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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Jan 16. 2024

겨울엔 온천이지

부모님과 함께하는 겨울 여행 2

작년 여름. 대전에서 딸과 함께 며칠 보낸 기억이 참 좋았다. 여름이었지만 온천 거리에서 족욕했던 기억이 좋았는데 그 기억 저장고 안에는 부모님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기억을 꺼내어 이렇게 부모님을 모시고 올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온천을 알아보다 보니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유성호텔온천이 2024년 3월이면 폐업을 한다고 하니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대전하면 떠오르는 것이 온천인데 대표적인 관광호텔이기도 하고 오래된 역사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곳에서 긴 세월 동안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단순히 건물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일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일을 잃는 거겠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에게도 이번 겨울 부모님과 온천에서의 추억을 하나 쌓고, 사라진 건물 뒤편으로 기억 속에만 남게 될 이야기가 되겠구나.   


부모님과 나, 그리고 아이들. 3대가 목욕을 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한 가족이란 생각이 든다. 3대가 함께 해서 받을 수 있는 목욕 바가지도 사은품으로 얻고, 바구니를 들고 모자처럼 쓰고 기념사진을 찍는 엄마 모습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난다.

 

온천물에 몸을 녹이니 뼛속까지 시원하게 저릿하다. 아이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이 맛!

'아, 시원하다!'

바다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 겨울엔 역시 온천이 진리였다. 목욕을 유난히 즐겨하시는 엄마의 만족도도 100% 성공이다.

셋이서 나란히 앉아서 딸은 내 등을, 나와 딸은 엄마의 등을 서로 밀어주며 3대만이 느낄 수 있는 등밀이 보시. 작은 부분이지만 다시 돌려드리는 기분 같은 거다. 그 숱한 시간을 엄마는 나를 정성껏 씻어주셨다. 이젠 예전 같지 않는 엄마의 팔힘에 모자란 부분을 우리가 채워드린다. 어린 딸이었던 내가, 그리고 그 어린 시절보다 더 커진 나의 딸이 작아진 엄마의 등을, 할머니의 등을 함께 밀어드린다. 아마도 동시에 어느새 자라 중학생이 된 손주가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고 있을 것이었다. 유난스러운 할아버지는 당신보다 덩치 손주를, 아프다고 엄살 부리는 손주를 밀어주고 계시겠지!


목욕이 끝나고 난 후,

약속이라도 한 듯 먹게 되는 바나나 우유. 우리는 온천 앞에서 바나나 우유를 들고 추억의 맛을 보태어 평소보다 몇 배나 맛있게 바나나 우유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다.

바나나 우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생을 구하는 오빠


다음 날 아침엔 빼놓을 수 없는 온천 족욕.

아이들이 잠든 사이. 약속된 아침 7시. 엄마와 나는 몰래 호텔을 빠져나와 온천길을 걸었다. 가방엔 수건 하나 챙겨 넣고 조용한 아침 거리를 걸었다. 밤에 느끼지 못했던 대전의 아침 풍경을 감상하며 엄마와 걷고 또 걸었다. 아침 찬 바람에 엄마 손을 마주 잡았다. 내 손은 차가웠고 엄마 손은 참 따뜻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듯 걸으시는 엄마의 발소리. 오랜 관절염으로 고생하셨는데도 아프다는 말씀 하나 없으시다.

"다리 안 아파?"

"아니. 딸이랑 걸으니까 너무 좋다, 야!"

"춥다, 엄마. 그만 걷고 우리 발 담글까?"


거리에서 길을 걷다가 온천수에 발을 담글 수 있다니. 갑자기 엄마랑 대전으로 이사를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랑 산책도 하고 길을 걷다가 지금처럼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상상. 그리고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 얼마나 을까? 엄마랑 가까이 살면 언제든지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아이들도 언제든지 할머니 따뜻한 그늘에서 사랑받으며 맛있는 할머니 요리 먹으며 클 수 있을 텐데. 짧은 시간 사이 나는 상상으로 엄마와 함께 하는 일상을 그려보았다.

신기하게도 상상 속에 잠시 빠져 있었던 동시에,

"여기서 살아도 참 좋겠다."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엄마 발과 내 발이 붉은 발목 양말을 신은 듯 발그레해졌다. 찬 바람 부는 겨울 아침에 온천수에 담근 발에서부터 전해진 뜨거운 온천물이 머리끝으로 전해진다. 등으로 따끈한 기운이 채워진다.


"너무 개운하다."

"1박만 했는데도 여기 엄청 오래 있었던 거 같애. 여행이 너무 알차다. 그치?"

호텔로 돌아오는 길 두 발이 허브차 한 잔 마신 듯 상쾌하다. 발이 따뜻해졌는데 멍했던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엄마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사는 것이 별 것이 없다. 특별한 여행지라는 것도 없다. 내겐 특별한 여행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어딜 가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가에 따라 여행의 모습은 참 달라진다.


부모님과의 겨울 여행, 내가 당신에게 주고자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결국 이번 여행도 당신들이 내게 준 선물이 되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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