 쓴 글로 생각에 변화가 생기고 그 힘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거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 아직은 쥐어짜고, 움켜쥐고 힘을 주어야 써지는 글을 힘주지 않아도 길게 길게 쑥쑥 뽑아내는 국수처럼 맛깔나게 뽑아내고 싶다. 모든 일의 공통점음 힘을 빼어야 하는 것 같다.


국수를 뽑는 기계에서 국수는 잘도 나오지만, 국수를 뽑기 위해 그만큼의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단, 힘을 주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힘을 주는지가 관건이다.

악착같이 살다 보면 오히려 거기에 힘을 쥐어짜느라 놓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플루트를 처음 배우던 날, 담 걸리듯 어깨가 결리고 손가락이 부러질 듯 아팠다. 새끼손가락에 힘을 준 탓인지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덜덜 떨려왔다. 처음엔 왜 그렇게 아픈가 했더니, 처음 접한 악기에 힘을 주어 소리를 불어넣고 악기가 떨어질 거 같아 온 힘을 주어 들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 학교]에서 할머니는 손녀와 요리를 함께 하며 손녀에게 힘을 빼라는 말씀을 하신다고 했다.


내게 변비약을 처방한다. '빛방울, 힘을 빼. 힘 빼고 써.'

오늘 글은 줄줄 잘 나오려나.

사실 힘을 뺄 수 있다는 것도 실력이라서 아직은 힘주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질까 봐 손잡이를 꽉 움켜쥐듯, 악기를 배울 때 어깨에 힘을 주듯,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순간에 힘을 주는 순간들을 통해 그런 힘주는 시간이 지나면 힘 빼고도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오늘도 잔뜩 힘을 주고는 글을 쓰다가 상상해 본다. 생각의 줄기를 잡고 술술 내 안에 담긴 것을 뽑아내는 상상을! '변비 끝! 아, 시원해.' 하고 가볍게 물 내리듯 한 편의 글을 촤르륵 써 내리고는 편안하게 발 뻗고 잠을 자는 상상.


사진 pixabay


글을 쓸 때 생각하느라 이마에 칼주름을 세우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손가락에 고스란히 전한다.

고뇌에 차서 고군분투 애쓰는 나에게 글쓰기 변비 처방을 내려본다. 그저 써보렴. 일단 100편부터 써보고!




글이 끝난 줄 알았겠지만 글을 마무리하며 생각나는 글이 있어서 덧붙여 보려고 한다.


'김용택 선생님의 창의적인 글쓰기 책'에 글 한편이 생각난다. 책 속에서 글을 쓰는 학생이 이젠 나 같아서 정말 너무 공감이 되어서 한 편 소개한다.

뭘 써요, 뭘 쓰라고요?

시 써라
뭘 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 써내라고!
네.
제목을 뭘 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니 맘대로 쓰라고
뭘 쓰라고요?
한 번만 더하면 죽는다.


아이들에게도 글을 쓰라고 하면 쓸 게 없다고 내내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질문을 하며 아이의 생각을 따라 말을 꺼내게 하면 그걸 글로 써보라고 얘기도 해주고 받아 적어준다. 그렇게 글쓰기가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김용택 시인은 제자와 티키타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는 결국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런 글을 썼다.


아래의 글도 책에 나오는 저자의 말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볼까 하고 고민하는 생각들로 글로 정리하는 일입니다. 글을 쓰게 되면 자기가 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기가 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게 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게 되면 고민이 생기고 생각이 많아지겠지요. 그 생각을 정리하닥 보면 자기가 하는 일을 더 잘 알게 될 뿐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생각을 키우고 넓히고 정리해서 세상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어주는 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일들이 처음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걸어갈 길을 스스로 내는 일, 그게 글쓰기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말대로 어느 순간 내 삶의 이야기를 글로 적다 보면 나를 들여다보게 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내공이 쌓여 세상에 귀한 이야기를 담은 글들이 탄생가게 되는 거겠지. 처음엔 글똥 못 눈다고 낑낑 대겠지만 한 글, 두 글 쓰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길이 생기고 나다운 글들을 누게 되겠지 하고 오늘도 힘주며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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