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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28. 2024

인간이란

아버지 글에서 발견한 것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도덕과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한계 사이. 인간의 순간적 살인 범죄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부모 형제까지도 죄의식 없이 살인하는 인간의 본성을 분간하기 어렵다.


높은 산 만년설에 비행기가 추락하여 훗날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3개월 간 생명을 유지하였는데 인육을 먹었다고 하여 도덕적인 찬반론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도 있고 절곡 하여 굶어 죽는 자도 있다. 반면 역사서에 보면 중죄를 지은 자를 가마솥에 넣어 불을 때니 처음에는 아들을 어깨 위에 메고 있다가 솥에 열이 나니 자식을 깔고 앉아 버티니 감독이 자식은 구해주고 애비는 죽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107호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촌수는 똥촌수가 먼저 안다고 했다. 힘이 모자라 마음대로 못하고, 그분의 자식을 생각하니 정이 더 멀어진다. 냄새난다고 문밖에서 얘기하고 가는 자식들, 고등 교육 최고 학부를 거칠수록 불효자식이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


'우리 엄마는 뼈다귀만 좋아하고, 살코기는 싫어한다'고 철없는 뉘 집 자식이 생각난다. 자기 힘이 소멸되고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되고 마는 셍명체. 먹고, 입고, 싸고, 자는 4가지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사람 인(人)은 서로 의지하며 도와주면서 살아가라는 뜻글자이다. 더불어 사느니, 봉사니 하는 말은 다 사람인자에서 나온 말이다. 人자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상식에서 법이 탄생하여 우리는 공존하며 살아간다. 가장 쉬운 말로 무 장사가 갈치 사 먹고, 갈치 장사 무 사 먹는 위치다.



1997 심우 철수 낙서




아버지의 낙서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


#첫번째 이야기

조선일보 신문 캡쳐 - 구조당신 사진
45년 전인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한 아마추어 럭비팀이 탄 전세기가 칠레와의 친선경기를 위해 안데스 산맥을 넘다가 추락했다. 탑승자는 모두 45명이었다. 추락 직후 모두 12명이 사망했고,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의 깊은 산속에서 영하 34도의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산사태가 이어지면서 수일 내에 17명이 또 숨졌다. 필사적인 구조 노력에도 72일이 흘렀고, 결국 두 명의 생존 탑승객이 10일간의 사투 끝에 산을 넘어 칠레 쪽 마을에 도착하면서 일부 탑승자들의 생존이 알려져 최종적으로 16명이 살아날 수 있었다.

신문 일부 발췌


극한의 날씨에 나는 그곳에 가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산에 추락했고, 내 주변으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에게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45명 중 반 이상의 친구들을 잃었다. 그 슬픔이 나를 덮치기도 전에 나는 살아야만 했다. 기다리면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지금은 할 수가 없다. 극도의 추위 속에서 잠들면 안 되었다. 곁에 있는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온기를 서로 나누어야 했다. 살고 있었다. 살아남아 나의 가족들을 기필코 만나고 싶었다. 한 명씩 부상으로, 추위로 죽어가는 이들이 생길 때마다 희망의 불씨가 희미해지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다. 라디오에서 수색에 진전이 없자, 구조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 이상의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때, 의대생이었던 로베르토 카네사가 죽은 시체를 먹을 것을 제안했다. 내 친구들의 시체를 먹다니! 처음엔 부정하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괴로운 마음은 사치였다.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고가 난 지 72일 만에 극적으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우리를 비난하였다. 어떻게 사람의 시신을 먹느냐고.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신념보다 생존에 더 큰 힘을 실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들의 입장에서 나를 그곳에 보내고 나니, 그들이 직접 겪었던 아픔을 감히 느끼고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생존이 달린 일이기에 더더욱 그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그들에게는 아픈 기억이지만 그들의 경험을 결코 잊지 않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서로 도와주는 사이라고 한다. 함께 살아남은 '전우애'처럼 그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 속에서 하나로 뭉쳤던 그들의 절실했던 마음들 때문이리라.


아버지 덕분에 오래 전의 사건을 찾아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alive(얼라이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혹시나 궁금하다면 봐도 좋을 것 같다.



#두번째 이야기

팽형은 조선 시대 나라의 재물이나 백성의 제물을 탐한 탐관오리에게 가해진 형벌이라고 한다. 가마솥에 물을 삶아 사람을 집어넣었다가 뺀 후,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인데 정말로 끓는 물에 사람을 삶는 것이 아니라 가마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부터 죽은 사람 취급을 받는 명예형이라고 한다. 가족은 실제로 팽형을 당한 이의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밟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예를 중히 여겼으니, 사회적 사형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팽형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춘추전국시대나 진말 한 초의 혼란기 때까지만 해도 흔하게 사용된 형벌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처형의 형태가 아닌 끓는 온천 수에 넣는 고문으로 행해지기도 했고 몽골에서도 실시한 예가 있다. 영국에서는 리처드 루즈의 요리사가 로체스터 주교와 가족들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고 팽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팽형 - 나무위키



아버지가 쓰신 글에서 궁금한 마음이 일어서 관련된 내용에 자료를 찾게 되었다. 아버지가 흘리고 가신 말들에 담긴 뜻을 살펴보면 어찌됐든 인간은 혼자서는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흰머리에 뽀얀 피부를 가지셨던 107호 할머니는 나에게도 좋은 어른이셔서 기억에 남는다. 늘 인자하셨고 따뜻한 동네 할머니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끔 집으로 초대하셔서 차도 드시고 가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 뵙지 못했는데, 자녀들이 있어도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서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자식으로는 형편 었는 자녀들. 아버지는 그런 모습에 인간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되신 듯하다.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버지의 글로 보아 107호 할머니는 쓸쓸한 노년 시절을 보내시다가 마감하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키야 하고 가져야 할 도리가 있는데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바탕으로 아버지 말씀처럼 인, 의, 예, 지라는 덕목을 갖추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인 :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불쌍한 것을 가엽게 여겨 정을 나누는 마음

의 :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

예 :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겸손하여 남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하는 마음

지 :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아버지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버지는 글 끝에 당신의 글을 '낙서'라고 표현하셨는데 나에게는 낙서라고 하기에는 아까운 글들이다. 하마터면 버려지고 지워질 뻔한 낙서들. 아버지의 낙서를 야금야금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료를 찾으며 나에게 알찬 시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남겨진 브런치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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