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영양분
흙은 나무를 기르는 좋은 영양분이다.
영양가 있는 좋은 흙이 오래오래 나무를 뿌리 잡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내 가족들은 내가 나무인 줄로만 알고 있지만, 이들이 사실 나에게 있어 나무이다.
버팀목. 돌풍, 비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나무. 나는 이 나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매번 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찾아와 갈림길에 서있을 때면 이들이 함께 했다. 내 목표는 당신의 또 다른 멀티버스의 삶이고, 결국 학자가 되는 건데 어디를 향해 가든 신경 쓰지는 않았다. 미국이든, 독일이든, 한국이든.
마냥 이들이 나의 모험에 기뻐한다면, 나도 좋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간단한 갈림길조차 헤매는 길치이기 때문에, 나무는 매번 내게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알려주었다. 다시 또 도움 받았다.
재능이란 게 없는 흙덩이는 스스로 재능의 씨앗을 발아할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이 이들에게 미안해서 눈물 흘린 기억이 많다. 동시에 마음속에 받은 것들이 고마운 아리송한 두 감정의 섞임이 눈가에 타고 내린다.
겨울철 숲 속에 잔잔한 눈 내리듯 흘려내고 나면 정리된 생각 덕에 실소가 터진다.
나는 감정 조절하는 방법이 좀 서툰 것 같다.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감정을 흘려내는 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과한 자존심 덕에 가족들에게 기대는 것을 기피한다. 융통성 없는 이는 가족들조차 눈치 보게 만든다. 알고는 있지만, 도움 받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제는 더욱이, 나는 이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2011년 겨울, 부천상가.
그날은 정말 추운 날이었다.
나는 병원 문을 부숴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인가 간호사분은 화가 잔뜩 나셔서 소리를 지르셨다. 약들을 옮기는 구르마에는 유리문의 센서가 작동하지 않아 그대로 닫혀버린 것이다. 악을 지르시는 이 분에게는 그저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저려오는 다리가 무색하게도 추운 마음 밖에 없었다. 건물 안에 히터를 틀어놓아서 그런지 꿇어도 안에서 하고 싶었다. 뒤늦게 상황을 보고 온 당시 선배가 와서 내 따귀를 후렸다. 막상 맞은 것보단 이런 일조차 똑바로 하지 못했다는 게 화가 났다. 합판을 들고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갈 때도, 밥 솥 공장에서 조립할 때도 공부가 가장 쉽다고 생각되었다.
박사가 되면 뭐가 달라지나? 결국 공부를 오래 했을 뿐이다. 막상 되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학위를 딴 건 여기에 돈 버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다. 공부가 돈 안 들이고 쉽게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나무들은 내가 고된 일 하지 않기를 바랐었다.
자라오며 장사하는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니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참 경험하기 힘든 시간들이다.
받기만 할 줄 아는 나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구실을 찾아야 될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은 기다려주지를 않아 더는 고민하고 있을 수가 없다.