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모임을 하고, 늦은 오후가 되었지만 집으로 가는 대신 친정으로 차를 돌렸다. 다음 날이 출근날이긴 했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네비를 켰다. 엄마에게 간다고 이야기하면 그 사이 엄마는 분주한 마음으로 뭔가를 준비할 테니 아무런 연락 없이 향했다.
혹시나 하여 집에 다 와서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응, 김 선생!"
"아빠, 엄마 전화를 왜 아빠가 받은셩?"
"엄마는 전화기 두고 운동 가셨지."
나는 주차를 하고 엄마가 돌아오실 길로 마중을 나갔다. 못 만날 수도 있지만 밖에서 만나면 더 반갑지 않을까? 마침, 엄마는 모자를 쓰고 방한 마스크에 무장을 하신 상태였지만 한눈에 알아보고 다가갔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인지 앞을 막는 나를 피해 옆으로 비켜 걸으시려던 참이었다.
"엄마!"
"어머, 어머 네가 왜 여깄니?"
엄마랑 집으로 가는 길에 손을 잡고 걸었다.
"방울아, 아부지가 1월까지만 일하신대."
"그래? 잘 됐네. 그동안 진짜 고생하셨지."
"근데 아버지가 걱정도 많으시고 기운이 없으시네."
오랫동안 일을 하시다가 이제 멈춰야 하는 시간. 더 오래전에 편안하게 쉬셔야 할 연세인데 내내 힘들게 일하시며 버티셨을지도 모른다. 평생 일만 하시면서 살아온 아부지.
"아부지, 이제 좋으시겠다. 축하드려요!"
"좋긴 뭘 좋아."
"아부지 퇴직 기념 파티해야겠네."
오빠는 날이 따뜻해지면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일하시느라 여행도 제대로 다녀보신 적이 없다. 여행을 가자고 하면 당신은 가지 않겠다고 한 적이 많다. 젊은 시절에는 일하시느라 가지 않으시고 나이가 드시니 어딘가로 떠나는 게 자식들 돈 쓰게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종종 가볍게 나들이 하시듯 떠나는 여행 말고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모시고 가야겠다.
일하다가 그만두셨을 때 아버지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이 없다고 내내 누워서 지내시거나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추운 겨울이라 자전거도 못타시니 집에서라도 심심하지 않게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부지, 아침에 운동 삼아 걸어서 도서관 다녀오셔. 가서 신문도 보시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요."
"아부지 허리 아프시니까 정성근 채널이랑 책 한번 봐요."
나는 아버지의 대답도 듣기 전에 내내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버지도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예전 같으면, "됐어, 아부지가 알아서 할게." 하실지도 모르는데 딸냄이가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눈치다.
"참, 아부지 딸냄이한테 매일 글 써서 보내주시고요."
"내가 쓴 낙서 갖고 뭐할라 하는데?"
사람들한테 아버지가 쓴 글을 보여줬다는 이야기에 눈빛이 달라지신다.
"글을 쓰는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걸 알았어요. 할아버지 이야기, 아버지의 할머니 이야기나 아버지 생각이 들어있는 글 읽으면서 재밌어요. 아버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서 좋아."
어쩌면 가족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가족으로 묶인 끈으로 그저 바라보고 응원하고 보듬어 주는 관계이지만 사회에서 각자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는지 실제로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아버지의 글을 통해 짧은 글 속에 담긴 아버지의 인생을 그려보고 헤아려 보면서 아버지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글도 모두 한계가 있지만 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무뚝뚝하게 흘러가는 대화가 아닌 아버지의 글을 통해 내내 더 알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글 좀 주세요!" 하는 딸의 요청이 아버지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카톡에 써 놓은 글을 몇 편 읽어주신다. 그런 아버지의 음성을 영상으로 담아 온다. 그렇게 전송된 아버지의 소중한 글을 이곳에 담아본다. 더듬더듬 어루만지면서 아버지를 그려간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글을 쓰다가 정거장을 놓진 아버지의 사연에 웃음이 나고, 점점 무료해지는 일상 속에서 소일거리를 찾아 집안일을 하고 차를 마시고, 가벼운 운동과 좋은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