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서 김장한 사람은 손!"
지나가다 걸린 고무장갑이 손을 든다.
할 일을 마치고 겨울을 준비한 저들이 너무 여유로워 보인다. 김장을 끝내고 뜨끈한 수육까지 삶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저들의 가벼운 손을 보아라. 고춧가루로 발갛게 물들었지만 마음만은 김치국물처럼 시원한 저들만의 여유.
저 가벼운 하릴없는 손들의 춤사위를 보며
할 일이 남아있는 듯 내 마음은 무겁다.
"김장 언제 할 거니?"
'왜 나에게 물어보시지?'
점점 은근슬쩍 선택권을 내게 넘기시는 어머님.
올해 친정에서는 엄마랑 아빠 두 분이서 김장을 다 하셨단다. 여행길에 인심 좋은 밭주인을 만나 한가득 싣고 오셨다는 엄마. 힘든 줄도 모르고 배추를 차에 실어 왔다는 신나는 엄마의 목소리.
무릎 관절도 안 좋고 엄지손가락도 아픈 엄마는 아빠와 '쉬엄쉬엄' 절구어서 김장을 하신단다. 말이 쉬엄쉬엄이지 김장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안다. 딸냄이 걱정할까 봐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씀하시는 엄마.
엄마는 한 번도 새언니를 부른 적이 없다. 하물며 딸냄이를 부른 적도 없다. 김장이 끝날 시간에 김치를 가지러 오라고 하거나 수육 삶아 놨으니 먹으러 오라는 말씀은 하셨다. 일하고 힘든 딸에게 그 어떤 것도 시키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 난 두 노인네가 그렇게 배추 숨을 죽이고 다리를 절뚝이며 끙차하며 배추를 뒤집는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이 아프다.
"엄마, 힘든데 자꾸 그러지 말고 그냥, 사 드셔!"
"1년 가족들이 먹는 걸 사 먹니? 해서 먹으면 건강도 좋지, 적은 돈으로도 얼마나 푸짐하니 맛있게 먹는데."
김장을 언제 하는지도 모르는 친정부모님의 김장날과 달리, 시댁의 김장날은 매년 뭔가 분주하다. 물론 김치를 하기 위해 어머님은 미리 서울에 있는 전통 시장을 왔다가 갔다 하며 장을 보시고 새우젓도 사 오시고 굴이며 고기며 무며 쑥갓이며 김장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사러 다녀오시긴 한다. 부지런히 김장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기도 하시고 힘드겠지. 그 수고로움을 모르는 건 아니다.
친정에서는 항상 언제 했는지도 모르게 김장을 하시는데,
어머님은 A 마트 가니까 무가 얼마고 C마트 보다 500원이 싸더라. 고기는 경동시장이 제일 좋더라. 힘들어도 거기서 사야지. 여기저기 가서 사 나르느라 아이고 바쁘다, 바빠. 들고 왔더니 아이고 다리야, 팔이야. 뭐 하나 하려면 그냥 얼마나 바쁜지 몰라. 블라블라블라. 이건 얼마고 어디서 얼마 주고 사고 사람들은 어떻고 등등등 나는 그런 말들이 너무 듣기 싫다.
나를 붙들고 전화기로 어머님의 큰 목소리가 들려오면 의식적으로 수화기를 저 멀리 떨어뜨린다.
아, 또 시작!
너무 나쁜 며느리인가? 너무 눈치 없는 시어머니인가?
적당히 '예예' 하고 끊고는 저 깊은 데서 짜증이 확 올라온다. 한 번이 아니니까. 매년 뭔가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들이니까 내 속에 끈적이는 짜증 덩어리는 오래 묵혀진 것들이 쌓이고 굳어졌다가 새로운 것들이 얹어져서 버무려진 그런 감정들이다. 고작 그런 말들로 내 속이 끓는다면 뭐, 나쁜 며느리년이지.
우리 집에서 나는 귀하고 귀한 막내딸, 세상 귀한 딸인데. 어찌 나는 시댁만 가면 갑자기 신분이 바뀌는 기분일까? 친정 엄마한테 매년 물어본다.
"엄마 김치 먹고 싶어. 김장할 때 미리 얘기해. 엄마도 볼 겸 내가 도와주러 갈게. 얘기해!"
"직장 생활도 하고 애도 키우고 힘들어. 주말엔 좀 쉬어야지. 주말에 먼 길 왔다 갔다 좀 힘드니? 엄마가 갖다 줄게. 아니면 택배로 부쳐줄게. 정 그러고 싶으면 진서방(가명이므로 성은 계속 바뀔지도 모를 예정)이랑 같이 와서 해놓은 김치랑 수육 삶아서 먹고 가든가."
어머님은 우리 엄마와 결이 다르다.
'너는 며느리이니까 내가 하는 거 잘 봐놨다가 나없을 때 해 먹으려무나. 내 없으면 너 할 줄이나 알겠니? 김치 하는데 네가 당연히 와야지. 암만 며느리니까.'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김장 언제 할 거니?"라는 말속에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며느리라서 들게 하는 생각들. 시월드라서 괜한 서러움이 몰려오는 곳.
사실 나는 어머님 김치를 너무 사랑한다. 우리 친정엄마 김치보다 더 시원하고 1년 내내 시지도 않고 적당히 익혀 먹으면 1년 내내 아삭아삭 시원하니 달큼하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어머님 김치를 사랑하는 며느리이지만 어머님께 사랑한다고 말은 못 할 거 같다.
나는 다만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기다려질 뿐이다. 행사할 때마다 한 번도 못한다, 못 간다, 안 한다 한 적 없다. 먼 길 주말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별일이 없다면 늘 참석한다. 어머님이 먼저 힘든데 오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하마.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하는데 요즘은 어떠니? 힘들지? 이제 김장을 좀 해야 하는데 언제가 좀 편하겠니?"
그냥 좀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을 좀 표현해 주면 어디가 덧나실까?
왜 며느리가 하는 일은 당연한 걸까? 우리 엄마는 사위에게 새언니에게 얼마나 귀한 대접을 해주시는데.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인데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까?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큰 오빠는 집안에 아들이라고 안 시키고 막냇동생은 아직 어리다고 안 시키고 손이 야무진 첫째 딸을 농사며 집안일이며 다 하게 하셨단다. 벗어나고 싶어서 시집을 갔는데 남편은 삼대독자라 '오야 오야' 큰 탓에 어려운 일은 다 어머니 몫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하며 즐기며 사시는 분이셨으니 그 속이 오죽했으랴. 어머님은 귀한 집 아들의 며느리일 뿐 시어머니한테도 사랑하나 받지 못한 채 구박받고 자식들 키우느라 돈 버느라 버거운 삶을 살아오셨으니 그 인생이 거칠기도 하셨겠지. 살가운 말 한마디 잘 못하시는 어머님의 삶도 여자로서 딱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늘 친정엄마는 "어르신한테 잘해드려라.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잘해드려." 타이르듯 말씀해 주시고 그것이 내가 복 받는 거라고 시댁에서 못 받은 사랑은 남편에게 받고 있지 않냐며, 그래도 모자란 사랑은 엄마가 다 주겠다고 하신다. 나는 이미 엄마에게 차고도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랑에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중이니까.
나는 그 말이 이래저래 너무 아파서 울었다. 시댁 복도 없지. 내 팔자가 이게 뭐냐 싶어서 울었고 엄마의 말에 위로가 되어서 울었고, 그런 삶을 살아온 어머님이 가여워서 울었다.
늘 불쑥불쑥 찾아오는 나의 심통, 억울함은 또 언제든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의 삶도 팍팍했을 터 나까지 그러지 말자. 가여운 한 여인의 삶에 나까지 얹지 말자. 복 받으셨네. 나 같은 며느리를 만나 이런 이해를 받으며 사시는 어머님은 다행이지 않냐고 속으로 외쳐보면서.
"11월 25일에 김장할까?"
"아,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요. 그날 하시고 싶으시면 저 없이 하시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11월의 1,2기 슬초브런치 작가 모임을 떠올리며 행복한 마음을 담아내며 한발 뒤로 물러난다.
"어머님, 제가 11월엔 일 때문에 좀 바빠서요. 12월 9일 날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좀 순한 맛으로 아주 평범하게 말해본다. 나는 착한 며느라기니까. 당신의 삶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내 일에 집중하는 직장인으로서 내 아이들의 엄마로서 나의 삶을 맛있게 만들어가며 즐길 줄 아는 작가니까.
김장을 끝내고 나면 나도 저 나무에 붉게 물든 고무장갑을 걸어놓고 함께 춤을 추고 싶다.
김장한 사람, 손! 저요 저요! 신나게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