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에 닥친 업무들을 해결하는 문제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나이 50이 넘도록 본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목적으로 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보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그런데 꼭 이런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돈이 목적이라면 돈을 보고, 성공한 사람의 삶이 목표라면 그 길을 따라,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전문분야에 명확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다운 삶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10대의 나는 그런 흔들림의 에이스 침대가 싫어서 장수 돌침대처럼 별이 5개의 굳건함을 보이고자 일기를 작성했던 것 같다.
막상 20대에 들어서니 내가 그렇게 굳건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번 깨닫게 되니 많이도 사람들에게 흔들렸던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게 자기 개발서나 각종 인물 도서에서는 쉽게만 나왔었는데, 그거는 빠르게 발달하는 현대 시대를 살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이라서 그런 것 같다. 만약 황희가 대왕 세종의 일 습관을 미리 알았더라면 빛보다 빠른 손절이 가능했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꼭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도무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할 정도로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었는데, 그 순간 내가 그걸 걸고넘어지면 그건 그 사람의 환경을 존중하지 않거나 인생관을 무시하게 되는 셈이 돼버린다. 근데 86세에 일하라는 건 대왕님이 선 넘으셨지.
나는 타인을 이해하기 이전에 나를 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왜 사는지 명확히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해본 것 같다. 그럼에도 깨달아가는 기간이 굉장히 길어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어도 명확히 티를 내지 않았다. 대학원도, 유학도 그렇게 본의 아니게 이해 아닌 오해를 받았다.
이런 내 애매함이 어떤 때는 사람 외관상의 모습만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관계는 전~혀 중요치 않음.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에서도 내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거라 여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들도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거나 같은 부류이다.
30대에 넘어서 이제는 타인들과의 이해관계보다 나를 먼저 깨우치는 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알았다. 이걸 왜 10대 20대에 모르고 빌어먹을 굳건히처럼 굴었을까?
그래도 그때의 내가 가소롭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