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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Jan 17. 2024

대전에서 뿌리를 찾겠다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겨울 여행 3

"야, 첫 소절에서 끝났다!"

 경연에서 첫마디에 '으아' 허를 찌르듯 감동으로 시작하는 가수의 노래가 있다.


아부지는 대전에서 이곳을 여행 여행의 첫 번째 장소가 된 것만으로 '여행 다했다'의 느낌이었다.

"여기 오려고 내가 너랑 여행을 왔나 보다."


뿌리를 알려주는 곳. 우리 아버지가 좋아했던 여행 첫 코스는 바로 뿌리 공원이다.

아부지는 그곳을 왜 그리 좋아하셨을까! 어릴 때 나에게 묵직하고 옛스런 빛깔 표지의 족보를 보여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과 한자가 가득한 족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보고 보시며 이젠 누렇게 변해버린 유물 같은 족보책이 여전히 책장에 먼지가 쌓인 채 꽂혀있다.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일찍 여의시고 할머니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신 아버지. 어린 시절 당신의 결핍이 뭔가를 채우듯 뿌리를 찾아 나선 건 아니었을까. 우리 조상은 말이야 하면서 설명하시는 아버지는 목소리가 높아지셨고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셨다.



어린 시절 기억도 없이 해외에 입양된 아이 중, 성인이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에 자신의 뿌리를 찾아오는 그들이 생각났다.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은 나를 이름 짓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나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의 핏줄이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연어처럼 자꾸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 한다.

누구나 나에 대한 물음. 시작은 언제나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등등의 근본적인 물음들.


아무리 현재를 잘 살고 있더라도 출발점을 생각하게 할 것 같다. 뿌리가 흔들리면 줄기도 힘을 잃듯. 누구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픈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도 혹시나 그러신 건 아니었을까. 억지로 끼워 맞춰본다.


성씨 찾아가는 길에 만난 길냥이

아이들은 할아버지께 할아버지의 성씨가 있는 번호를 기억해 두었다가 성씨가 있는 조형물이 있는 곳을 안내해 드렸다. 공원을 뛰어다니며 특이한 성씨가 나오면 어찌나 신기해하던지.

"할아버지, 목 씨도 있어요?"

"그럼, 많지는 않아도 있지."

"오빠, 간 씨도 있어."

"엄마가 아는 연예인 중에 간미현이란 사람 있어."

각자 가지고 있는 성씨를 찾아 걸어가는 길이 꽤나 재미있었다. 다른 성씨도 살펴보게 되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각자의 뿌리 앞에서 나는 누군가의 후손이고 지금의 내가 있음을 증명하듯 사진을 찍었다.

우리 엄마의 성씨 앞에서 한 번, 같은 성씨를 가진 아빠와 나도 찰칵, 아들과 딸의 성씨 앞에서도 찰칵찰칵!


덧붙이자면, 나의 뿌리를 알아보는 족보사이트가 있다. <뿌리를 찾아서> 나의 성씨와 본을 입력하면 성씨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성씨의 유래, 주요 인물, 항렬자 등 보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http://www.rootsinfo.co.kr/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아이들에게 조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설명하기 쉽지 않았는데 <뿌리를 찾아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되어 있었다. 사이트에서 설명된 것도 살펴보고 아이들은 공원에서 성씨 기념비와 비교하며 관심 있게 읽어 내려간다.


공원 입구에서 번호를 기억했다가 찾아가는 재마도 쏠쏠하다. 가는 길, 걷는 산책길이 예뻐서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며 사진 찍기에도 제격이다. 겨울이어도 괜찮았으니 다른 계절에는 꽃도 피고 푸릇푸릇한 풍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지로 선택할 때 우리에겐 손색없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아부지가 좋아하셔서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대전 가면 뭐 할 게 있나? 대전이 크게 특색이 없는 도시야."

대전에 오기 전에 아버지는 여행에 대한 큰 기대가 없으신 듯 말씀하셨다.

'아, 진짜 우리 아버지 시작부터 왜 그러셔? 하여튼 분위기 깨시는 거 뭐 있어.'

안 그래도 대전이 부모님께 어떠실지 나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아부지가 여행하기도 전에 그렇게 말씀하시니 살짝 야속한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여보세요? 어어, 오늘 못 갈 것 같은데? 우리 딸이 손주들하고 대전으로 여행 가자고 해서 말이야. 호텔로 예약해 두고 온천으로 어디로 간다네. 다녀와서 보자고!"

친구와의 전화는 살짝 자랑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결론은 아버지에게 마음에 쏙 드는 장소였다니, 아침에 출발할 때 하신 말씀은 봐드리기로 했다. 협착증이 심하셔서 오래 걷기 힘드실 텐데, 호기심 가득한 아버지는 뿌리 공원에서 우리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가시곤 했다. 기분이 좋으신지 허리 통증도 잊으신 듯하다.

유등천이 보이는 뿌리 공원은 중구 10경 중 하나


뿌리 공원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에 성씨가 5,582개나 된다고 하여 놀라웠다. 한자로 표현할 수 있는 성씨, 한자로 표기하지 못하는 성씨, 외국이 들어와서 새로 만들어진 성씨 등. 우리는 다른 조상과 다른 가문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만큼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뿌리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뿌리를 근본으로 두고 우리의 삶이 건실하게 자리하도록 잘 가꾸는 것이 진정한 뿌리를 갖게 되는 건 아닐까.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나의 뿌리,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내 글에 너무 억지스레 교훈을 담으려고 했나?

어쨌든 대전에 와서 뿌리를 찾다 보니, 결국 내게 가장 중요한 뿌리는 우리 부모님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대전에 갈 기회가 있으시다면 뿌리 공원을 들러 나의 성씨 기념물을 찾아보시라. 월요일이 휴관일이라 가지 못했지만 그곳에 있는 족보 박물관을 들러 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성씨 기념물을 찾으며 길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메인 사진출처 - 머니투데이 '다른데 너무 닮은 동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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