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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Jan 16. 2024

바다가 아니라도 좋아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겨울 여행 1

겨울 여행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겨울 여행이란. 추운 날씨에 걷는 것은 힘들고, 어디를 가야 부모님이 고생하지 않으시고 편안한 여행이 될까?

엄마가 바다가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바다로 여행을 간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겨울 파도에 몸을 웅크리고, 파도처럼 거센 바람이 들이치는 바닷가. 바다의 낭만보다는 겨울바람에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결. 바다를 즐기지 못한 채 사진만 찍고 후다닥 카페로 들어가는 모습이 내 머릿속으로 펼쳐졌다.


부모님과 미리 날짜를 잡아두고 생각 끝에 엄마가 가고 싶다는 바다가 아닌 온천이 있는 대전으로 여행지를 틀었다. 남편을 두고 친정 부모님과 우리 아이 둘. 이런 조합으로는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다. 사실 조금 두려움이 있었다. 혼자 운전을 하면서 맛집을 고르고 여행 루트를 짜서 모시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몫했다.


또 다른 이유는 애초에 이 여행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못했다.

"딸냄이가 맨날 바빠서 같이 보낼 시간이 없네."

그전에는 이런 말씀 한번 안 하시던 엄마가 그런 말을 하시니까 마음이 너무 바빠지기 시작한 거다. 알고 있었지만 누가 뒤통수를 쳐서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기분으로. 내 살길이 바빠서 달리기 하다가 우리 부모님 나이 들어 가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나중에, 다음에, 내년에'라는 말로 미루다가 이렇게 시간이 가버렸음을 그때서야 알아챘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임을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었다.



부모님은 우리들과 보내는 시간, 그 자체로 행복하실 테지만 이왕 가는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들었던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좋아하셔야 하는데, 드시는 음식마다 부모님 입맛에 딱 맞아서 다음에 또 오자고 하실 정도면 좋겠는데. 그런 나만의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준비했다.  


사춘기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는 것은 맞는 걸까? 주객전도가 되어서 부모님이 오히려 사춘기 손주들 비위 맞추시느라, 눈치 보시느라 누구를 위한 여행이었던가를 의심하게 되지는 않을까? 떠나기 전부터 생각이 많았던 무거운 여행.

이 모든 걱정은 한 가닥씩 풀어지고 이내 다 날아가버렸다. 이른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아서 나의 잔소리로 시작되었지만 차를 탄 순간, 아이들의 노랫노리, 웃음소리로. 그 모습을 보며 같이 웃으시는 아부지, 엄니 모습으로. 그동안의 내 무거움이 무색할 정도로 가벼워졌다. 2시간 반이면 도착할 거리. 중간에 휴게소를 한 번 들러 꼬치하나 먹을 계획으로 갔는데 엄마의 요술 가방에서는 먹을 것이 끝도 없이 나온다. 새벽부터 구운 군밤, 찐만두, 떡, 김튀각, 깎은 과일, 직접 삶고 갈아 만든 두유, 아직도 가방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있을 듯하다.


"만두도 먹어봐."

"괜찮아요, 할머니. 먹으면 멀미할지도 몰라요."

"먹는 재미로 여행 가는 거야."

처음엔 안 먹는다던 아이들은 주는 대로 받아서 먹더니 엄마의 간식 가방은 금세 가벼워져버렸다. 운전하는 딸에겐 침향환을 시작으로 쏙쏙 깐 군밤 입으로 쏙, 만두 한 입, 커피 한 모금, 떡까지 쉴 새 없이 들어온다. '그만 먹을래.' 하면서도 내내 오물거리며 잘도 먹는다. 이미 배가 불러서 휴게소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

가는 길에 들른 <정안알밤휴게소>에는 이미 우리가 먹은 알밤이, 엄마가 미리 타 오신 커피가 있었기에 먹을 것이 1도 없었다. 아이들만 꼬치 하나씩 손에 들려서 휴게소를 빠져나왔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기 시작한 여행은 마음도 마음도 두둑허니 시작도 하기 전에 충만했다. 차 안에서 그 여행의 의미는 이미 채워진 듯했다. 먹는 걸로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엄마는 귀엽다며 웃으시고, 아부지는 그렇게 먹고도 또 먹는 아이들을 보며 잘 먹는 애들이 젤 예쁘다며 흐뭇해하신다.


나는 무엇을 걱정한 것일까? 부모님은 그저 이렇게 우리와 함께 나눌 시간을 바라셨던 거였구나. 가시고 싶다는 바다를 가지 못했다고 불평하실 이유가 없었던 거다. 무엇을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같이 마주 보고 웃으며 나눠먹는 그 순간을 원하셨던 거였다. 손주들이 크면서 자연스레 보여주는 일상을 함께 느끼고 가까이서 보고 싶으셨던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거창하게 여행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면서 부모님 모실 생각에 부담스러워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오신 부모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한 부모님과의 여행 이야기를 아끼고 아끼며 여행하는 동안 소중하게 기록하고 싶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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