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맞는 사람에게만 맞는다
폐관수련이 맞는 사람
30살이 넘도록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대학 OT나 MT처럼 단체로 가는 것도 그렇고 항상 함께 갔다.
가족들도 몇십 년이나 그래왔었으니, 유학에 온 내가 마음에 걸렸을 거다. 작년에 가족들 중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놀란 적이 있었는데, 술에 진탕 취해 전화를 못 받았었다.
놀러 갔다고 이야기를 안 했던 것도 나 빼고 여행 왔다고 하면 한국 생각나거나, 섭섭해할까 봐 그랬다고 한다.
나는 사실 상관없다. 매일같이 장사하시는 부모님이나 일하랴 공부하랴 시간에 쫓기는 동생이 좀 쉬었으면 했었다. 그래서 나한테 미안하다는 마음 갖지 않고 좋은 추억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유학이 힘들고 고생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긴... 3년 내내 어디 가지도 않고 집에서 박혀있는데, 가족들이 휴가 가는 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올해는 그래서 혼자 여행을 좀 다녀봤다.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재밌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언젠가는 가족들과 같이 올 곳을 미리 둘러본다고 생각하면 좀 더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충청남도 보령시 근처 삽시도를 가셨다고 하신다. 사진을 받아보니 그렇게 재밌어 보이지는 않는데, 쓰레기 하나 없어 깨끗한 동네 같았다. 낚시하려고 통발까지 챙겨 오셨다는데, 물 다 빠져서 잡을 물고기도 없다ㅋㅋ 그래도 맛있는 거라도 사드셨으면 해서 용돈을 보내드리니 회를 맛있게 드신 것 같아 다행이다.
매번 집과 가까운 곳에 가려고 서해안으로 갔었는데, 이번에 추천받으신 곳이 이렇게 재미없어하실 줄 알았으면 제주도를 권장해 드릴 걸 그랬다.
부모님께서 나를 가지시고 신혼여행 가셨던 곳이 제주도라고 한다. 유채꽃이 노랗게 펼쳐진 언덕길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섭지코 지였었나? 이름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그런 유채꽃밭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스위스에서 보게 되었다. 이럴 때는 노란색이 좋게 보인다.
혼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 그동안 여행을 가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가야 할 이유가 없었고, 가고 싶지 않았다.
스물한 살에 한번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ROTC에 붙어서 임관 준비에 학점관리에 알바에 복잡한 마음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었었다. 그 당시에는 대학에 오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이유나 각종 꿈에 대한 목적의식을 크게 잃어버렸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ROTC를 하지 않고 바로 입대했던 것은 내 인생에 큰 변환점 같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의 종착점이 강원도 산골이라니 나름 그곳에서는 그곳 생활에 적응하려고 기를 쓴 것 같다.
나는 여행 갈 때 그 설렘이 참 좋다. 차 안에서 커피나 먹을 것을 싸 들고 휴게소를 들러 기지개를 켤 때 느끼는 특유의 그 분위기가 있다. 드라이브하며 가족들과 내 진로나, 인생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좋았다.
나는 또 이때 내 앞으로의 계획과 전망성에 대해 기업 발표회 하듯이 자랑해 댄다. 당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될 거라는지 친구 분들에게 자랑하셨으면 해서 그렇다.
이 가족에서 내가 없어진다면 정말 슬퍼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꼴을 안 보기 위해서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뱉은 말을 지켜야 한다고 그때마다 다짐했다. 이게 내가 즐기는 여행 같았다.
그래서 내가 혼자 갔던 여행들은 모험이었다. 설레거나 기대되는 마음이 아니라, 긴장을 놓지 않고 여행하는 법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남는 건 혼자 본다는 미안함과 미숙한 나 자신뿐이었다.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구멍이 난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대처 법도 준비해야겠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런 실수를 한다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실력과 노력은 쓸모없을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